House of Rick Owens
Stories: House of Rick Ownes
의과 대학 경매에서 구매한 앙상한 해골, 돌아가신 아버지의 엽총, 그리고 기원전 740년에 제작된 석관까지. 릭 오웬스(Rick Owens)의 집에는 죽음을 상기시키는 물건이 곳곳에 자리하고 있다. 오웬스가 단순히 ‘어둠의 왕 Lord of Darkness’이라는 별칭에 부응하기 위해 이런 소품을 야금야금 모은 것은 아닐 것이다. 매일 같이 살아 움직이는 집에 죽음을 연상시키는 장치들을 곁에 둠으로써 삶의 유한함에 대해 성찰한다는 릭 오웬스. 생(生)과 사(死), 그 사이를 가쁘게 오가는 릭 오웬스의 집을 소개한다.
2016 SS ‘CYCLOPS’
2014 SS ‘VICIOUS’
실험적인 실루엣, 비전통적인 소재로 제작된 옷감, 독특한 의류만큼이나 혁신적인 패션쇼를 매해 선보이고 있는 릭 오웬스. 전 세계적인 추종자를 거느리는 그는 유럽에 총 세 곳 – 프랑스 파리, 이탈리아 베네치아, 그리고 오늘 소개하고자 하는 이탈리아 콩코르디아에 집이 있다.
북부 이탈리아에 위치한 콩코르디아 집 바로 건너편에는 그의 오웬스코프(Owenscorp) 팩토리가 자리 잡고 있다. 그는 이곳에서 수개월간 컬렉션 제작에 집중하며 시간을 보낸다. 아파트는 석회암으로 이루어진 하나의 큰 방이다. 공간은 대체로 비어있으며, 집의 절반을 운동기구에 할애했다. 그 외에는 매일 낮잠을 자는 큰 침대와, 소파, 그리고 굉장히 불편해 보이는 의자 몇 개와 책상 하나뿐. 릭은 자신의 집이 공백처럼 느껴지길 바랐다고 말한다.
머릿속 단상이 자유로이 헤엄칠 수 있도록 물리적인 공간을 과감하게 비워낸 것. 이처럼 불필요한 것을 덜어내야 진정으로 중요한 것을 놓치지 않을 수가 있다. 그렇게 릭 오웬스의 집은 수년이 걸려 완성한 컬렉션부터 그가 엄격하게 지키는 데일리 루틴, 그리고 직접 제작한 가구까지, 릭 오웬스는 집이라는 빈칸을 어떻게 채워 넣고 있는지 샅샅이 파헤쳐보자.
릭 오웬스 2023 FW ‘LUXOR’ 컬렉션
릭 오웬스 2023 SS ‘EDFU’ 컬렉션
한때 고대 이집트의 수도였던 ‘룩소르(LUXOR)’를 2023 FW에, 그리고 나일강 서쪽에 있는 신전 ‘이드푸(EDFU)’를 2023 SS에 각각 소환한 릭 오웬스는 이집트에 대한 남다른 관심을 품고 있다. 커다란 규모의 무덤에 둘러싸여 있을 때, 무한한 우주와 억겁의 시간 한 중간에 서 있는 본인이 얼마나 미시적인 존재인지 깨닫게 된다는 것이다.
이러한 관심의 연장선으로, 콩코르디아 집에 있는 모든 물건 중 릭 오웬스가 가장 애정 하는 것은 무려 기원전 740년도에 탄생한 이집트 석관(sarcophagus)이다. 그녀의 이름은 리자(Liza), 영화배우 리자 미넬리(Liza Minnelli)를 따라 지은 것이다.
큰 눈, 길고 오뚝한 코 그리고 온화한 미소가 닮아있는 둘. 리자는 오랜 세월의 흔적으로 다듬어져 자연스러운 윤이 매력적인 나무 석관이다. 오웬스는 어쩌다 석관을 손에 넣게 된 걸까? 이브 생 로랑(Yves Saint Laurent)이 검고 커다란 석관에 기대어 있는 사진을 우연히 보게 되었는데, 그때부터 석관을 갖고 싶었다고 회고한다.
왼쪽부터 콩코르디아 집에 놓인 해골, 베네치아의 해골, 파리 집을 지키는 해골
릭 오웬스는 이탈리아 교회를 장식하는 해골에 강한 이끌림을 느꼈다고 언급하면서, 그가 의과대학 경매를 통해 구매한 해골을 책상 위 단상에 올려놓았다. “나는 이 해골을 메멘토 모리로 사용합니다. 어느 날 내 해골도 누군가의 책상 위에 놓여있겠죠. 그러니까 오늘 하루, 지금 이 순간을 온전히 누리세요”라고 말한다. 여기서 오웬스가 말하는 ‘메멘토 모리’는 뭘까?
마사초(Masaccio), 성 삼위일체 Holy Trinity, 에드바르트 콜리에(Edwaert Collier), 보석함, 해골, 지구본, 류트가 있는 바니타스 정물화 Vanitas Still Life with a Jewellery Box, Skull, a Globe, and a Lute
메멘토 모리의 어원은 라틴어로 “너의 죽음을 기억하라”를 뜻한다. ‘메멘토 모리’의 이미지에는 대개 죽음을 나타내는 해골이 등장한다. 대표적으로 왼쪽 도판, 13세기 마사초(Masaccio)의 그림 성 삼위일체 Holy Trinity를 들 수 있다. 십자가에 못 박힌 예수의 발아래에는 앙상한 해골이 관 안에 뉘어져 있다. 관에는 라틴어로 “나도 지금의 너 같았던 적이 있었다. 너는 나와 같아질 것이다. (IO FUI GIA QUEL CHE VOI SIETE E QUEL CH'IO SONO VOI ANCO SARETE)”가 새겨져 있다. 17세기에 이르러서는 삶의 유한함에 대해 성찰하도록 하는 정물화의 하위장르- ‘바니타스(Vanitas)’-로 자리잡았다.
릭 오웬스의 집에 잠들어있는 해골과 석관 모두 마시초의 그림과 비슷한 맥락일 것이다. 끝이 있기에 더욱 의미 있는 지금, 불가피한 생의 마지막을 매일 같이 직면하고 있는 릭 오웬스는, 현재를 더욱 축복하며 살아갈 수 있는 원동력을 얻는다.
한 소년이 고개를 아래로 푹 떨군 채 그의 야윈 몸을 꽉 감싸 안고 있다. 이러한 자세는 직간접적으로 소년의 심리적인 고통, 슬픔, 체념 혹은 무언가로부터 본인을 보호하고자 하는 몸짓일지도 모르겠다. 릭 오웬스는 소년의 고독한 영혼을 어루만져주고 싶었던 걸까? 혹은 그로부터 본인의 위태로웠던 유년 시절을 떠올리는 걸까?
앞선 두 물건만큼이나 릭이 아끼는 것이 있다면, 그것은 바로 빈 분리파의 유명한 조각가 조지 민(George Minne)의 무릎을 꿇은 젊음 Kneeling Youth이라는 작품이다. 그는 매 여름 베네치아 아파트로 이동할 때면 조지 민의 조각과 석관 그리고 몇 가지 오브제를 챙겨 이사한다. 그리고 다시금 콩코르디아로 돌아올 때면 그들과 함께 여정에 오른다고. “우리는 늘 같이 여행해요, 그만큼 친하니까.” 그러나 이 사실보다 더 흥미로운 것은, 이 조각이 놓여있는 위치이다. 릭 오웬스가 매일 같이 운동하는 홈 짐 바로 앞에 우뚝 솟아서 그를 내려다보는 것.
왼쪽 뒤편에 서있는 조각 작품
릭 오웬스는 결국 이러한 집의 구조에 대해서 일목요연하게 설명해 주는데 “유약한 젊음, 그리고 활기와 힘을 상징하는 짐, 마지막으로 이런 과정의 끝에서 모든 것을 결론 맺는 죽음-아버지의 총(그리고 죽음을 상징하는 해골과 석관)이 완벽한 삼각구도를 이루고 있다.”
오웬스가 살아가는 공간은 생의 순환 그 자체를 내포한다.
그렇다면 패션계의 이단아, 오웬스는 이런 신비로운 집에서 어떻게 하루하루를 보낼까? 그의 데일리 루틴을 살펴보자. 일, 운동, 그리고 수면. 예상외로 단순하다. 그는 아침에 일어나 온몸을 깨끗하게 씻은 뒤 침대 앞에 있는 텔레비전을 켜서 흑백영화나 재즈, 혹은 빠른 비트의 테크노 음악을 튼다. 그리고 정신을 깨워줄 커피 한 잔을 들이킨 후 팩토리로 출근을 해 오전 업무를 마치고, 두 시쯤 집으로 돌아와 간단하게 점심을 먹고 커다란 침대에서 재충전을 위해 매일 낮잠을 잔다. 충분한 휴식 후 여덟 시 반까지 다시 일하고, 한 시간 정도 탄탄한 근육을 유지를 위해 근력 운동을 한다. 그리고는 저녁 식사를 여유롭게 즐기고 잠에 청한다.
엄격한 루틴을 세우고 그것을 매일 수행하는 삶. 단조롭지만 그만큼 필요한 곳에 에너지를 쏟을 수 있도록 해준다.
인테리어에 진심인 오웬스가 직접 가구 디자인까지 나선 건 당연한 일일지도 모르겠다. 오웬스의 가구 만들기는 크리에이티브 파트너이자 뮤즈, 그리고 아내인 미셸 라미(Michèle Lamy)와 나누는 소소한 취미로부터 시작됐다.
2005년, 파리 집을 위해 시작하게 된 실험들은 아르누보 양식, 마야 사원을 비롯한 종교적인 장소들, 그리고 현대 건축의 거장 르코르뷔지에의 유산을 이어받았다. 여기에 릭 오웬스 특유의 노골적이면서 무자비하고 조악한 요소를 더했다. 동물의 뼈와 레진, 콘크리트와 나무 등 이질적인 재료를 조합해 완성된 가구는 어둡고 괴기스럽기까지 하다.
릭 오웬스의 가구는 인간의 편안함, 편리함만을 위해 만들어진 것은 아니다. 그 역시도 그의 가구는
미학을 띄고 있다며 말하고, 아늑함과는 거리가 멀다고 인정한다. 2016년, 그의 ‘불편한’ 가구 컬렉션을 세계적인 미술관, MOCA Los Angeles Rick Owens: Furniture에서 선보이기도 했다.
더불어 최근 몽클레어와의 콜라보로 제작한 투어버스에 이어 그 누구의 방해를 받지 않고 잠을 잘 수 있는 아주 조용한 수면 캡슐 슬리핑 포드(Sleeping Pod)를 탄생시켰다. 실제로 Owenscorp Furniture을 통해 구매도 가능하다고. 이집트 석관에서 영감을 받았다는 Sleeping Pod라고 하는데, 미래에 관이 있다면 이런 모양일까?
어떤 사람에 대해서 깊이 있게 들여다보고 싶으면 어떻게 사는지 보라. 인테리어는 빠르게 변화하는 패션보다 훨씬 영구적이기 때문이다.
-10 Magazine 인터뷰 中
오웬스에게 집은 거주 공간 이상의 의미를 갖는다. 커다란 석회 동굴은 그의 삶의 터전이자 예술적 영감의 원천이다. 집을 비워둠으로써 불필요한 것들에 에너지를 빼앗기지 않도록 경계한다. 그리고 아주 가끔, 철저한 계획하에 물건을 들이고, 곁에 두기 시작하면 아주 오랫동안 아껴준다고 한다.
결국, 천재적인 디자이너가 직접 제작하는 ‘안티-코지’한 가구, 매일 같이 체계적인 루틴을 따르는 것, 그리고 메멘토 모리를 통해 죽음과 눈을 맞추는 일은 모두 릭 오웬스가 진정으로 중요시하는 가치가 어떤 것들인지를 파악할 수 있게 해준다. 긴장을 늦추지 않기 위해 불편함을 긍정하고, 어쩌면 불길한 죽음을 상징하는 것들과 공생하면서 자신의 실존을 더욱 또렷이 응시한다. 릭 오웬스의 메멘토 모리는 단순히 피할 수 없는 죽음에 순응하고, 허망한 인생을 관조하는 것이 아니다. 오히려 운명보다 강한, 삶의 의지 표출이다.
바로 지금, 삶의 본질을 적극적으로 탐구하는 릭 오웬스의 태도를 나의 삶에 적용해보는 것은 어떨까? 결국 우리는 모두 누군가의 책상 위에 있는 해골이 될 테니까!
Published by jentestore 젠테스토어