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어이가 없어도 욕하지 않는다

빛과 그림자 _ 3

by 루메제니

얼마 전, 아이 친구 엄마가 나와 내 아이에 대해 안 좋게 말한 사실을 알게 되었다. 정말 황당하고 어이없는 말이었다. 그 사실을 알고 황당하고 억울해서 마음이 시끄러웠다. 그러나 이내 평정심을 찾을 수 있었다. 예전 같았으면 몇 날 며칠, 아니 몇 달이고 친한 사람들과 나도 똑같이 험담을 했을지 모른다. 그러나 이제 어이가 없어도 쉬이 욕하지 않는다.


어떻게 그럴 수 있느냐고. 우리는 우리에게 나타난 일들을 유심히 관찰할 필요가 있다. 우리에게 일어나는 모든 일들은 모두 인생수업이다. 믿기지 않겠지만 나를 뒤에서 험담하고, 앞에서는 황당한 말을 쏟아내는 그 사람은 사실 내게 중요한 걸 알려주러 온 사람이다. 억울하고 힘들어도 그리고 금방 알아채야 한다. 이렇게.


"이전과는 다르게 반응할 수 있어." "이전에 내 마음속에도 있던 것일지 몰라."라고 말이다. 같은 상황을 다른 반응으로 대응하면 새롭게 보이는 것이 있다.


예컨대, 직장 동료의 험담을 듣고 같이 동조하기보다, "그 사람도 사정이 있겠지."라고 반응하는 것으로 내 안에 평화를 지킬 수 있다. 험담하는 무리의 에너지에 휩쓸려 같이 험담을 하면, 어떤 방식으로든 나에게 돌아온다. 예전에 친구를 같이 험담했을 때를 떠올려보라. 잠깐은 신나서 말하며 그 사람의 단점을 헐뜯으며 흥분되고 통쾌하지만, 집에 돌아와서는 마음이 좋지 않았을 것이다. 내 일도 아닌데 그 일에 대해 생각하고 떠들며 미워하느라 온 정신을 빼앗겼기 때문이다. 그리고 그런 자리로 인해 과거에 내가 겪은 비슷한 일로 미워했던 사람들도 함께 떠오른다.

"맞아, 사람이 다 그렇지! 예전에 나도 그런 애랑 꼬여서 짜증 났지, 생각만 해도 싫다!!."

이런 생각들로 내 안을 지옥으로 만든다. 더 곤란한 일은 미워하는 사람을 생각하는 데 힘을 주게 되면, 비슷한 사람이 다시금 내 삶에 나타난다. 생각만해도 끔찍하지 않은가.


사람이기에 누군가가 내 마음에 안 드는 사람을 험담할 때 같이 하고 싶은 유혹에 들 때가 있다. 그러나 내가 뿌린 것은 내가 그대로 받는다. 혹 내가 받지 않은 것은 나의 자녀, 주변 사람에게 돌아간다. 이는 인과응보이며 불교에서 말하는 업보, 까르마를 짓는 일이다. 마태복음 7장에도 다음과 같은 구절이 있다. "비판을 받지 아니하려거든 비판하지 말라. 너희가 비판하는 그 비판으로 너희가 비판받을 것이요. 너희가 헤아리는 그 헤아림으로 너희가 헤아림을 받을 것이니라."


부당한 대우를 받고도 무조건 참으라는 말이 아니다. 서운함을 토로하는 일과 무분별하게 험담하는 일은 엄연히 다른 일이다. 험담하는 자리를 회피할 수 있는 지혜가 생기면, 그로 인해 내가 비난받을 일이 줄어든다. 현명한 사람은 누군가를 비난하고 싶은 마음이 들 때 제어할 수 있는 사람이다.


그럼 나를 욕한 그 사람은 어떻게 대해야 할까. 법적인 조치를 취해야 하는 훼손이나 음해인 경우는 법적조치를 취해야겠지만 나머지는 붙잡아두지 말고 흘려보내자. 나를 바꾸는 일도 힘든데, 다른 사람을 어떻게 바꾸겠는가. 그러나 방법이 아예 없는 것은 아니다. 내 앞에 나타나는 사람이 바뀌는 유일한 방법은 그저 내가 바뀌는 일뿐이다. 상대는 나의 거울이고, 내가 예전에 쏟았던 것들을 다시 받을 수 있도록 해주는 통로이기 때문이다. 축복의 기도로 흘려보내자.




글 루메제니

그림 Illustration by Vicki Nerino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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