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by jentestore 젠테스토어 Apr 09. 2024

가깝고도 먼 바잘리아 ‘형제의 난’

Stories: Guram and Demna

Stories: Guram and Demna

가깝고도 먼 바잘리아 '형제의 난'





현시대를 대표하는 크리에이터, BALENCIAGA의 뎀나 바잘리아(Demna Gvasalia)와 그의 동생이자 VETEMENTS을 이끄는 구람 바잘리아(Guram Gvasalia). 지금부터 패션계의 핫한 이 두 형제의 흥미진진한 이야기를 따라가보자.





패션계에서 제일 핫한 ‘싸움’


최근 구람 바잘리아의 인스타그램 게시물에 3만 개가 넘는 응원 댓글이 쏟아졌다. 그 내용은 단순히 형인 뎀나의 생일을 축하한다는 것이었는데.. 이게 왜 의미가 있었냐하면, 이 둘은 표면적으로 냉전 상태였기 때문.


©@gvasalia 인스타그램

최근 불화설이 있던 뎀나에게 생일 축하 글을 올린 구람.



그 발단은 구잠이 지난 7월 뉴욕 타임스(New York Times)와 한 인터뷰였다. 그는 “형이 10년 동안 좋은 활약을 펼쳤지만, 형의 커리어는 이제 결승선을 향해 가고 있다. 이제는 나의 시대다”라고 말하며 패션 팬들에게 둘 사이가 좋지 않음을 짐작하게 했다. 사실 형제끼리 싸우는 건 놀라울 일도 아니지만, 세계적인 패션 브랜드의 디렉터들이 이렇게 흔한 형제의 모습을 보이니 많은 이들이 팝콘을 들고 관전했던 것도 사실이다.

둘의 갈등이 드러난 것은 바잘리아 형제의 어머니, 엘라(Ella)가 오프닝을 장식한 BALENCIAGA의 2024 SS 컬렉션. 구람은 이 쇼에 초대받지 못했다고 한다.

이 사실이 알려진 것은 자신의 인스타그램을 통해 그대로 밝혔기 때문이었는데.. 왼쪽 하단의 어머니가 등장한 사진을 올리며 “엄마가 BALENCIAGA 쇼를 여는 모습을 보니 자랑스럽다. 나는 쇼에 초대받지 못해서 그걸 보지 못한 것이 매우 슬프다. 형 뎀나의 영혼을 위해 기도하겠다. 그에게 축복이 있길”라며 형을 제대로 저격하면서도 미련 절절한 모습을 보였다.



©vogue.com

BALENCIAGA 2024 SS, VETEMENTS 2024 FW



그것만으로는 부족했는지 직접 다음 시즌 컬렉션을 통해 속상한 마음을 표현한다. VETEMENTS의 2024 FW는 대놓고 이러한 구람의 반항이 드러난 컬렉션이었다. 붉은 배경은 발렌시아가의 2024 SS의 컬렉션과 비슷한 무드를 자아내겠다는 의도가 다분해 보인다. 그래도 크게 싸우기는 싫었는지 소심하고도 귀엽게 “엄마의 최애 아님(NOT MOM’S FAVORITE)”이라며 자신의 속마음을 드러낸 구람이었다.

그뿐만이 아니다. 이 쇼에서는 뎀나 흔적을 곳곳에서 찾을 수 있었으니. 그야말로 뎀나가 어린 시절부터 팬이었던 미국적인 시트콤 애니메이션인 ‘심슨 가족(The Simpsons)’ 시리즈와 BALENCIAGA의 콜라보를 연상시키는 미국의 애니메이션 시트콤 ‘사우스 파크’가 등장했기 때문.



©hypebeast.com, ©vogue.com

BALENCIAGA '더 심슨(The Simpsons)' 컬렉션, 2021, VETEMENTS 2024 FW



또 90년대 세계적인 팝 그룹 백스트리트 보이즈(Backstreet Boys)에 영감받아 뎀나가 만든 가상의 그룹 ‘Speed Hunters’와 유사한 프린팅을 오버사이즈 후디에 떡하니 선보이기도 했다.


©highsnobiety.com, ©vogue.com



재밌는 건 구람이 이 쇼를 ‘가장 VETEMENTS다운 쇼’로 꼽았다는 점. 누가 봐도 형의 흔적이 가득한 쇼를 두고 그렇게 말하는 의도가 무엇이었나 싶은 대목이다. 그 복잡한 속마음은 자신만 알겠지만 말이다.

사실 구람이 인스타그램을 통해 형을 저격한 것은 하루 이틀 일이 아니다. VETEMENTS의 2023 컬렉션의 드레스와 누가 봐도 BALENCIAGA인 사진을 ‘다른 브랜드(OTHER BRAND)’라고 비교하며 표절을 주장하기도 했던 그이니. “이 드레스 사랑해(Love this dress) ❤️”라는 비꼬는 코멘트와 함께.



©reddit.com

구람 바잘리아가 뎀나를 저격하며 인스타그램에 올렸던 게시물.




이것 말고도 구람이 뎀나를 저격한 게시물이 몇 개 더 있지만, 매번 게시물을 올리고 몇 시간 후에 삭제한 탓에 지금은 확인하기가 어렵다는 점 양해 바란다.내향형(I)과 외향형(E)의 차이?


그럼 바잘리아 형제는 어떻게 다를까. 인스타그램 피드만 봐도 알 수 있듯 둘의 성격은 극과 극이다. 요즘 식으로 말하자면 뎀나는 ‘I’고 구람은 명백한 ‘E’가 아닐까.


©@demna 인스타그램, ©@gvasalia 인스타그램

‘게시물 0’을 자랑하는 여백의 미가 있는 뎀나의 인스타그램,
아주 활발한 인스타그램 활동을 하며 자신을 전면에 드러내기를 주저하지 않는 구람의 인스타그램.




평소 사진만 봐도 둘의 취향이나 라이프스타일이 크게 겹쳐 보이지는 않는다. 2017년 작곡가 로익 고메즈(Loïk Gomez)와 결혼한 뒤, 스위스로 이사하며 BALENCIAGA의 거점이자 패션의 중심지인 파리와 물리적인 거리를 둔 뎀나.

자신의 일상을 잘 드러내지 않는 그는 패션 위크가 아닌 기간 대부분의 시간에는 취히리의 집에서 남편과 함께 평화로운 시간을 즐기는 것으로 알려져 있다. 소중한 사람과 아침을 먹고, 집안일을 하는 일상적인 삶에서 오는 안정감에 대한 애정을 드러낸 바 있는 그는 자연을 거닐며 산책을 하고 집 위층 작업실에서 컬렉션을 준비한다고 한다. 이쯤 되면 동생 구람이 숱한 저격 글을 올리는 동안 침묵으로 일관한 뎀나의 성격이 짐작될 것이다.



©vogue.com, ©reddit.com

스위스의 자연 속에서 평화로운 삶을 즐기는 뎀나,
뎀나와 그의 남편 로익 고메즈(Loik Gomez) 그리고 치와와 둘.



한편 동생 구람은 인싸적인 면모가 두드러진다. 인스타그램 피드만 봐도 알 수 있듯, ‘오운완’부터 숱한 셀러브리티들과의 친분을 과시하거나 전용기를 타는 사진을 올리는 등 표면적으로 드러나는 것을 좋아하는 성격. 자신을 잘 드러내지 않는 뎀나와 대조적이다. 누군가는 지난 파리 패션 위크에서 형인 뎀나의 쇼를 제외하고 거의 모든 곳에서 구람을 볼 수 있었다는 농담을 하기도 했을 정도.



©@gvasalia 인스타그램

보면 볼수록 미워할 수 없는 구람 바잘리아, 그릴을 뽐내고 있는 구람 바잘리아.



같은 배에서 나온 게 맞나 싶을 정도로 완전히 다른 둘이다. 하고 싶은 말은 해야 하고, 보여주고 싶은 건 보여줘야 하는 구람은 어쩌면 인정받고 싶어서 더 인스타그램을 열심히 하는 것일지도 모른다. 뭘 해도 형과 비교되어 왔으니.






함께 경험했던 유년 시절


물론 처음부터 사이가 나빴던 건 아니다. 가족 사이에 싸우는 건 그리 놀라울 일도 아니다. 일반 가정집 서랍 깊은 곳에 자리한 친숙한 가족사진을 보는 것만 같은 뎀나와 구람의 어린 시절 사진을 보시라.



©@gvasalia 인스타그램

구람이 인스타그램에 업로드 한 바잘리아 형제의 유년시절 사진.



바잘리아 형제의 유년 시기를 보면 VETEMENTS과 BALENCIAGA가 더욱 뚜렷하게 보인다. 이들이 태어난 1980년대 조지아는 소비에트 연방에 속했지만, 소련이 해체하면서 독립하게 된다. 그 과도기를 겪으면서 무정부 상태로 범죄가 증가하기도 했고 동시에 그간 막혀있던 서구 문화가 급격하게 유입된다. 기존의 것과 새로운 것이 만나 문화 충돌이 발생하던 시기이기도 하다.

바잘리아 형제의 10대는 이 복잡한 시절로 관통하며 흘러갔다. 이 형제가 경험한 당시의 패션은 Adidas, Puma의 트랙 수트가 즐비하게 걸린 매장이나 특유의 쭈그려 않은 포즈로 대표되는 고프닉(Gopnik)들 정도가 아니었을까.



©quora.com

당시의 유스 컬쳐였던 고프닉.



베트멍을 대표하는 과하다 싶을 정도의 오버사이즈 룩도 이 시절 형성됐다. 그 무렵 경제적으로 여유가 없었던 바잘리아의 부모님은 형제에게 늘 몇 사이즈 큰 옷을 사 입혀야 했다고. 그러니 뎀나와 구람이 여유 있는 핏의 옷에서 편안함을 느끼게 된 건 자연스러운 일이었을 터.





VETEMENTS이라는 혁명의 시작


2014년 VETEMENTS을 함께 창립한 바잘리아 형제.

처음에 둘의 전문 분야는 달랐다. 앤트워프 왕립 예술 학교에서 패션을 공부하고 Maison Margiela, LOUIS VUITTON에서 일하며 경력을 쌓은 뎀나가 디자이너로서의 역할에 집중했다면, 대학에서 국제 경영학과 유럽경영 법학을 전공한 뒤 BURBERRY 세일즈 근무를 했던 구람은 그 경력을 살려 브랜드의 경영적인 부분을 맡았다. 특히 비수기를 노린 컬렉션이나 희소성을 통해 럭셔리함을 창출하며 빛을 발한 비즈니스 전략은 구람의 공이 컸다.



©designandculturebyed.com

2014년 작은 게이 클럽 ‘Le Depot’에서 선보인 첫 번째 컬렉션, VETEMENTS 2015 FW



한 세기가 넘는 시간 동안 번성한 패션 하우스들. 그 사이를 비집고 새로운 브랜드가 입지를 다지기란 쉬운 일이 아니다. 그러나 VETEMENTS은 ‘전에 보지 못한 완전히 새로운 것’으로 승부해 데뷔 1년만에 확실한 인상을 남기기에 성공한다.



©vogue.com

베트멍의 아이코닉한 ‘DHL 티셔츠’를 입은 고샤 루브친스키(Gosha Rubchinskiy).



지나치게 큰 오버사이즈, 손등을 덮고도 남는 긴 소매, 과장된 어깨 실루엣에 네온 컬러의 포인트, 트렌치코트에 트레이닝 슈트를 입거나 테일러링 재킷에 레깅스를 입는 방식으로 불문율과도 같은 기존 패션의 착장 방식을 사뿐히 지르밟은, VETEMENTS.

연대순으로 정리한 아래의 사진들은 뎀나가 떠나기 전의 VETEMENTS 쇼들로, 기억나지 않는 아이템이 없을 정도로 하나하나 강렬한 인상을 남겼다.



©vogue.com

VETEMENTS 2016 SS, VETEMENTS 2016 FW

©vogue.com

VETEMENTS 2017 SS, VETEMENTS 2017 FW

©vogue.com

VETEMENTS 2018 SS, VETEMENTS FALL 2018 READY-TO-WEAR

©vogue.com

VETEMENTS 2018 SS, VETEMENTS 2019 FW







떠난 형 뎀나, 남겨진 동생 구람


성공에 성공을 거듭하던 VETEMENTS. 이토록 재능 있는 인재를 패션계가 가만뒀을 리가 있겠는가.

데뷔 1년 뒤인 2015년 뎀나는 BALENCIAGA로부터 아트 디렉터이자 크리에이티브 디렉터로 러브콜을 받게 된다. 그렇게 두 브랜드를 같이 병행하던 뎀나는 2019년에 이르러서야 더 이상 VETEMENTS에서의 도전에 한계에 이른 것을 느낀다.

애초에 뎀나에게 VETEMENTS은 불안에 가득 찬, 정착하지 못하는 젊은이의 프로젝트였다. 그 젊음의 에너지가 빠른 성장의 요인이기도 했지만 시간이 지나면서, 처음 브랜드를 시작할 때와 다른 사람이 되었음을 느낀 것이다. 그렇게 뎀나는 BALENCIAGA에만 전념하며 자신의 모든 걸 보여주기로 결단한다. 그리고 이는 바잘리아 형제에게 큰 변화를 가져다 주게 된다.



©vogue.com

BALENCIAGA 2017 FW, BALENCIAGA 2021 FW



뎀나의 존재는 확실히 BALENCIAGA의 변화를 이끌었다. 처음에는 VETEMENTS을 갖다 붙인 격이라는 비판도 있었지만 크리스토발 발렌시아가(Cristóbal Balenciaga) 특유의 절제되고 건축적인 테일러링을 살리면서도 사회적인 메시지를 담은 스트리트웨어를 녹여내며 자신만의 공고한 패션 세계를 구축해 냈다.

또 2021년 그 어떤 디자이너도 손대지 못하던 BALENCIAGA 오트 쿠튀르를 50여 년 만에 부활시키며 능력을 끊임없이 증명하는 중이다.


©vogue.com

BALENCIAGA 2022 FW COUTURE, BALENCIAGA 2023 SS

©vogue.com

BALENCIAGA 2023 FW COUTURE, BALENCIAGA 2024 FW



그럼 구람은 어떨까. 뎀나가 떠나고 2년 뒤인 2021년, VETEMENTS의 크리에이티브 디렉터가 된 구람. 그동안 경영 쪽으로만 담당했던 그는 그 시간 동안 의류의 패턴 제작과 구성 등 디자인의 이론과 기술적인 부분을 공부해야 했다. 그렇게 집중과 인고의 시간 끝에 2021년 11월 디자이너로서 데뷔를 치르게 되었으니.



©vogue.com

VETEMENTS 2021 FW, VETEMENTS 2020 FW



다만 뎀나 없는 VETEMENTS이 예전 같지 않은 것은 사실이다. 물론 패션에 대한 호불호는 상대적인 거라 쉽게 규정할 수는 없지만 말이다. 확실히 판매량이 줄었다고는 한다.

최근의 컬렉션에서 새로운 아이디어를 찾기가 힘들고, 재발매된 상품의 비중이 높다는 가격이 비싸다는 것이 부진의 요인으로 자주 거론된다. 눈길을 사로잡는 한 방 요소가 없는 것도 그렇다. 그 때문에 자꾸 구람이 뎀나의 BALENCIAGA를 베낀다는 이야기로부터 자유로울 수 없는 것이기도 한데.. 과연 VETEMENTS이 뎀나의 그림자로부터 벗어날 수 있을까? 그건 앞으로도 지켜볼 일이다.



©vogue.com

VETEMENTS 2022 FW, VETEMENTS 2023 SS



구람 관련 게시글에는 늘 뎀나를 카피한다는 댓글이 따라온다. 사실 어떻게 보면 구람은 형과 함께 시작한 한 브랜드를 이어가는 것뿐이다. 다 때려치우고 새로운 자기만의 브랜드를 만들 법도 한데 말이다. 어쨌든 그에게 VETEMENTS은 오랜 시간을 바친 패밀리 비즈니스일 것이고, 비슷한 유년 시절을 보내 뎀나와 정서적으로 닮은 부분도 있을 것이다. 그럼에도 컬렉션마다 형을 카피했다는 이야기를 듣는 것은 꽤나 지독한 스트레스일듯하다.



©vogue.com

VETEMENTS 2024 SS, VETEMENTS 2024 FW







형제끼리 사이 좋게 지내요


©vogue.co.th

뎀나와 구람



사실 누가 더 잘하고 있고 말고는 이 글의 요지가 아니다. 함께 시작한 브랜드로 패션 업계에 한 획을 그었고, 수많은 이들에게 패션으로 환희와 전율을 선사해 준 이 형제. 이들에게 충만한 우애의 기운이 깃들기를 바랄 뿐. 우리는 이 둘에게 실제로 어떤 일이 있었는지는 알 수 없다.

영원한 건 없으니 언젠가 뎀나도 BALENCIAGA에서 내려오는 날이 있을 것이다. 그때 이 형제가 다시 친해져서 VETEMENTS의 새로운 컬렉션으로 찾아오는 날이 올 수도 있지 않을까. 그 순간에 대한 모종의 기대를 품어보면서 이만 물러나겠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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