소통과 삶의 순환을 말하는 ≪한강 디에센셜≫
내게 2024년도의 키워드는 '읽기'였다. 시집을 포함해 총 92권의 책을 읽었다. 인생에서 역대급의 독서량이다. 2023년도 코로나바이러스감염증-19에 전염된 뒤 후유증으로 2주 정도 이석증을 앓았다. 그리고 곧바로 목 주위가 퉁퉁 붓는 침샘염에 걸려 고통을 겪었다. 동시에 입 안 구석구석 생채기에 염증이 계속 올라와서 치료를 한 번 받으면 며칠을 제대로 먹지 못했다. 또, 그 사이 오래 앓던 이의 상태가 더욱 안 좋아졌다. 어떤 이가 어떻게 안 좋은지 치아 엑스레이나 파노라마로 정확하게 보이지 않아서 치과를 여기저기 옮겨 다니며 치료를 미루다가, 어쨌든 10년 가까이 아픈 상태가 계속 나빠지고 있기 때문에 최후로 발치를 하기로 했다. 임플란트를 식립할 자리가 부족해 전혀 고려하지 않았던 치아 교정을 시작해야 했고, 교정을 하기 위해서는 구강이 너무 좁아 물리적으로 힘을 줘서 구강을 넓히는 작업을 해야 했다. 씹지를 못하니 거진 두 달 동안 음료와 죽으로만 끼니를 이었다. 살이 굉장히 많이 빠졌다. 건강에 대해서만 나열해도 이 정도다.
동료의 부당해고로 업무 환경이 극악에 달았고 전화위복, 이를 계기로 더 나은 곳으로 이직했다. 2년 계약 만기로 전셋집을 빼려고 하니 집주인이 잠수를 타서 겨우겨우 이사를 했다. 이사할 집을 찾아볼 시간이 일주일뿐이었다. 또 전화위복, 훨씬 더 넓은 원룸으로 더 좋은 조건에 들어갈 수 있었다.
아픈 몸을 이끌고 일과 일을 위한 기술에만 집중하다 보니, 기획한 책이 2종이나 세종도서로 선정되었다. 모든 것이 갚아진 기분. 그 틈으로 나에게 휴식은 독서였다. 너무 많은 이들의 입에서 오르내린 이름이어서 괜스레 멀리 두던 한강 선생님이 수상의 쾌재를 우리나라의 기쁨으로 가져오신 후 연말부터는 <희랍어 시간>을 시작으로 ≪채식주의자≫, ≪소년이 온다≫를 연달아 읽고 있다. 오늘은 그중 <희랍어 시간>이 담긴 ≪한강 디에센셜≫을 통해 수식언(修飾言)에 대해 살펴보고자 한다.
모든 사물은 그 자신을 해치는 것을 자신 안에 가지고 있다는 걸 논증하는 부분에서요. 안염이 눈을 파괴해 못 보도록 만들고, 녹이 쇠를 파괴해 완전히 부스러뜨린다고 예를 들어 설명하고 있는데, 그것들과 유비를 이루는 인간의 혼은 왜 그 어리석고 나쁜 속성들로 인해 파괴되지 않는 겁니까?
수식언은 관형사와 부사로 나뉘는데, 관형사는 체언 앞에 놓여서 그 체언의 내용을 자세히 꾸며 주는 품사이다. 위 대목에서 '그'는 특정한 대상을 가리키는 동시에 '자신'이라는 보통 명사를 꾸며 주고 있으므로 지시관형사이다.
또 다른 지시관형사를 살펴보자.
투명한 테이프로 입이 틀어막힌 사람처럼 그녀의 입술이 굳어 있는 것을 그는 모른다. 간밤에 이 방에서도, 첫 버스를 타고 집으로 돌아가서도 그녀가 잠들지 못한 것을 모른다. 뜨거운 물과 아이의 거품비누로 오랫동안 샤워를 한 뒤, 식탁 앞에 앉아 희랍어 공책을 펼친 것을 모른다.
'이' 또한 화자가 머무는 특정한 공간을 가리키며 '방'이라는 보통 명사를 꾸미고 있기에 지시관형사이다. 관형사에는 특정한 대상을 지시하여 가리키는 지시관형사 외에도, 사람이나 사물의 모양, 상태 성질을 나타내는 성상관형사('새', '헌', '옛', '뭇' 등), 사물의 수나 양을 나타내는 수관형사('두 사람'의 '두', '세 근'의 '세' 등)가 있다.
수관형사에 대해 떠올려 보기 위해 관계언에 대해 살펴볼 때 읊었던 솔벨로의 ≪오늘을 잡아라 Seize the Day≫ 한 구절을 다시 가져와보겠다.
그녀는 매우 열심히 노력했지만 뉴욕만 해도 붓과 물감을 만지는 사람이 5만 명은 넘을 텐데 사실상 저마다 저 잘난 맛에 산다. 뉴욕은 미술계의 바벨탑과 다름없다.
'5만'은 수를 나타내며 '명'이라는 의존 명사를 꾸며 주기에 수관형사이다. 사물의 수량이나 순서를 나타내는 체언, 수사(e.g. 셋 다 설탕에 굴려드릴까요?)와 구별된다.
관형사가 체언(명사, 대명사, 수사) 앞에 놓여서 그 체언의 내용을 자세히 꾸며 주는 품사라면, 부사는 용언(동사, 형용사) 또는 다른 말 앞에 놓여 그 뜻을 분명하게 하는 품사이다. 관형사와 부사는 모두 활용하지 않는다.
성상부사는 사람이나 사물의 모양, 상태, 성질을 한정하여 꾸미는 부사이다.
그녀는 매우 열심히 노력했지만 뉴욕만 해도 붓과 물감을 만지는 사람이 5만 명은 넘을 텐데 사실상 저마다 저 잘난 맛에 산다. 뉴욕은 미술계의 바벨탑과 다름없다.
'열심히'는 '노력'에 '하다'가 붙은 '노력하다'라는 상태 동사를 꾸미는 성상부사이며, '매우'는 부사 '열심히'를 다시 꾸미는 성상부사이다. 부사 또한 성상부사 외에도 처소나 시간을 가리켜 한정하거나 앞의 이야기에 나온 사실을 가리키는 지시부사('이리', '그리', '내일', '오늘' 등), 용언의 앞에 놓여 그 내용을 부정하는 부정부사('안', '못' 등)가 있다.
지금까지 읽어 온 한강 선생님의 작품에는 특히나 부정부사가 많이 보인다. 못 보고, 안 보고, 듣지 못하고, 듣지 않기도 하고, 말하지 못하고, 말하지 않는 인물들 사이의 소통과 자신의 타자화, 타인의 자기화, 그리고 삶의 순환을 여러 부정부사로 들여다볼 수 있다.
모든 사물은 그 자신을 해치는 것을 자신 안에 가지고 있다는 걸 논증하는 부분에서요. 안염이 눈을 파괴해 못 보도록 만들고, 녹이 쇠를 파괴해 완전히 부스러뜨린다고 예를 들어 설명하고 있는데, 그것들과 유비를 이루는 인간의 혼은 왜 그 어리석고 나쁜 속성들로 인해 파괴되지 않는 겁니까?
완전히 모든 것을 못 보게 될 나이는 아직 나에게서 멀리, 충분히 떨어져 있었습니다. 쓰라리고도 달콤한 그 슬픔은, 믿을 수 없을 만큼 가까이 있는 당신의 진지한 옆얼굴에서, 미세한 전류가 흐르고 있을 것 같은 입술에서, 그토록 또렷한 검은 눈동자들에서 흘러나온 것이었습니다.
눈을 뜨면 펄펄 눈이 내리고 있을 것 같아, 질끈 감은 눈꺼풀에 힘을 준다. 눈을 감았으므로 보이지 않는다. 반짝이는 육각형의 커다란 결정들도, 깃털 같은 눈송이들도 보이지 않는다. 짙은 보랏빛 바다도, 흰 봉우리 같은 빙하도 안 보인다.
예시를 통해 알 수 있듯 성상부사, 지시부사, 부정부사는 한 번에 문장의 한 성분만을 꾸며 준다. 부사는 문장 전체 또는 구 전체를 꾸밀 수도 있는데 이는 문장부사라고 한다. 즉, 부사는 크게 성분부사(성상부사+지시부사+부정부사)와 문장부사(양태부사+접속부사)로 나뉜다고 생각하면 된다. ≪한강 디에센셜≫에 등장하는 다양한 문장부사들을 나열해보며 이번 글을 마무리해보고자 한다.
보르헤스의 이 얇은 책이 그 목록에 끼어든 것은, 서양 사람이 쓴 책이니만큼 아마 기초적인 입문서가 되어줄 거라는 실질적인 기대 때문이었다. <희랍어 시간>
지금 당신이 겪는 어떤 것으로부터도 회복되지 않게 해달라고, 차가운 흙이 더 차가워져 얼굴과 온몸이 딱딱하게 얼어붙게 해달라고, 제발 다시 이곳에서 몸을 일으키지 않게 해달라고, 당신은 누구를 향한 것도 아닌 기도를 입속으로 중얼거리고, 또 중얼거린다. <회복하는 인간>
한 사람과의 통화가 끝나면 바로 전화기의 후크를 누르고 다음 사람의 전화번호 아래 손톱으로 줄을 긋는 내 동작에는 오래전 미술잡지사에서 일할 무렵 급히 필자를 찾아 청탁전화들을 돌리던 때와 같은 기민함이, 그리고 아마도 약간의 광기가 배어 있었던 것 같습니다. <파란 돌>
이제 곧 이 무더운 여름이 끝나고 우리는 가을 속으로 들어가는데, 이 여름으로조차 끝내 넘어오지 못했던 사람들이 있다는 사실을. 산문 <여름의 소년들에게>