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by Jin Nov 15. 2018

거식증 아이를 안는다는 것은

늘 조심스럽게 느껴집니다.

한 아이가 음식을 거부한다.

거식증으로 매일 음식과 싸우는 아이, 마른 몸으로 하루를 흘려내는 아이.


안아도 안아지지 않는 사람이 있다.

너무 약하고 얇아서 늘 조심스러운 사람.

조심스레 안다가 한바탕 울어버렸다.

어제보다 더 작아져서

내일이면 사라질까봐 두려웠다.


“어머님, 아이가 늘 안정감을 느끼게 대해주세요.”

”선생님, 매일 위로해주고 공감해주는 일이 얼마나 힘든 일인지 절대 모르실 겁니다.”


맞다. 부모는 신이 아니다.

어쩌면 매일 같은 실수를 반복할 수도 있고

신을 원망하며 서로를 탓할 수도 있다.


나역시 아이들에게 매일 작은 실수들을 하고 후회한다. 그 아이를 조심스레 안기 위해서 몸에 힘을 빼는 것을 연습해야 겨우 해낼 정도의 부족한 사람이다.


우리가 이리도 부족하지만

그런 우리에게 신이 아이를 보낼 땐,

적어도 애정으로 대하기를 간절히 원했을 것 같다.

실수해도 너그럽게 봐주기를, 엇나가도 따뜻하게 품어주길 바랐을 것 같다.


아이의 부모님은 많이 지쳐보였다.

애정보다는 걱정과 후회의 감각이 민감해진 이들이다. 아이는 오래도록 먹지 않을 것 같았다. 내가 매일 전하는 애정도 줄줄 흘리고 다니는 아이인데, 먹는 일이라고 다를까.


그래도 괜찮아질 것이다.

먹는 일도 살아있어야 할 수 있다.

아이는 오늘도 포기하지 않는 하루를 보냈고, 곧 먹을 수 있을 것이다. 엄마와 많이 웃고 울고, 아빠와 글도 쓰고 선생님과 노래도 들으면서 슬픔을 덜어내면 된다. 친구들과 게임도 하고 공부도 하며 조금 더 기운내며 살면 곧 좋아질 것이다.


아, 아이는 살아만 있어주면 된다.

사랑으로 서로 껴안을 때, 신은 모두를 도울 것이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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