나 자신을 찾고 싶을 땐
일단 환경을 바꾸고
만나는 사람을 바꿔라.
아니면 절대 혼자가 되던지..
최근 나는 수십 년 동안의 내 프레임을 뒤집었다.
무모하다고 생각할 수도 있지만
나 스스로에게는 "용감한" "용기 있는"의 형용사를 부여하고 싶다.
그동안 수없이 떠나고 싶었던
벗어나고 싶었던 순간이 올 때마다
그 마음이 자유롭지 못했던 건
아이러니하게도 나 때문이었다
덕분에
나의 동굴에 자리 잡을 수 있었다.
처음은 낯설었던 그 공간의 시간이
어느덧 편안해졌다.
바로
내 가장 숨기고 싶었던 본전이라는 밑바닥을 인정하고 나서야 말이다.
나 자신과의 관계든
타인과의 관계든
그동안 너무도 주관적인 프레임으로 고집스럽게
나의 절대적 관점으로 지키려 했던 것에 객관적으로 라는 생각을 대입하니 편안해졌다.
조금은 허탈하기도
조금은 우습기도
왜??? 이게 뭐라고 그동안
그렇게... 라면서..
의도적인 것이 아니라
타의적인 계기로 동굴에
떨어뜨려진 거 긴 하지만..
늘 생각하듯이 이건 우연은 아닌 것 같다.
운명이다.
덕분에 나에 대한
나의 당연한 것도 당연한 것이 아니었음을
내가 만들어놓은 프레임 안에서와 바깥에서의
사고의 에너지가 얼마나
다른 파장의 넓이가 생길 수 있는가의
체험을 해보게 되었다.
나에 대한 솔직한 인정의 버튼을
누르는 순간
Reset의 확신이 생겼고
이렇게라도 다시..
비록 원점에서 시작하겠지만
그동안의 지워지지 않았던
얼룩 없이
다시 내 색깔의 인생후반기를
생각할 수 있는 시간이 오게 된
그 불행한 시간에 오히려 감사함을 느낀다.
만약은
늘 이중적이다.
만약의 결과는 나의 선택이
우선이다.
과거에 대한 '아쉬움'이 나의 선택이 된다면
내 마음은 현재의 시간이 괴로움이라는 무거운 추로. 흔들거릴 것이고
'바로잡음'이라는 선택을 한다면
뒤를 돌아보는 대신
내가 딛는 발걸음이 누르는 중력의 힘과 내 마음이 본능적으로 느끼는 발끝의 방향에 촉각을 집중할 것이다.
이제야 느껴진다.
한 때의 선택이
나의 무지개 같은 시간들을
인정욕구라는 무거운 추가
달린 붓으로 제 빛깔을 내지
못한 채 무채색으로 섞어버렸다는 걸..
하지만 그 시간이 헛된 것만은 아니다.
자책보다는
외부적인 강한 억누름에
어리석게 직접 맞서지 않고
인내하고
송곳의 날카로움을 숨기는
방법을 배웠다.
아이러니하게도
적(enermy)은
나를 다듬고 견디는 에너지(energy)를
만들수있는
수련을 하게 해주었다...
내가 이룬 것들
나의 경력, 나의 정체성은
내가 인정하는 것이 아니고
남에게 보여서 인정'받'는 것이
아니고
언제든 상황에 따라 무용지물이
될 수도
바뀔 수도 강력할 수도
무력할 수도 있다는 것.
그리고
그건 내가 지키고야 말겠다는
의지만으로
영원히 존속될 수 없다는 것도
깨달았다.
지속의 유효기간도
때가 있음을..
업그레이드하거나
다시 뒤집어 새롭게 리뉴얼해야 하는
때가 온다는 것을.
인정하자.
오히려 늘 고여있는
우물 안의 물로 있는 것보다
과감히 퍼올려야 할 때가
왔을 때를 알아차리고
행동에 옮기는 에너지를
느낄 수 있는 마음에 감사한다.
정확하게 보고
본질과 기본을 다시 깨닫고
행동할 수 있는
용기 있는 의도를 포기하지 말자.
생각의 에너지와 근력을 키우고
모든 선택의 중심에 나를 세우고
나를 잃어버리지 말자.
끌려가거나 억지로 버티지 말고..
자연스럽게 산책하듯 여유 있게
나의 삶을 천천히 다시 걸어보고 싶다..
동굴 안
낯설음의 답답함이
나 자신의 목소리가 내뿜는
공명의 에너지로 가득 찰 때까지.
천천히 산책하는 앞으로의 시간이
내가 잃어버린 날개가 되어있을 때까지.
그리고
유유히 날아다닐수 있을때까지.
해가뜨는 어두움과
질때의 어두움은
다르지않다.
비슷하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