빛과 그림자 _ 2
이효리와 그녀의 어머니가 함께 여행을 떠나는 프로그램을 보며, 내 마음 한구석이 묘하게 울렸다. 그녀와 내 상황이 완전히 같지는 않았지만, 낯설지 않은 감정들을 불러일으켰다. 그녀는 불우한 가정의 셋째 딸로 태어나 엄격한 아버지 밑에서 자랐다고 한다. 그녀가 그 시절 자신을 보호하지 않았던 어머니에 대한 원망을 털어놓는 모습이 인상 깊었다. 그녀와 엄마가 서로의 감정을 나누고, 이해하며, 조금씩 치유해 가는 과정을 지켜보며 나도 모르게 눈시울이 붉어졌다. 나와 엄마와의 관계는 어땠는가.
어린 시절, 나는 종종 엄마를 창피해했다. 내 모든 부족한 면이 엄마를 닮았다고 여겼다. 엄마의 툭 튀어나온 입술, 게을러 보이는 뱃살, 음식 냄새 배인 옷, 서툰 말투까지. 하나하나가 마음에 들지 않았다. 그 시절 많은 가정이 그랬듯, 아빠는 엄마를 사소한 것까지 꼬투리 잡아 타박했다. 그럴 때마다 나는 속으로 생각했다. '엄마가 조금만 더 우리를 챙겼더라면, 조금만 더 깔끔했더라면, 조금만 더 내조를 잘했더라면... 아빠가 그렇게 화내지 않고 우리 집이 더 행복하지 않았을까?'
아빠와 엄마의 다툼이 잦아질수록 내 마음 깊숙이 '엄마만 바뀌면 우리는 행복해질 수 있을 텐데'라는 생각이 관념으로 뿌리내렸다. 그럼에도 엄마는 언제나 내 편이었다. 내가 무슨 일을 저질러도 이해해 주고, 내 말에 진심으로 귀 기울여 주었다. 혼날까 봐 두려웠던 아빠와 달리, 엄마는 어떤 상황에서도 나를 품어주는 유일한 사람이었다.
시간이 흘러 나 스스로 엄마를 이해하려 노력했던 날들이 떠올랐다. 음식으로 가득 찬 엄마의 냉장고를 정리하고, 나에게 음식을 줄 때 어떻게 하면 좋을지 조심스레 제안했다. 좋아할 만한 책을 선물하고, 겁 많은 엄마를 대신해 운전대를 잡고 할머니 댁과 여행지로 향했다. 깔끔한 옷을 골라 선물하고, 인터넷 뱅킹도 알려드렸다. 작은 행동들이었지만, 그 속에는 '아빠가 엄마에게 이렇게 해줬다면 어땠을까?' 하는 마음이 담겨 있었다. 타박 대신 사랑을 전하고 싶었다.
어느새 어엿한 두 아이에 엄마가 된 나는 가끔 되새겨볼 때가 있다. 내가 어릴 적 느꼈던 복잡한 감정들이 지금의 나에게 미친 영향에 대해서. 그때마다 마음 한 편에 묵직하게 자리 잡은 감정이 있었다. 입 밖으로 내뱉으면 그 불행을 사실로 인정하는 것 같아 꺼리던 서운한 감정이었다. 용기 내어 엄마와 솔직한 대화를 시도했다. 떨리는 목소리로 어린 시절의 서운함과 현재의 생각을 전했다. 엄마의 눈시울은 옅게 붉어지고, 말을 할 때마다 침인지 눈물인지 모를 것을 목 뒤로 연신 삼켰다.
그제야 어렴풋이 알 수 있었다. 내가 엄마를 위해 했던 행동만큼, 아니 그 이상으로 엄마도 나를 돕고 싶어 했었다는 것을. 엄마의 마음은 언제나 참아내며, 가족을 위해 견디고 있었다. 어려운 환경 속에서도 가정을 지키고 자식들에게 최선을 다했다. 언제나 내 이야기를 분별없이 듣고 마련하도록 내 편인 한 사람. 엄마가 이제 한 사람으로 보인다. 이제 더 이상 불화 사이에 끼어있는 어린아이는 보내고 싶다. 감사하고 사랑하는 마음을 자주 보고 키워서, 그녀의 행복을 나만의 방식으로 전달하며 살아보려고 한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