비어링페어링 두 번째 맞춤
벨기에는 세상에서 맥주 종류가 가장 많은 나라로 꼽힐 정도로 그곳에는 다양한 맥주가 존재한다. 맥주 종류가 많은 이유는 여러 가지가 있겠지만, 그중에서 가장 큰 이유는 수많은 수도원에서 자체 개발한 맥주 양조법이 있었기 때문이다. 중세 시대에는 종교적 이유로 수도사들이 금식을 지켜야 하는 때가 많았다. 규율이 중요하다지만 영양을 섭취하지 않고 어찌 살 수 있겠는가. 그때 영양을 채워주면서 금식의 계율을 어기지 않는 방법이 있었으니 바로 맥주 마시기였다.
맥주를 만드는 과정은 순탄치 않다. 무거운 재료를 옮기고 복잡한 배합을 하고 완성되기까지 심혈을 기울여야 한다. 그 노동의 시간도 수도사에게는 금욕적이고 엄격한 수도 생활의 일부로서 훌륭한 역할을 수행하기도 했다. 금식의 계율을 벗어나 영양을 섭취하고 만드는 과정 또한 훌륭한 수도 생활이 되어주니 각지의 수도원에서 맥주 양조가 성행할 수밖에 없었다.
그렇게 다양한 형태로 발전한 벨기에 수도원 맥주는 현재는 크게 두 가지로 나눌 수 있다. 트라피스트 에일(Trappist Ale)과 애비 에일(Abbey Ale)이다. 전자는 현재까지도 가톨릭 트라피스트 수도회에 의해 양조된다. 말 그대로 정통 수도원 맥주인 셈. 프랑스혁명과 세계 대전을 겪으며 유출된 수도원 양조법을 사용해 만든 맥주가 횡행하자 차별화를 두기 위해 트라피스트 수도회가 협회를 조직해 트라피스트 에일을 공인하게 되었다.
후자인 애비 에일은 유출된 수도원 양조법으로 만든 맥주거나, 트라피스트 협회에게 인증을 받지 못한 수도원 맥주 그리고 이제는 사라진 수도원의 이름을 따서 만든 맥주를 뜻한다. 애비 에일 역시 특징과 맛은 트라피스트 맥주와 흡사하다. 트라피스트 맥주와 맛과 향은 비슷하면서도 비교적 구하기 쉽다. 트리펠 카흐멜리에 역시 애비 에일에 속한다.
트리펠 카흐멜리에는 1679년에 카르멜 수도회에서 양조된 방법을 1996년에 복원해 만들었다. 밀과 보리, 귀리까지 넣었으니 그 당시 수도사에게 훌륭한 영양 공급원이 아니었을까 싶다. 잘 사용하지 않는 귀리맥아를 사용한 덕에 독특한 풍미가 특징적이다.
보스틸스 양조장은 1791년에 개업해 200년이 넘는 역사를 지녔다. 벨기에 왕국이 성립된 해가 1831년이니 국가보다 오래된 양조장이다. 보스틸스 가문이 일곱 세대를 거치며 경영하고 있다. 그동안 마을 시장을 세 명이나 배출하기도 했으니 지역 유지이기도 하려나. 200년 넘는 가업이 있다면 어떤 느낌일까 상상이 잘 안 간다.
독특한 잔으로 유명한 파우웰 콱(Pauwel Kwak) 맥주를 양조하는 곳이기도 하다. 80년대에 파우웰 콱이 성공하는 걸 보고 강한 도수의 에일이 유행하리라고 예측했다. 그래서 옛 수도원의 양조법을 부활시켜 만든 맥주가 바로 8.4%의 트리펠 카흐멜리에이고 현재까지도 인기 있는 맥주이니 사업가적인 감이 좋은 듯하다.
트리펠 카흐멜리에 Tripel karmeliet
종류: 상면발효맥주, 벨지안 블론드 트리펠 / 애비 에일
원산지: 벨기에, 부겐후트(Buggenhout)
양조장: 브라스리 보스틸스(Brasserie Bosteels)
원료: 물, 보리맥아, 밀맥아, 귀리맥아, 홉
도수: 8.4%
용량: 330ml
1인분
링귀니 면 80g
새우 6마리, 마늘 3쪽, 파슬리, 페페론치노나 청양고추 약간
올리브유, 소금, 후추
1. 끓는 물에 소금을 넣고 면을 삶는다. 삶은 면은 체에 밭쳐 물기를 제거한다.
2. 달군 팬에 올리브유를 두르고 마늘과 고추를 볶는다.
3. 마늘 향이 올라오면 새우를 볶는다. 후추를 뿌린다.
4. 파스타면을 넣고 볶는다.
5. 취향에 따라 소금을 추가해 간한다.
6. 올리브유를 뿌린다.
7. 파슬리를 뿌려 마무리한다.
새우 마늘 오일 파스타
집에서 간단하게 휘리릭 만들 수 있는 새우 마늘 오일 파스타. 재료가 많이 들어가지 않으면서도 맛있게 즐길 수 있다. 개인적으로 자주 애용하는 파스타 로테이션 중 하나다. 오일 파스타, 토마토 파스타, 크림 파스타. 이 세 가지 소스와 새우, 베이컨, 기타 해산물 같은 재료를 조합하면 무궁무진하게 다양한 파스타를 만들 수 있다. 식사 구성할 때 매우 유용하다.
느지막하게 집에 돌아와 쉬이 만들 수 있는 요리에 맥주를 곁들여 먹으면 피로가 저절로 풀린다. 미니멀하게 알리오 올리오도 좋지만 때로는 맥시멀 하게 먹고 싶다. 과하게 화려하지 않지만 어느 정도 호사스러운 한 끼 식사를 위해 새우와 후추, 파슬리를 추가한다. 알싸한 마늘 향과 은은한 올리브 오일, 달큼한 육즙이 가득한 새우에 면을 돌돌 말아 한 입에 쏙! 매콤한 맛을 올리브 유가 부드럽게 감싸고 통통하게 살이 오른 새우가 위에서 통통 튀는 듯하다. 돌돌 말아 한 입, 돌돌 말아 한 입 먹다 보면 어느새 입술이 반짝반짝 빛난다. 그럴 때면, 맥주 한 잔이 빠질 수 없다. 오늘의 맥주는 트리펠 카흐멜리에!
트리펠 카흐멜리에 x 새우 마늘 오일 파스타
트리펠 카흐멜리에는 복합적인 맛을 가졌지만 그 맛이 한쪽으로 치우치지는 않은 균형 잡힌 맥주다. 탄산감이 강한 편이지만 목넘김은 부드럽다. 어느 계절이든, 마음 편하게 마시기 좋다. 다만 도수가 8.4%로 트리펠의 강인함을 보여주니 주량에 따라 조절은 필수. 마실 때 알코올 향이 대놓고 드러나지 않기에 갑작스레 올라오는 취기에 놀랄지도 모른다.
균형이 잘 잡힌 맥주답게 대부분 요리와 잘 어울린다. 이번 페어링에서 신경 쓴 전략은 닮아 있는 맛으로 서로를 살려주게끔 하는 것이었다. 트리펠 카흐멜리에는 맥아적인 특색에서 나오는 은은한 단맛과 풍부한 과일 향이 매력적이다. 고급스러운 단맛이라고 표현할 수 있는 이러한 단맛과 어우러지는 건 마찬가지로 고급스러운 단맛이다. 그건 바로 해산물!
흰 살 생선이나 문어, 관자, 새우를 요리하면 해산물 특유의 달큰함이 살아난다. 그 달큰한 맛이 맥아에서 나오는 향긋한 단맛과 잘 어울리라고 생각했다. 동시에 쌉싸름한 홉이 올리브유에서 나온 기름진 맛을 더욱 강조해준다. 그런 점에서 올리브유와 새우를 사용한 새우 마늘 오일 파스타는 트리펠 카흐멜리에의 훌륭한 짝이 되어 줄 것이다.
맥주와 요리를 차려 놓았고 이제 맛을 볼 차례. 트리펠 카흐멜리에는 맑은 황금빛으로 빛난다. 우선 입가심으로 맥주 한 잔을 마신다. 바나나와 꿀 향이 입안을 채운다. 단맛이 이어지다가 홉이 쌉싸름하게 올라오고 마지막에는 새콤한 귤 맛으로 마무리된다. 트리펠치고는 알코올이 강하지 않아서 쉬이 마실 수 있다.
한 모금 마시고 파스타를 먹으면 새우 맛이 극대화된다. 풍요로운 바다의 단맛이 배가되어 맛있다. 입안이 정리되니 잘 구워진 마늘 향과 살짝 매콤한 홍고추, 고소한 올리브유 맛이 더욱 잘 느껴진다. 이어서 파스타를 먹고 맥주를 한 잔! 홉이 혀를 자극해 매운맛이 더욱 살아난다. 매운맛을 좋아하는 사람이라면 혀에 퍼지는 찌릿한 느낌을 좋아할 것 같다. 자극된 혀는 맛을 민감하게 받아들인다. 맥주를 다시 한 모금 마시면, 트리펠 카흐멜리에가 가진 맛과 향이 생생하게 다가온다. 열대 과일과 감귤류 과일이 주는 달콤 새콤한 맛과 은은한 꿀과 바닐라, 톡 하고 등장하는 계피 향이 어우러져 입을 즐겁게 만든다. 늦은 저녁, 잘 어울리는 맥주와 요리를 먹는 일은 즐겁다. 배가 불러오고, 눈이 스르르 감길 것 같다. 먼 옛날 존재했을 트리펠 카흐멜리에를 담그는 수도사를 만나 한 잔 선물로 받는 꿈을 꾸면 좋겠다.
비어링 페어링이란?
'맥주를 마시다'라는 의미로 제가 만든 동명사(beering)와 '곁들이기'를 뜻하는 동명사(pairing)를 합쳐서 만든 조어입니다.
하나의 맥주, 그리고 그 맥주와 곁들이기 좋은 요리를 소개합니다.
소개드린 맥주와 요리를 함께 맛보신다면 경험을 공유해 주시길 부탁드려요 :)