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하늘이 장차 어떤 사람에게 큰 임무를 내리려 할 때에는
반드시 먼저 그 마음을 괴롭히고,
그 근골을 수고롭게 하며,
그 몸을 굶주리게 하고,
그가 하는 일을 막아
그의 마음을 흔들고 성정을 단련시킨다.”
— 맹자, 《맹자 · 고자하》
지난 한 해 나의 다이어리의
다짐같은 글로
매일 나를 세우는 글이었다.
삶의 구조를 설명하는 문장처럼 느껴졌다.
고난이 특별하기 때문이 아니라,
어떤 사람은 반드시 지나야 할 과정이 있기 때문이라는 말처럼.
나는 오래도록 버티는 사람으로 살아왔다.
앞으로 밀어붙이는 힘보다
무너지지 않는 힘을 먼저 배웠고,
누군가 나를 끌어주지 않아도
그 자리에 남아 있는 법을 택해왔다.
그 선택들은 나를 여기까지 데려왔지만,
그 과정에서 나는 종종
나 자신을 뒤로 미뤄두었다.
삶은 나에게 이유를 설명하지 않았다.
다만 묻지도 않고 요구했다.
참을 수 있는지,
책임질 수 있는지,
끝까지 남아 있을 수 있는지.
나는 그 요구 앞에서
대체로 고개를 끄덕였고,
그 태도가 나를 강하게 만든다고 믿었다.
그러나 시간이 흐르며
나는 조금씩 알게 되었다.
계속 버틸 수 있다는 사실과
그 자리가 나에게 맞는지의 문제는
전혀 다른 질문이라는 것을.
견딜 수 있다는 이유만으로
모든 자리를 감당할 필요는 없다는 것을.
어제 지난 한 해 같이
경제공부를 같이 해왔던 사람들과
신년모임이 있었다
앞서서 구축점이 되어주신 대표님
그리고 시간을 쪼개가며
공부하면서 포기하고싶을때도 많았고
과정중에 무너지는 위기도 있었지만
같이 한다는 내 역할을 포기한다면
피해를 줄까봐 힘들지만 꾸역꾸역
버티는 시간이 있었다
하지만
어제의 시간을 통해 깨달은건..
그들은 그저 직접적으로
나를 변화시키려 하지 않았다.
대신 각자의 자리에서
자기 몫의 불편함을 조용히 견디고 있었고,
그 태도가 오래 마음에 남았다.
누군가는 성과를 앞세우지 않았고,
누군가는 속도를 재촉하지 않았으며,
누군가는 관계를
이익의 언어로 바꾸지 않았다.
그 속에서 나는
처음으로 편안함이 기준이 되는 관계를 보았다.
함께 있어도 긴장하지 않아도 되는 자리,
무언가를 증명하지 않아도 유지되는 신뢰,
앞서거나 뒤처지지 않고
같은 방향을 바라보는 동행.
그 관계들은
말로 가르치지 않았지만
삶의 태도를 남겼다.
사람을 쉽게 쓰지 않는 태도,
관계를 소모하지 않는 방식,
급해지지 않는 선택.
그 모든 것은
소란스럽지 않았기에
오히려 더 견디고 같이 갈수있었다
나는 그들의 그 조용함 앞에서
나 자신을 다시 보게 되었다.
그동안 나는
얼마나 더 가질 수 있는지,
얼마나 더 견딜 수 있는지를
삶의 기준으로 삼아왔다는 사실을.
그러나 맹자의 말처럼,
삶이 흔들리는 이유는
무너뜨리기 위해서가 아니라
성정을 바로 세우기 위해서였을지도 모른다.
이제 나는
질문의 방향이 달라졌음을 느낀다.
이 선택이 나를 닳게 하는지,
이 관계가 나를 조급하게 만드는지,
이 방향이
나와 함께 있는 사람을
불편하게 하지는 않는지.
그 질문들은
소리 없이 삶의 중심으로 들어왔다.
나는 더 이상
고통을 통과해야만
무언가가 된다고 믿지 않는다.
불편함을 견뎌내는 능력을
미덕처럼 껴안지 않는다.
필요 이상으로
나 자신을 시험대에 올려놓는 일을
의지라고 착각하지 않는다.
불을 만들지 않는다는 것은
차가워지겠다는 뜻이 아니라,
타오르지 않아도
머물 수 있는 온도를
지키겠다는 의미에 가깝다.
조급함을 부추기지 않는 사람,
함께 있으면 숨을 고를 수 있는 사람,
그 자체로 기준이 되는 존재.
이제 나는 안다.
삶은 나에게
더 빨리 가라고 요구하지 않았고,
더 높이 오르라고도 말하지 않았다는 것을.
다만,
어떤 태도로 존재할 것인가를
오래, 그리고 집요하게
묻고 있었을 뿐이라는 것을.
나를 목표라는 일차원적인 다그침이 아닌
다만, 흔들릴 때마다
돌아와 앉을 수 있는
나의 조용한 기준이 필요하다는 것
그건 나를 그리고
같이 나아가는 서로에게
선한 영향력이라는거
그게 성숙한 관점으로
더 성장한다는거를
다시 생각해본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