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by 계정 Oct 18. 2021

프랑스에서 살았던 곳들 (2)

 이쌍죠는 파리에서 500km 정도 떨어지고, 리옹에서도 100km 정도 떨어진 작은 마을이다. 이곳에 오기로 결정하기 전까지 이름도 몰랐던 마을. 아마 프랑스 국립 제과 학교(l'École Nationale Supérieure de Pâtisserie)에 다니지 않았다면 나는 평생 이쌍죠라는 마을이 존재한다는 사실을 알지 못했을 것이다.


 학교가 2월에 시작해 내가 체류하던 이쌍죠는 매우 추웠다. 고도가 해발 약 830미터로 높은 편이다. 우리나라로 치면 대관령 정도 높이. 학교에서 배운 재미있는 사실은 고도가 높으면 제과에도 영향을 끼친다는 것이다. 카라멜을 만들 때 설탕을 원래보다 섭씨 2도 정도 낮춰 끓여야 한다.


 이쌍죠의 날씨는 변덕스럽다. 해가 쨍한 날에는 따뜻하고 덥기까지 하지만 밤이 되면 기온이 뚝 떨어졌다. 뼛속 마디마디가 시릴 정도였다. 4월 중순에 눈이 펑펑 내렸던 적도 있다. 소복소복 쌓인 눈을 밟으며 학교에 가면 기분이 좋았다. 집에 돌아와 홍차를 끓이고 학교에서 만든 디저트를 먹을 때는 세상을 다 가진 것처럼 행복했다.


 마을 주민 대부분은 노인이거나 제과 학교에 다니는 학생들. 생테티엔느와 르 퓌 엉 블레에 직장을 가진 사람도 있긴 하지만 많지는 않다. 여느 지방 군소 도시가 그렇듯 젊은 연령층은 대도시를 향해 떠난 모양이다.

 동네가 작기 때문에 어디든 걸어 다닐 수 있지만 동시에 동네가 작기 때문에 자동차가 필수일 수도 있다. 집 근처에 상점이 적은 편이어서 대형 마트에 가야 하는데, 대형마트는 동네 외곽에 있기 때문이다. 걸어가기에 그렇게 멀지는 않지만 식료품을 잔뜩 채운 바구니와 함께 언덕을 오르는 일은 제법 힘들다. 그래서인지 작은 마을 치고는 자동차가 제법 많았다.


 나는 차가 없었지만 튼튼한 다리가 있다. 학기가 시작하기 전 동네 곳곳을 산책했다. 집 근처에 정육점과 치즈가게, 피자집이 있었지만 코로나 탓인지 대부분 문을 닫았다. 일주일에 한 번 열리는 장날을 제외하고는 마을은 한적했다.


 날씨가 좋은 날에는 마을 주변 야트막한 동산에 올랐다. 동산에서 보이는 조망을 좋아했다. 저 멀리 지평선이 보이고 띄엄띄엄 자리한 여러 마을이 보였다. 산책 중에는 사람보다 동물을 더 자주 만났다. 돌담 위에서 하품하는 길고양이, 사람을 보면 졸졸 따라오는 당나귀 네 마리, 느긋하게 풀을 뜯는 윤기가 흐르는 말, 언덕 위에 해바라기를 하는 양 떼. 동화 속 한 장면처럼 마술 같은 풍경들.

 살았던 집은 약 9평 정도 되는 스튜디오였다. 혼자 살기에 딱 알맞은 크기였다. 방문할 여건이 되지 않아 전화와 사진만으로 방을 보고 계약했다. 입주하던 날, 집 상태에 충격을 받았다. 이전 세입자가 담배를 얼마나 피웠는지 방 곳곳에 담배냄새가 짙게 뱄고 청소를 얼마나 안 했는지 먼지가 두텁게 쌓여있었다. 풍채 좋은 주인아저씨가 빗자루를 가져와 청소를 해준다고 했지만 여전히 지저분했다. 그래도 집 자체는 마음에 들었다. 커다란 창문과 두툼한 덧창 때문이었을 것이다. 파리에서 자주 보던 빗살 덧창이 아닌 무지막지한 나무 덧창. 그 두툼한 덧창이 왜인지 모르게 마음에 들었다. 주인아저씨가 떠나고 나서 창문과 덧창을 활짝 열고 청소에 돌입했다. 구석구석 빗자루로 쓸고 전등에 묻은 먼지를 털어내고 찬장을 열어 정리하고 다시 한번 꼼꼼하게 닦았다. 티벳제 향과 라벤더 초, 탈취제를 사 왔다. 담배 냄새는 쉬이 사라지지 않았지만 집은 그럭저럭 깨끗해졌다.


 첫인상이 틀리지 않았는지 두툼한 덧창은 내게 편안한 잠을 선사했다. 대낮에도 덧창을 닫으면 한밤처럼 어두컴컴했다. 낯선 마을의 낯선 바깥으로부터 나를 지켜주는 기분이었다. 창틀에 걸터앉아 온 힘을 다해 끌어당겨야 열고 닫히긴 했다. 두툼한 덧창의 열기 닫기는 내게 세계를 닫고 세계를 여는 감각이었다. 덧문을 닫는다. 끝나지 않은 통금 아래 아무도 돌아다니지 않는 밤 비현실적인 침묵으로 가득한 바깥 세계는 사라진다. 덧문을 연다. 쏟아지는 햇살과 소박한 시골 마을 풍경, 그리고 청량한 아침 향기로 가득한 새로운 세계가 탄생한다. 길었던 이쌍죠의 밤과 그 작은 방에서 내가 얻은 것들은 분명 파리와는 달랐다.




 학교를 마치고 돌아온 파리. 지금은 노트르담 데 샹 지구에 살고 있다. 파리 6구에 위치해 있고 줄여서 NDDC(Notre Dame des Champs)라고 부른다. 20세기 초반 프랑스식 카페 문화가 번성했던 동네로 어니스트 헤밍웨이, 파블로 피카소, 오귀스트 로뎅 같은 예술가들이 단골이었던 장소가 여전히 성업 중이다. 알베르 카뮈, 보부아르, 사르트르 등이 자주 찾던 카페가 있는 생 제르망 데 프레 지구도 가깝다. 커피 마실 걱정은 없는 동네라고 할 만하다. 사실 커피는 어디에서나 마실 수 있지만… 느낌적인 느낌!

 이번엔 무려 프랑스식 4층(한국식 5층)에 살고 있다. 층고가 3미터에 달한다. 엘리베이터는, 없다. 덕분에 매일 등산을 하는 것처럼 건강에는 무척 좋다. 아마도. 좋았으면 좋겠다. 열심히 계단을 오르락 내리락 하니까. 부디 좋기를.


 연도는 1880년. 140년 정도 수령을 지닌 건물이다. 건물 자체에서 시간을 흡수한 듯 진한 나무 향이 나서 좋다. 지하에는 창고가 있는데, 생긴 모습은 거의 지하감옥. 지하 탐방하다가 어디론가 이어지는 굴을 발견했다. 또 다른 세계로 이어지는 굴처럼 생겨서 들어가 볼까 하다가 무서워서 포기했다. 언젠가 용사를 모아 탐방을 떠나야겠다는 다짐을 해본다.


 커다란 창문에서 보는 풍경을 좋아한다. 우선 1722년에 지어진 바로크 저택과 벽을 감싼 담쟁이넝쿨 그리고 우뚝 솟은 밤나무가 눈에 들어온다. 이어서 저택 바로 옆에 있는 거대한 얼음조각을 닮은 우체국이 보인다. 그 주변에는 19세기와 20세기에 지어진 건물이 옹기종기 서있다. 그 건물들 너머로 1889년 건축된 파리의 상징 에펠 타워가 빼꼼 모습을 드러낸다. 도시에 켜켜이 쌓여있는 시간이 눈앞에 펼쳐진다. 이 풍경이 여러 시간이 중첩된 파리를 상징하는 듯하다.


 가끔은 글 쓰러 카페에 간다. 카페 플로르나 라 클로즈리 데 릴라 같은 유명한 카페에 가서 ‘옛 작가들의 기운을 받아 소설을 써야지!’라는 생각을 할 때도 있지만 실제로는 관광객이 너무 많아 집중하기는 어렵다. 그리고 들어오려고 줄 서는 사람이 있는데 몇 시간씩 앉아 글을 쓸 정도로 대담하지는 못하다. 그런 곳보다는 적당히 오래된 느낌이 있으면서 공간이 넓은 카페를 선호한다.


 파이프 담배를 문 강아지 그림이 귀여운 오 시앙 키 퓌므를 가장 자주 간다. 과장 조금 보태서 곰만큼 커다란 셰퍼드가 카페 마스코트. 덩치에 비해 올망졸망한 눈이 귀엽다. 에스프레소나 카페 알롱제나 맥주 한 잔을 시킨다. 엄청나게 맛있지 않지만 어딘가 향수를 자아내는 맛이다. 어렸을 때 들은 애니메이션 주제가처럼. 옅게 밴 담배 냄새와 적당히 눅진한 가죽 시트에 푹 빠져 글에 집중할 수 있다. 잡담하는 점원과 낮게 깔린 음악 소리, 그리고 TV에서 나오는 소음이 오히려 마음을 텅 비워준다. 여기서 쓴 소설이 세상에 나오고 언젠가 여행 책자에 이곳이 한 소설가가 소설을 완성한 곳이라는 설명이 쓰이면 얼마나 좋을까 하는 상상을 해본다.


 이 동네는 낮과 밤이 확연히 다르다. 낮에는 조용하고 차분한 느낌. 근처 정육점이나 와인 가게에 가도 대부분 점잖아 보이는 노년층 손님이 많다. 노천카페에 앉아 종이 신문을 보거나 십자 낱말풀이를 하거나 빛바랜 문고본을 읽는 중장년층이 주로 보인다. 낮에는 실제 날씨가 어떻든 거리가 가을철 잘 익은 햇살처럼 따뜻하다. 밤이 되면 다른 모습으로 변모한다. 어스름이 내려앉고 거리 조명이 주황빛으로 빛나고 네온사인이 여기저기 켜진다. 카페는 맥주를 마시러 온 사람들로 가득하다. 유명한 레스토랑에는 입장을 기다리는 줄이 길게 늘어선다. 연령대도 다양해진다. 어린이가 있는 가족, 활기 넘치는 젊은 커플, 멋스럽게 차려입은 중년 남성들. 거리는 옛 프랑스 소설에서 정숙한 부인이 가면무도회에서 새로운 자아를 드러내는 것처럼 새로워진다.


 헤밍웨이는 파리에 대해 말하며, 도시 자체가 늘 프로그램을 바꾸는 순회공연 같다고 표현했다. 나 역시 거기에 동감한다. 파리는 구석구석 늘 새로운 모습을 숨기고 있다. 이상한 나라를 탐험하는 앨리스처럼 가본 곳에서도 또 몰랐던 무언가를 찾게 된다. 기회가 되어 살아보지 않은 동네에 또 살게 된다면 그곳에서 어떤 일을 만나게 될까 기대된다. 늘 프로그램을 바꾸는 순회공연에서 다음에 무엇이 나올까 기다리는 것처럼.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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