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by 제니의 지금라이프 Sep 10. 2024

에필로그) 무의식적 끌림2

남편은 왜 내게 끌렸나?

지난 편에서는 내가 남편과의 첫 만남에서 느꼈던 호감을 무의식적인 관점에서 풀어보았다. 이번에는 남편의 시각에서 그 첫 만남을 살펴보고, 그가 나에게 호감을 느꼈던 이유를 역시 무의식 측면에서 해석해보려고 한다.


먼저, 남편의 시선으로 담은 우리의 첫 만남을 들어보자.


회식이 끝난 후 택시를 타고 집에 가는 길이었다. 가장 친한 친구한테 전화를 걸었다. 

"나 진짜 너무 외롭다" 

모쏠 28년차에 접어든 추운 1월, 외로운 마음에 울부짖었다. 

다음 날 그 친구에게서 연락처 하나를 받았다. 떨리는 마음으로 카톡을 몇번 주고 받고 약속을 잡았다. 친구가 추천해 준 상수역 근처 맛집을 설레는 마음으로 예약하고 그날을 손꼽아 기다렸다. 

하지만 소개팅 당일, 아침부터 내 컨디션은 엉망이었다. 한파주의보가 내린 데다 점심을 먹고 체까지 해서 기운이 쭉 빠진 상태였다. 

'평생 쏠로였는데 내가 무슨 소개팅이야. 어차피 또 잘 안되겠지.'

소개팅을 취소하고 방에 쳐박혀 있고 싶은 마음이 굴뚝같았다. 그러나 그녀가 추운 날씨에도 나를 만나준다고 하니, 감사한 마음에 일산에서 택시를 타고 한참 달려 약속 장소로 향했다. 

2번 출구 앞에서 그녀를 처음 봤다. 핑크색 코트를 입고 있었는데, 그녀를 보는 순간 체했던 속이 쑥 내려갔다. 그녀는 나를 보고 한번 훑어보더니 떨떠름한 표정을 지었는데, 나는 전혀 신경쓰지 않았다. 그 때 내 머릿속에는 그녀와의 노후를 어떻게 보낼지만을 상상하고 있었다. (너구나..!)

식당에 들어가 바비큐 플래터를 시키고 대화를 시작했다. 체끼가 내려가니 고기가 술술 들어갔고, 대화도 즐겁게 계속 이어갔다. 자연스럽게 우리는 책 이야기를 하게 되었는데, 그녀가 불륜 끝에 자살한 '마담 보바리' 이야기를 꺼냈을 때는 조금 섬뜩했다. 

'뭐지, 내가 뭐 잘못한 게 있나? 나에 대해 불만이 있나?' 
나는 급히 주제를 일상 이야기로 돌려 대화를 이어갔다. 

우리는 각자의 일, 책과 취향, 꿈 등의 이야기를 나누었다. 
이 때 나는 그녀에게 특별한 끌림을 느꼈다.

그녀는 자기만의 분명한 인생 가치관이 있었고, 이를 뚜렷한 목소리와 똘망한 눈빛으로 나에게 얘기하는데, 호감이 증폭되어 70년 후 그녀와의 실버타운 계획까지 세울 지경이었다.

2번째 만남 후 그녀에게 고백을 했고, 그녀는 부담스럽다고 거절했다.
그 날, 동률이 형과 소라 누나 노래를 밤새 들었다.


이처럼 남편은 첫 만남에서 나에게 두 가지 포인트에서 호감을 느꼈다. 첫 번째는 나를 보고 체끼가 내려간 순간이었고, 두 번째는 내가 삶에 대한 분명한 가치관을 가지고 있다는 사실이었다. 이는 단순한 호감 이상의 무의식적 신념과 깊이 연결되어 있다.


남편이 나에게 호감을 느낀 두 가지 포인트는 표면적으로는 다른 이유처럼 보이지만, 사실 둘 다 어떤 하나의 무의식적 욕구와 연결되어 있다. 바로 안정감을 찾으려는 욕구다.


남편은 오랫동안 쏠로 생활을 해왔고 외로움을 많이 느꼈다. 더불어 어린 시절, 경제적 불안정과 부모님의 잦은 부재로 인해 불안과 외로움을 자주 경험했고, 이는 그에게 안정감에 대한 갈증을 계속 심어주었다.



첫 번째,

남편은 나를 만나자마자 체끼가 내려가는 신체적 반응을 경험했다. 

신체와 무의식은 긴밀하게 연결되어 있다. 우리의 무의식은 외부 자극에 반응하며, 이는 신체적 반응으로 나타나는 경우가 많다. 

우리가 긴장하거나 불안을 느낄 때 복통이나 소화 불량, 심지어 두통 같은 신체 증상이 나타나기도 하는데, 이는 감정 상태가 신체에 직접적인 영향을 미친다는 대표적인 사례다.


남편이 나를 보고 체끼가 내려간 이유는, 그도 모르게 나에게서 어떤 안정감을 느꼈기 때문이다. 나와 마주한 순간 그의 무의식은 나를 '안정감을 줄 수 있는 사람'으로 인식했고, 그 심리적 안정감이 곧바로 신체적 반응으로 나타난 것이다.


남편이 그날 느낀 편안함은 단순히 체끼가 내려간 게 아니라, 그의 무의식이 오랫동안 갈망했던 심리적 안정을 확인하는 신호였다. 신체적으로 느낀 편안함이 다시 심리적 안정감을 강화하는 역할을 했고, 그 결과 남편은 나에게 더 큰 호감을 느꼈다.

이처럼 무의식과 신체적 반응은 상호작용하며, 감정이 신체에 미치는 영향은 우리의 호감 형성 과정에서도 중요한 역할을 한다.

(조금 더 들어가면 감정적인 반응을 관장하는 '태양신경총'이라는 신경망과 깊이 연관되어 있으나, 여기서 다루지는 않겠다)


두 번째, 

내가 소개팅 자리에서 삶의 뚜렷한 가치관과 방향성을 얘기했을 때, 남편의 무의식은 이 지점을 안정감의 원천으로 인식했다. 뚜렷한 가치관이 안정감과 연관되는 이유는, 명확한 가치관을 가진 사람이 삶에서 불확실성과 혼란을 덜 느끼기 때문이다. 무엇을 원하고 어디로 나아가고 있는지를 분명하게 알기 때문에 이는 내적으로 안정된 상태를 만들어준다. 


남편은 나와 함께라면 그동안 남편이 느껴왔던 삶의 불확실성과 불안함을 해소할 수 있겠다는 생각을 했고, 이 생각이 나에 대한 호감을 증폭시키는 계기가 되었다.

이는 자신의 부족한 점을 타인을 통해 채우고자 하는 무의식적 욕구와 맞닿아 있다. 





이처럼 남편이 소개팅 날 나에게 호감을 느낀 이유는, 남편의 어린시절 겪은 상황과 그 때 결정된 무의식적 신념과 욕구가 발현된 결과라고 볼 수 있다.




P.S) 남편이 핑크색 코트로 기억한 이유

남편은 그날 내가 핑크색 코트를 입고 있었다고 기억하지만, 사실 나는 남색 코트를 입고 있었다. 이는 인간이 감정에 따라 사건을 기억한다는 점을 아주 잘 보여준다. 사람은 과거를 있는 그대로 기억하지 않고, 그 당시의 감정을 바탕으로 재해석한다. 남편이 내가 핑크색 코트를 입었다고 기억한 현상은, 그 순간 나에게서 느낀 따뜻함과 안정감이 무의식적으로 반영된 결과일지도 모른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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