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by jentestore 젠테스토어 Aug 03. 2023

라프 시몬스가 선택한 사진가

Stories: Fashion and Photography

Fashion and Photography

Raf Simons가 선택한 금기의 사진들


Self Portrait, 1988 ⓒRobert Mapplethorpe Foundation


1989년, 만 42세의 젊은 나이에 생을 마감한 비운의 예술가 로버트 메이플소프(Robert Mapplethorpe). 에로티시즘과 벌거벗은 신체, 본인의 성 정체성을 탐구한 적나라한 사진들로 인해 외설로 취급받았지만, 그가 카메라 렌즈를 통해 기록한 세상은 오늘날까지도 무수히 많은 사람에게 영감을 불어넣어 준다. 심지어 라프 시몬스도 메이플소프의 열렬한 팬이다.



Raf Simons와 함께한 환생


Raf Simons 2017 SS Collection ⓒRaf Simons


Raf Simons의 2017 SS 컬렉션은 이메일 하나로부터 시작되었다. 라프 시몬스가 쇼에 대해 여러 가지 구상을 하며 콜라보레이션이 가능할 법한 아티스트의 이름을 쭉 적어 내려갔다. 그중에는 메이플소프도 포함이 되어 있었으나, 그는 범접 불가일 것이라며 단념하고 그의 이름을 종이와 머릿속에서 깨끗하게 지웠다고 보그 인터뷰 에서 밝혔다. 그로부터 얼마 지나지 않아 메이플소프 재단에게세 한 통의 메일이 오는데, 거짓말처럼 라프 시몬스에게 협업을 제안한 것이다.




재단에서는 라프를 전적으로 믿고 그에게 모든 아카이브를 내어주었다. 컬렉션에 포함된 모든 사진은 굉장히 고심해서 골랐다. 아카이브를 직접 보기 위해 라프 시몬스는 몇 번이고 비행기에 올라탔고, 이 지난한 과정을 거치며 라프 시몬스는 메이플소프에 대한 애정이 더욱 커졌다고 한다.

사진을 티셔츠에 단순히 찍어내는 일은 어느 SPA 브랜드에서도 가능한 일이니, 라프는 욕심을 내서 이번 컬렉션 피스 전부 갤러리에 걸어두어도 손색이 없을만한 예술작품으로 만들어 내고 싶어 했다. 2017 SS 쇼를 보고 있노라면 모델은 작품을 감싸고 있는 프레임 같다는 생각이 든다. 걸어 다니는 예술작품 같달까?



Raf Simons 2017 SS ⓒVogue


자연스러운 곱슬머리, 깊게 파인 볼, 강인한 남성미보다는 앳된 소년의 얼굴을 한 모델들을 젊은 날의 로버트 메이플소프를 무척 닮았다. 사진 속 인물들이 지나간 시간을 뚫고 나와 런웨이 위를 활보하는 것처럼 느껴진다.

이 컬렉션만큼은 라프 시몬스가 로버트 메이플소프라는 예술가에게 바치는 일종의 팬아트이자, 그의 팬들과 함께 나눌 수 있을 법한 아주 고퀄리티 굿즈를 세상에 내놓은 것이다. 라프 시몬스가 인공호흡으로 되살려낸 로버트 메이플소프. 이 협업은 두 예술가가 나눈 사이좋은 악수 같다.




뜨겁고 찬란했던 청춘 열병


라프 시몬스가 이토록 사랑했던 로버트 메이플소프는 대체 어떤 사람이었을까?

1946년, 엄격한 기독교 가정에서 태어난 메이플소프는 그가 나고 자란 배경과는 정반대의 작품 활동을 펼쳤다. 모래를 지나치게 꼭 쥐고 있으면 손가락 사이사이로 모래알들이 새어 나가듯이, 메이플소프도 그를 옥죄고 있었던 환경에서부터 벗어나기 위한 처절한 사투를 벌였다.



Robert Mapplethorpe by Valerie Santagto, 1971 ⓒsheetnoise



그가 남긴 사진이자 흔적은 본인의 성 정체성을 탐구하는 생생한 기록물이다. 더 나아가, 사회적 관습에서부터 벗어나 1970-80년대의 미국 서브컬쳐를 그대로 포착한 것이다. 이 시기에 뉴욕은 지나치게 위험하고 불안한 곳이었다. 대규모 정전 사태가 일어나 시가지 전체가 약탈당하기도 했으며, 골목 사이와 지하철은 누구의 짓인지 모를 낙서로 뒤덮였다. 그리고 이러한 혼란이 극에 달한 1982년, 로버트 메이플소프의 삶까지 앗아간 에이즈(AIDS)가 명명되었다.

그러나 그를 문제적 작품을 다수 남긴 퀴어 사진가 정도로만 생각해선 안 된다. 로버트 메이플소프 스스로가 말했듯, 그에게는 비밀이 없다. 로버트의 가장 큰 매력이자 무기, 솔직함. 자신의 인생에 대해 진솔하게 이야기하고, 대중에게 그 삶을 버젓이 공개할 수 있는 사람이 대체 몇이나 될까?



1972, ⓒRobert Mapplethorpe Foundation / 1972, ⓒRobert Mapplethorpe Foundation
1973, ⓒRobert Mapplethorpe Foundation / 1974, ⓒlacma.org


그의 인생을 들여다보고 나면, 그의 작품이 더욱더 극적으로 다가오기 마련이다. 앞서 언급했듯, 엄격한 기독교 가정에서 자라났으며, 순수 미술의 길을 선택한다고 했을 때 그의 아버지는 냉소적이었다. 사진기를 살 돈이 없어서 다른 영화 감독에게 폴라로이드 SX-70를 빌려서 사진을 찍었다. 웰세를 내기가 어려워, 갈 곳 잃은 예술가들의 터전이 되었던 첼시 호텔에 작품을 저당 잡히고 대신 가장 작은 방 한 칸을 얻어 생활했다. 한때 영혼까지 나눴던 파트너이자 뮤즈였던 패티 스미스와 필연적일 수밖에 없었던 이별을 겪었다. 그리고 메이플소프는 42세라는 젊은 나이에 에이즈로 사망했다.


폴라로이드 SX-70
로버트 메이플소프와 패티 스미스 ⓒVanity Fair, ⓒGerard Malanga
ⓒInterview Magazine
첼시 호텔 ⓒGetty Images, Patti in Chealsea,1971
Ken Moody and Robert 1984
Frank Diaz 1980 / Milton Moore 1981, ⓒRobert Mapplethorpe Foundation


지금까지 보여준 사진은 순한 맛에 불과해서, 그가 불러일으킨 사회적 반향이 감이 안 잡힐 것이다. 어느 정도로 논쟁적이었냐 하면, 1989년 뉴욕에 있는 코코란 갤러리(Cocoran Gallery)가 그의 작품을 회고전을 열고 나서 ‘음란물 전시’라는 죄목 하에 법정 공방까지 치러야만 했다.

수위를 고려해 지나치게 적나라한 “X Portfolio” 시리즈는 이곳에서 보여줄 수 없지만, 그의 가장 도착적인 충동과 깊숙한 욕망이 담긴 작품은 로버트 메이플소프 재단 아카이브와 인스타그램을 통해서 감상하시라. 핸드폰 화면 밝기는 최소한으로 낮추고 보는 것을 추천한다. 주변 사람들에게 오해를 사기에 충분하니까.


“사진가로서 그는 항상 빛을 활용해 일했지만, 마약, 사도마조히즘, 섹스에 대한 어두운 면을 불러내곤 했다. 그는 위대한 예술가일까, 야심에 찬 사기꾼일까. 천사일까, 악마일까. 종잡을 수 없었다.” -영화감독 펜튼 베일리 & 랜디 바바토



Ken Moody 1984, ⓒRobert Mapplethorpe Foundation
Brian Ridley and Lyle Heeter 1979, ⓒRobert Mapplethorpe Foundation / Embrace 1982, ⓒanothermag.com
Lisa Lyon 1980-82, Lisa Lyon 1982 / ⓒRobert Mapplethorpe Foundation
Patti Smith 1978, ⓒchristies.com


그렇지만, 개인적으로 1970-80년대 퀴어 서브컬쳐와 사도마조히즘적 성향에 대해 탐구한 사진보다는 로버트 메이플소프가 남긴 본인의 얼굴을 가장 좋아한다. 연도 별로 휙휙 달라지는 얼굴 표정, 죽음에 가까워질수록 본인의 생의 마지막을 감지한 듯한 담담한 모습까지. 로버트 메이플소프의 자화상만큼 솔직하고 진실한 작품은 없을 것이다.


1975, ⓒRobert Mapplethorpe Foundation
1980, ⓒRobert Mapplethorpe Foundation
1982, ⓒRobert Mapplethorpe Foundation
자신의 죽음을 예감한 로버트 메이플소프 1988, 사망 일년 전 모습 1988 / ⓒRobert Mapplethorpe Foundation


1980년대에 들어서는 그가 인물 탐구뿐만 아니라 조금 더 정적이고 전통적인 미에 대해 탐구하는 듯한 사진들이 여럿 보인다. 꽃과 조각상부터 여러 가지 종류의 정물 사진까지 자신의 피사체를 확장한다. 이때의 작업이 가장 잘 팔렸다고 한다. 그래서 혹자는 로버트 메이플소프가 이처럼 상업적 노선을 택한 것은 철저하게 돈벌이를 위해서라고 하지만, 사진을 흘깃 보더라도 로버트 메이플소프의 지문이 군데군데 찍혀 있다.




Ermes 1988, Bust and Skull 1987 / ⓒRobert Mapplethorpe Foundation
Two Tulips 1984, ⓒRobert Mapplethorpe Foundation
African Daisy 1982, Calla Lily 1985, Flower 1983 / ⓒRobert Mapplethorpe Foundation


어딘가를 응시하고 있는 조각상, 서로 입을 맞추기 위해 목을 가누는 것 같은 튤립, 웅크리고 있는 외로운 꽃, 천장으로 치켜올린 두 다리를 닮은 카라. 인물이든, 정물이든 그의 사진에는 자신의 시선으로 바라본 세상을 담고 있다.



@mapplethorperobert


“나는 ‘쇼킹’이라는 단어를 그다지 좋아하지 않습니다. 그보다 내가 찾고 있는 건 ‘예상치 못함’이죠. 나는 한 번도 보지 못한 것들을 찾아 헤매고 있습니다…나는 그 사진을 찍어야만 하는 운명이었습니다. 그들에게 어떠한 의무를 느꼈기 때문에요.” -ARTnews 인터뷰에서, 1988


결국 천재적 예술가가 남긴 발자취의 모든 것은 예상치 못하다는 점과, 로버트 메이플소프의 자화상이라는 공통점을 안고 있다. 그가 남긴 파편들을 통해 그의 세상에 잠시 들어갔다 나올 수 있는 것이다.

자신의 연약하고 비밀스러운 부분까지 꺼내 보여 줬던 사진가. 2023년 오늘날이 되어서도 그의 작품이 여전히 유의미한 것은 가장 자기다운 사진을 남겼기 때문일 것이다. 로버트 메이플소프처럼 Raf Simons와의 콜라보는 어려울 수도 있지만, 내 사진이 40년 뒤에 런웨이 위에 오를지도 모르니까. 이제는 우리가 카메라를 들 차례!



Published by jentestore 젠테스토어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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