Trend: Rise of Weird Shoes
Trend: Rise of Weird Shoes
발끝에서 갈리는 취향
스크롤 한 번이면 수백 장의 사진이 쏟아지는 시대. 상반신만 채워선 나를 증명하기 어려워졌다. 그러자 디자이너들은 개성의 마지막 공간, 발 아래에 새로운 실험을 감행했다. 요즘엔 뭔가 예쁘기만 한 건 좀 심심하다는 분위기다. 그래서일까, 살짝 우스꽝스럽고 독특한 신발들이 오히려 더 매력적으로 보이기 시작했다. 이번 시즌에 발자국을 남긴 네 가지 슈즈는 각기 다른 이야기를 품고 있지만, 공통된 질문을 던진다. 누가 무엇을 신고 있는가보다, 나는 어떤 형태를 받아들일 준비가 되어 있는가. 그 시작은 여기서부터다. 스타일의 중심이 신발이라는 말이 더 이상 진부하지 않은 지금, 그 발끝에서 시작된 연대기를 펼쳐보자.
다섯 개의 발가락이 각각 드러난 실루엣. 불편할 정도로 노출된 해부학적 구조, 그로테스크함을 넘은 어떤 당당함이랄까. 또 한편으로는 불쾌하다는 말보다 묘하게 끌린다는 말이 더 정확할지 모른다.
이 신발의 기원은 기능성에 있다. 이탈리아에서 시작된 VIBRAM은 원래 등산화의 미끄러움을 줄이기 위한 고무 아웃솔에서 출발했다. 이후 200년대에 발가락을 하나하나 감싸는 ‘파이브핑거스(Five Fingers)’를 출시하며 맨발에 가장 가까운 신발이라는 철학을 제시했다. 요가? 러닝? 피트니스? 이 신발은 본래 실용적인 툴이었다. 그리고 BALENCIAGA가 이 형식을 끌어안았다. 뎀나 바잘리아는 이 기이한 러닝화를 하이패션 문법으로 재조립했다. 발등 위에 고무를 걸치고 힐을 결합하며 ZERO라는 이름의 슈즈는 발가락과 뒤꿈치만을 가린 채, 마치 아무것도 신지 않은 것 같은 착시를 만든다. 모양은 과감했고 반응은 극단적이었다.
그럼에도 이 신발은 점점 더 많은 곳에서 보인다. 마치 순식간에 불어났던 러브버그처럼. 여름 공원이나 한강 산책로 위, 클럽의 낮은 조명 아래에도, 휴대폰 화면 안에서도. 경악에서 호기심으로, 호기심에서 동경으로, 못생겼다는 평가조차 이제는 칭찬처럼 들린다.
섬세하게 짜인 망사 아래로 발등이 어렴풋이 보인다. 어글리 슈즈의 과장된 실루엣이 사라진 자리에 메쉬 슈즈는 속살과 구조 사이의 긴장감을 놓는다. 드러내되 드러내지 않고 감추되 감추지 않는다.
그 시작은 Alaïa였다. 발레 플랫에 피쉬넷을 결합한 그들의 메쉬 슈즈는 마치 주얼리처럼 영롱해 보였다. 짜임의 패턴은 거의 레이스에 가깝고 그 안에서 발은 하나의 오브제로 역할 한다. 현 Alaïa 디렉터, 피터 뮐리에(Pieter Mulier)의 인스타그램에 올린 사진 한 장에 플랫을 향한 집착이 담겨있다. 그리고 이제는 그 형태가 발전해 슬리퍼와 샌들에 매쉬를 접목시켜 아예 메쉬 슈즈 컬렉션을 선보였다.
THE ROW는 다르게 접근했다. 구조를 지우고 경계를 흐린다. THE ROW의 메쉬 슈즈는 양말인지 신발인지 구분되지 않을 정도로 유령 같은 형태다. 발을 감싼다기보다는 공기를 덧씌우는 것과 같다. 오히려 존재감은 더 강하다. 안 보이는 것이 강하다는 아이러니다. 2023년도 여름부터 지금까지. 우리는 계속 속이 보이는 신발을 트렌드 아이템으로 삼고 있다.
젤리! 빛을 머금은 투명한 소재와 말랑한 질감을 손에 쥐면 마치 어린아이가 된 것처럼 천진난만해진다. 그래서 젤리슈즈는 우리를 유년 시절로 되돌려놓는다. 한때 해변에서, 놀이터에서, 물이 닿는 모든 곳에서 신던 그 신발이 이제는 하이패션의 쇼윈도 안에서도 빛난다. 젤리 슈즈의 복귀는 그 자체로 하나의 반전극이다.
젠장. 또 THE ROW야. THE ROW는 FW24 컬렉션에 PVC 플랫을 내놓았다. 이름하여 ‘마라 플랫(Mara Flat)’. 다소 진지해보이는 블랙 앤 화이트 아웃핏에 매치한 컬러풀한 젤리 플랫은 지금 가장 고가의 신발 중 하나다. 그리고 이 아이템은 공식 홈페이지에서는 구경할 수도 없을 정도로 여전히 인기가 하늘을 찌른다. 무려 일 년 동안 그 인기를 유지했고, 오히려 다른 브랜드는 각기 다른 모양의 젤리 슈즈를 내놓고 있다.
개인적으로는 CHLOÉ가 재해석한 젤리 슈즈에 눈길이 간다. 여름 무드를 물씬 풍기는 CHLOÉ의 젤리 샌들. 솔은 물결 형태를 띠고 있고, 힐은 유선형의 조개껍데기을 닮았다. 시간과 물이 빚어낸 해변의 유리 파편 같은 질감과 색채 때문에 무조건 이 계절에 한 번쯤 도전해 보고 싶은 신발이다. 젤리 슈즈는 지금 단순한 향수가 아니다. 기능은 여전하다. 방수되고, 가볍고, 여름 내내 신기 좋다. (물론, 미끄러울 수 있으니, 장마철에는 되도록 안전한 신발을 택하자.) 이 신발을 신는다는 건 발끝에 재치를 얹는 일이다. 너무 진지한 옷차림에 일부러 한 끗의 유머를 더 하는 태도. 젤리 슈즈는 그 반투명함 속에 어른의 장난기를 숨긴다.
힐의 장점은 12389가지인데 그럼에도 불구하고 쉽게 손이 가지 않는 이유는 뭘까? 힐이 너무 뾰족한 나머지 걷다가 발목을 삐끗하거나, 배수구나 작은 틈 어딘가에 굽이 끼어서 썸남 앞에서 허둥지둥거리는 민망한 상황이 발생하지 않을까? 라는 걱정 때문이다. 똑같이 다리가 길어 보일 수 있지만, 위 두 가지 애로 사항을 보완한 신발이 바로 웨지힐이다. 웨지힐은 편하게 걸을 수 있으면서도 그만한 높이를 유지할 수 있는 절묘한 타협점이다. 발 전체에 체중이 고르게 실려 안정감도 확실하다.
한동안 유행의 변두리에 머물렀던 웨지힐이 2025년, 과거의 실용성과 한층 세련된 미감을 함께 품고 다시 돌아왔다. 기존과 달라진 점은 바로 발등을 감싸는 스트랩이 투명해졌다는 것. Maryam Nassir Zadeh와 CHLOÉ의 컬렉션만 봐도 알 수 있다. 무슨 말이 더 필요하겠는가. 나는 지금 웨지힐이 갖고 싶다.
발가락의 구조를 드러내는 기묘한 곡선, 살결과 그림자가 교차하는 투명한 메쉬, 유년의 기억을 불러오는 젤리 슈즈, 조형적으로 재정의된 굽의 실루엣. 이번 시즌에 선명한 발자국을 남긴 네 가지 신발은 단지 유행을 따르기보다는 스타일에 대한 태도를 묻는다. 말 대신 형태로 설명 대신 선택으로, 취향의 정체를 드러내는 방식이다. 자, 이제 신발장을 점검할 시간이다. 발끝에 어떤 형태를 얹을 것인가. 대답은 언제나 신는 순간에 완성된다.
Published by jentestore 젠테스토어