Brand LAB: ROA
Brand LAB: ROA
하이킹과 도심을 잇다
한때는 못생겼다는 이유로 패션계에서 외면받던 하이킹화. 지금은 스타일링의 차전선에서 가장 뜨거운 아이템으로 부상 중이다.
그리고 그 중심에 있는 ROA. 이탈리아 베이스의 아웃도어 브랜드 ROA는 ‘등산’이라는 행위를 예술과 문화, 그리고 패션으로 확장시킨 독보적인 존재다.
요즘 같은 시대에 하이킹화는 더 이상 산에 가기 위해서만 신는 신발이 아니다. 거리에서, 카페에서, 심지어 갤러리 오프닝 파티에서까지도, ROA의 슈즈를 신은 사람들을 목격할 수 있다. 이 브랜드는 단순히 등산화를 만드는 것이 아니라 도시의 리듬에 자연의 언어를 녹인다.
ROA가 감이 좋은 이유. 이 브랜드를 말할 때 이탈리아의 편집샵 SLAM JAM 이야기를 하지 않을 수가 없다. 1989년, 이탈리아 페라라의 작은 시골 창고에서 시작한 SLAM JAM은 음악, 예술, 스포츠, 패션을 하나로 엮는 데 성공하며 ‘유럽에서 보기 드문 편집샵’ 이라는 입소문을 타기 시작했고, 현재는 이탈리아를 넘어 세계적인 편집샵으로 자리하고 있다.
그리고 SLAM JAM을 오늘의 위치까지 이끈 주역, 루카 베니니.
하지만 그가 몸을 담구었던 곳은 SLAM JAM 뿐만이 아니다. ROA 설립에 앞서 초창기 Stüssy의 유럽 확장 과정에서 ‘인터내셔널 스투시 트라이브(International Stüssy Tribe)’의 일원으로 활동하며 이탈리아에 처음 들여온 인물이자, 1017 ALYX 9SM의 공동 설립자 중 한 명이기도 하다.
이탈리아 출신의 루카는 스트릿 웨어가 럭셔리의 품에 안기기 한참 전부터 이미 그 가능성을 직감했던 사람이다. 그의 시작이 밀라노나 파리도 아닌, 시골 마을 페라라의 창고였다는 사실이 믿기지 않을 만큼 그의 시선은 앞서 있었다.
ROA는 여기서 태어났다. 수년간 수많은 브랜드를 소개하기만 했던 SLAM JAM이 진짜로 쓸모 있는 무언가 를 만들기 위해 시작한 프로젝트가 바로 ROA다.
SLAM JAM의 루카 베니니와 슈즈 디자이너 마우리치오 콸리아(Maurizio Quaglia)가 협업해 2015년 부터 본격적인 제품을 전개하였고, 처음부터 ROA의 핵심은 명확했다. 고산지대를 위한 기능성은 기본, 더불어 미학적 관점까지 포기하지 않는다는 것.
브랜드 명 ‘ROA’ 또한 이탈리아의 하이킹 명소인 ‘포르첼라 델라 로아’라고 불리는 산에서 가져온 것이다. 로고 또한 이 산의 뾰족한 봉우리를 양식적이고 미니멀한 형태로 표현한 것으로, ROA가 추구하는 기능성과 디자인의 균형을 상징적으로 보여준다.
그 결과, 기능성과 디자인 두마리 토끼를 모두 잡은 Katharina, Andreas, Neal 같은 아이코닉한 하이킹화 모델이 탄생했고, 패션계 종사자와 하이커 모두의 주목을 받기 시작했다.
당시 ROA는 하이킹화 하나로 시작했지만, 그 디테일을 들여다보면 단순히 등산화를 만들겠다는 의도가 아닌 것은 명백했다. 설립부터 브랜드의 타겟층은 ‘패션을 사랑하는 사람들’. ROA는 이미 그때부터 아웃도어의 다른 무드를 팔고 있었던 셈이다.
등산을 즐기는 사람이라면 발끝에 닿는 신발의 촉감이 얼마나 중요한지 절실히 느끼게 된다.
바로 그 섬세한 감각을 담아, 2016년 ROA는 하이킹화로 첫 발걸음을 내디뎠다. 지금부터 ROA를 이 자리까지 오르게 한 베스트 셀러 TOP3 하이킹화를 알아보자.
ROA의 상징인 카타리나 하이킹화. 이름부터 뭔가 빠르게 움직일 것 같은 느낌은 괜한 착각이 아니다. 트레일 러닝화의 실루엣을 베이스로, 사용된 KUDU 가죽 특유의 유연성 덕분에 신으면 신을수록 더욱 편안해 진다고 한다. 무엇보다 이 모델의 핵심은 물과 마모에 강하다는 점.
모던한 도시 탐험가를 위해 만들어 졌다는 모델, 산길 도시길 가리지 않고 안정적인 접지력을 보여준다. 둥근 앞코, 유광 소재의 러버 머드가드, 빠지지 않는 측면 ROA 로고까지. 이 모델이 베스트셀러인 이유가 있다.
로아 닐은 좀 더 헤비한 느낌을 주는 모델. 광택 있는 리플렉티브 나일론 텍스타일과 누벅 조합으로, 견고하면서도 은은한 광택감이 특징이다.
발목을 살짝 감싸주는 하이탑이라 날씨나 지형의 영향을 덜 받으며 장시간 착용에도 피로도가 적은 내부 쿠셔닝 또한 인상적. 브라운과 블랙의 투톤 컬러링이 감각적이면서도 쉽게 매치된다.
아워레가시가 선택한 모델, 이름에서 알 수 있듯 레이스가 아니라 스트랩 여밈 구조다. 한 손으로 조이고 풀 수 있어 신고 벗기 편하고, 발목 위를 감싸는 안정적인 디자인으로 부상 위험을 줄여주는, 진짜 등산가들을 위한 모델이다. 여전히 비브람 솔은 기본 장착.
기능이 곧 미학이다, 그래서 ROA는 기능을 디자인의 일부로 삼는다.
2021년, ROA는 새로운 리듬을 타기 시작한다.
인재는 인재를 알아본다고 했던가. 루카 베니니는 자신만큼 날카로운 감각을 지닌 인물을 새로운 크리에이티브 디렉터로 영입한다. 노르웨이 출신 디렉터 패트릭 스탕바이(Patrick Stangbye)가 합류하게 되면서 브랜드의 시선이 한층 넓어졌다. 단순히 하이킹화를 넘어 어패럴 분야까지 확장시켜, 입는 방식까지 제안하는 브랜드로서의 정체성을 강화하게 된 것이다.
그의 일상을 엿보자면 뾰족하게 다듬어진 패션계의 언어보다 흙 묻은 신발끈과 등산 지도에 더 익숙해 보인다. 아마 루카 베니니는 그의 이런 점이 마음에 들었는지도 모른다. 트렌드에 휩쓸리기보다 제 속도대로 자연을 걷는 사람, 런웨이보다 트레일에서 더 많은 시간을 보내는 사람.
그는 ROA의 디렉터이기 전에 러너이고, 하이커이며 동시에 전 세계의 마켓을 꿰뚫는 전략가이기도 하다. 바이어, 에이전시, 컨설턴트, 런 클럽 운영자까지. 다양한 역할을 전전하며 그는 ‘움직이는 몸’과 ‘옷을 입는 것’ 사이의 관계를 누구보다 깊이 고민해 온 이력이 있다.
그렇기에 ROA에서 그가 보여주는 디자인은 단지 예쁘다는 기준에 멈추지 않는다. 그가 만든 옷을 보면 언제나 움직이는 삶을 전제로 한 생각이 녹아 있다. 걷고, 뛰고, 땀에 젖고, 땀이 다시 마를 그 순간까지 상상하여 디자인한 것이다.
그가 디렉팅한 옷을 하나하나 뜯어보면 실용적인 이유로 존재하지만, 모두 조합해 놓으면 웨어러블한 예술처럼 보인다. 어딘가 테크니컬하면서 입고 싶은 기분이 들게 하는 것이 그의 연출력이다.
그리고 아쉽게도, 그는 올해 1월을 끝으로 ROA의 디렉팅 자리에서 물러났다. 하지만 그가 남긴 감각은 여전히 브랜드의 결을 이끌고 있다.
그는 아웃도어를 자신과의 관계를 회복하는 공간이라 말했다. 바쁜 도심 속에서 벗어나 스스로의 속도로 걷는 시간, 그 시간 속에서 옷이 어떤 역할을 해야 하는 지를 질문하며 디자인했다고 한다. 그 질문이 바로 지금의 ROA에 새겨진 철학이다.
ROA가 아웃도어를 잘 이해할 수밖에 없는 이유.
이들은 자연을 단순히 상품으로만 소비하는 것이 아니라, 꾸준히 탐색하고 고찰하며 배울 점을 찾는다. 마치 자연은 스승이고 스스로는 학생이라 여기며. 그리하여 탄생한 ROA만의 프로젝트 ‘RRR: ROA RESOURCE RESEARCH’가 있다.
ROA는 자연과 인간이 공존하는 생태계 유지 방식을 몸소 체험하며 ‘무엇을 보고 느끼는지’를 설명한다. 그것은 상품에 고스란히 녹여낼 수도, 혹은 캠페인 사진이 될 수도 있다. RRR 프로젝트 중 가장 깊은 울림을 준 사례는 일본에서 수백 년 동안 행해진 전통 소각 방식 NOYAKI 프로젝트. 일본 구마모토의 아소산에서 매년 봄, 지역 주민들은 넓은 초원을 불태운다. 그 불은 단지 무언가를 태우는 행위가 아니라, 다음 계절을 준비하는 하나의 약속이자 의식이다.
이 밖에도 일본의 작은 바닷가 마을에서 200여 년 동안 운영되고 있는 레스토랑 Kishuann 프로젝트, 그리고 녹고있는 빙하를 관찰하는 비디오 프로젝트 Outlaw Zones 등. 장소는 다르지만 공통적으로 하나의 질문이 흐른다. 자연과 인간의 경계는 어디인가?
ROA는 감히 자연을 무대로 삼거나, 정복의 대상으로 그리지 않는다. 대신 멀리서 관찰하고, 있는 그대로 해석하며, 조심스럽게 다가가려는 태도에 집중한다. 이러한 시선과 태도는 곧 브랜드의 철학이 되었다.
하이킹화에서 출발한 브랜드지만, 이제는 신발 너머의 이야기를 하며 오늘날 아웃도어 패션이 어디까지 진화할 수 있는지를 가장 앞에서 증명하고 있다.
그리고 그들이 말하고자 하는 메시지는 분명하다. 당신이 걷는 길이 산길이든 도시의 거리든, 정상에 오르는 일이든 일상을 살아가는 일이든, 그 모든 순간이 의미 있는 여정임을 잊지 말라는 것이다.
Published by jentestore 젠테스토어