오대산 하면 떠오르는 추억이 있다. 고등학생 시절 수련회에 관한 이야기다. 나의 모교는 미션 스쿨이라서 수련회 일정 중에 여느 고등학교와는 다른 행사가 있었다. 바로 '세족식'이다. 세족식은 예수님께서 제자들의 발을 씻겨 주신 예식인데, 마찬가지로 담임 선생님께서 반 학생들의 발을 씻겨 주는 행사였다. 수련회에 가기 전 며칠 동안 우리는 세족식 이야기로 웅성웅성했다. 그도 그럴 것이 고등학생이 된 내 발을 엄마가 씻겨 준다고 해도 부끄러운데, 담임 선생님이라니! 수련회가 코 앞으로 다가 온 어느 날 수업에 들어오신 과학 선생님께서 "너희 반 담임 선생님은 발가락 사이사이까지 다 닦아 주시니까 세족식 하기 전에 발 잘 닦아~"라고 하시는 게 아닌가! 알고 보니 담임 선생님들 간에도 발을 씻겨주는 이벤트가 있었고, 전 해에 과학 선생님의 발을 우리 담임 선생님께서 씻겨주셨는데 발가락 사이에도 손을 넣어 닦아주셔서 당혹스러웠다는 이야기였다. 드디어 수련회 세족식 행사가 있던 날 번호 대로 줄을 서서 차례를 기다리는데, 세족식을 마친 몇몇 아이들이 훌쩍이고 있었다. 부끄러워서 아무 생각도 안 날 것 같은데 눈물을 훔치는 아이들을 보니 조금 의아했다. 그리고 내 차례가 되었을 때 아이들이 왜 훌쩍이는지 조금은 알 것 같았다. 과학 선생님이 말씀하신 발가락 사이사이를 포함해 정성스레 발을 씻겨주시는 담임 선생님의 모습을 내려다보는데 괜히 코가 찡했다. 나는 이 씨라서 거의 후반에 순서가 왔는데, 이미 앞에 30명가량의 아이들의 발을 씻겨 주셨음에도 지친 내색 하나 없이 나의 발을 씻겨주시는 선생님을 보고 있으니 알 수 없는 기분이 들었다. 나는 종교가 없고 이 글은 예수님을 만난 간증도 아니다. 하지만 그 순간만큼은 세족식의 의미가 무엇일까 하는 생각이 들었다. 예수님과 선생님께서는 무슨 마음으로 제자들의 발을 씻겼고 제자들은 씻김을 받을 때 무슨 생각을 했을까. 고등학교를 졸업한 지도 오래되어서 수련회는 거의 생각이 안 나는데 세족식만큼은 지금까지도 그날의 분위기와 내 시선에서 보이는 담임 선생님의 모습 등 많은 것이 기억난다. 기독교인이 아닌 나는 그 의미를 잘 모르지만 내 기억 속의 그날을 생각하면 따뜻한 기분이 든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