Stories: Fashion and Color Yellow
Stories: Fashion and Color Yellow
우린 노랑을 아직 잘 모른다
강렬한 태양빛을 닮은 노랑. 그 안에 서린 깊고 뜨거운 매력에 관하여.
노랑을 보면 무엇이 떠오르는가? 귀여운 아이들이 줄지어 올라타는 스쿨 버스, 쉴새없이 부리를 움직이며 삐약이는 병아리, 거리에 흐드러지게 핀 들꽃, 그리고 여름 내내 우리를 쉴새없이 좇는 땡볕. 그렇다. 노랑은 이처럼 우리 일상에 빈틈없이 들어차 있다. 어디에 있던 시선을 잡아끄는 독보적인 존재감과 특유의 생기 넘치는 에너지 덕분에 희망과 기쁨, 자유와 활력 등을 상징하는 것 역시 노랑이다.
하지만 본래 극과 극은 통한다고 했던가. 매번 밝기만 할 것 같은 노랑도 때론 부정적인 오명에 시달린다. 서양권에서 노랑은 배신과 차별, 분노 등을 상징하기도 한다. 우선 예수를 배신한 유다가 노란색 옷을 입고 있는 것만 봐도 감이 온다. 게다가 10세기에 프랑스인들은 반역자와 범죄자의 집 문을 노랑으로 칠해두었고, 러시아에선 한때 정신병원을 노란 집이라고 부르기도 했단다. 그리고 이런 인식은 현대까지 이어져 영화 그린 랜턴(Green Lantern, 2011)에서의 노랑은 악으로 묘사되기도 한다. 게다가 여느 심리테스트에선 노랑이 끌린다면 스트레스가 극심한 상태로 진단할 때도 있다.
그러나 내게 노랑하면 가장 먼저 떠오르는 건 심슨 가족(The Simpsons)과 레고(LEGO)다. 우선 심슨은 수많은 유머짤과, 곧 터질 대형 사건들을 미리 예측한 예언짤로도 유명세를 타고 있는 엄청난 작품. 스토리는 물론 탄탄한 캐릭터 구축과 세련된 풍자, 허를 찌르는 개그까지 흠 잡을 데가 없다. 그렇다면 나의 유년시절은 물론 성인이 된 지금의 지갑까지 지배하고 있는 레고는 어떠한가. 스토어의 대표색이 노랑인 건 물론 모든 인간 피규어가 노랑 피부를 띤다.
여기서 문제, 심슨과 레고에선 왜 피부색으로 노랑을 선택한걸까? 노랑은 캐릭터 디자인에서 인종을 초월하는 색으로 읽힌다. 스마트폰 속 사람 이모티콘 역시 노랑 피부라는 점을 떠올려 보라. 이는 백인과 흑인, 아시아인까지 모두 아우를 수 있는, 곧 인종 간의 차별적 요소를 제거하여 전 세계인 모두가 위화감없이 즐기게 하기 위한 특별 조치인 셈이다. 덕분에 노랑은 곧 모든 편견에 대항하는 자유의 색으로 거듭나게 된다.
우리가 일상에서 노랑을 자주 목격하듯, 패션에서의 노랑 역시 만만치 않은 존재감을 과시한다. 2019년 FW 시즌 키컬러였던 노른자 노랑, 2022년 SS의 네온 옐로우, 2024년의 버터 옐로우까지 그 강세가 꾸준히 이어지고 있으니. 또한 채도와 명도의 차이 만으로도 전혀 다른 무드를 연출할 수 있는 색상이기에 더욱 매력적이다.
특히 올해의 컬러인 버터 옐로우는 밝으면서도 차분한 분위기를 함께 품고 있으니 도전하지 않을 이유가 없다. BOTTEGA VENETA와 Proenza Schouler, LOEWE는 드레시한 디자인에 이 컬러를 입혀 온화한 느낌을 더했으며, Sandy Liang은 특유의 러블리한 감성에 버터빛을 더해 보다 성숙한 이미지를 이끌어냈다.
부드러운 버터 옐로우가 일상룩에 찰떡이라면, 보다 채도와 명도가 높은 노랑은 사람들의 주목이 필요할 때 최선인 컬러. 영화 클루리스(Clueless, 1996)의 히로인인 세어(Cher) 룩의 체크 패턴이나 옐로우 슈트 한 벌로 과감한 접근을 해 보는 것도 신선한 비책이다.
또한 무채색과 만나면 통통 튀는 시너지를 내는 게 노랑의 강점이다. 때문에 누구나 한 두 벌 쯤 가지고 있는 블랙 팬츠나 진, 이외에도 낮은 명채도의 색과 함께 매칭한다면 부담스럽지 않고 무난히 소화해 낼 수 있을 것이다.
노랑의 오묘한 매력을 신성하게 업그레이드 해주는 골드. 골드빛은 온 시대를 통틀어 성스러움 그 자체였다. 고대 이집트에선 신들의 피부와 뼈가 금으로 만들어져있다 여겼을 정도니까. 그만큼 블링블링한 쪽에선 따라올 자가 없는 색이다.
그래서인지 골드빛이 가미된 의상은 항상 컬렉션의 관전 포인트로 등장한다. 사실 골드 색상의 의상하면 막연하고 어려운 게 사실이지만, 그럴 땐 곧 등장할 착장들을 참고하면 좋을 듯. Blumarine과 Ralph Lauren, TOM FORD에서 자신있게 선보인 골드 의상들은 현대적 여신의 아웃핏을 대변할만큼 화려하고 기품이 넘친다.
Renaissance Renaissance 2024 SS ⓒvogue.com
물론 의상에서도 훌륭하지만, 무엇보다 골드의 진가는 액세서리가 아닐까. 어디에나 어울리는 골드의 마력이 빛을 발하는 순간이 바로 이때다. 레트로한 후프 모양의 이어링이나 유니크한 디자인의 브레이슬릿은 단촐해진 여름 착장의 빈자리를 채워줄 든든한 후원군이 되어줄테니.
뿐만 아니다. 새로운 디렉터를 맞이한 Chloé는 골드 벨트로 의상에 확실한 포인트를 새긴다. CHANEL에서 쏘아올린 골드 체인 벨트 역시 여름에 빛을 발하는 액세서리. 무심하게 두르는 것만으로도 스타일리시한 행보가 가능하다. 반짝이는 것 하나 정도는 필참해 주는 것이 패션의 기본이니까.
글로벌 국민 밴드 콜드 플레이(Coldplay)는 그들의 히트곡인 ‘Yellow(Parachutes,2000)’에서 노랑을 사랑에 비유한다. 밴드의 리더이자 보컬인 크리스 마틴(Chris Martin)은 이 곡의 가사를 쓰며 빛과 희망, 헌신을 모두 아우르는 충만한 사랑을 떠올렸다고. 마치 밤하늘에 별들이 모두 사랑하는 이를 위해 빛나고 있는 것만 같은, 그런 기분을 느끼면서 말이다. 아마 노랑은 우리에게 별빛처럼 영원한 낭만의 색으로 남아있지 않을까.
Published by jentestore 젠테스토어