빈자리가 가르쳐준 가족 사랑
다시, 완전체의 식탁
막내 아들이 군에 가 있는 동안 집안의 공기는 묘하게 가벼웠다. 네 명 중 한 명이 빠졌을 뿐인데, 그 빈자리는 숫자보다 훨씬 육중한 무게로 다가왔다. 아내의 국 냄비는 한 뼘 작아졌고, 거실의 소란스러움도 자연스레 잦아들었다. 가족이란 톱니바퀴처럼 맞물려 돌아가는 존재라는 사실을, 우리는 빠진 톱니 하나가 만들어낸 삐걱거림을 통해 아프게 배웠다. 셋이서 외식을 할 때면 늘 후렴구처럼 말이 흘러나왔다.
"여기에 막내만 있으면 딱인데."
오늘, 식탁 위에 드디어 숟가락 네 벌이 놓였다. 숫자는 단 하나 늘었을 뿐인데, 집 안의 공기색이 완전히 달라졌다. 불과 며칠 전까지만 해도 세 벌로 충분했던 식탁은, 오랫동안 비워 두었던 자리를 되찾은 듯 유난히 단정하고 든든하다. 훈련소 입소 날, 짧게 깎은 머리가 어색해 연신 뒷머리를 긁적이던 막내아들이 마침내 첫 휴가를 나왔다. 단 3박 4일. 억겁의 시간 같던 기다림에 비하면 찰나와 같은 순간이지만, 그 시간이 이 집에 남길 여운은 결코 짧지 않을 것이다.
군복을 입은 아들의 어깨는 눈에 띄게 넓어졌지만, 웃을 때 번지는 개구쟁이 같은 표정은 여전했다. 그 얼굴을 마주하는 순간, 우리는 굳이 긴 말을 보태지 않았다. 김이 모락모락 나는 밥그릇 옆으로 나란히 놓인 네 벌의 수저. 이 평범하고도 위대한 풍경 앞에서 나는 비로소 깨달았다. 아, 우리 가족은 다시 '완전체'가 되었음을. 텅 비어있던 공간의 밀도가 비로소 꽉 채워졌음을 말이다.
사랑은 계산을 넘어서고
행복은 늘 그렇듯, 야속하게 짧은 유효기간을 달고 찾아온다. 꿈같은 며칠이 흐르고 복귀 당일 아침이 밝았다. 아들은 일찍부터 짐을 챙기며 제법 어른스러운 목소리로 내게 말을 건넸다.
"아빠, 그냥 동서울터미널까지만 태워다 주세요. 철원까지 오가려면 너무 힘드시잖아요."
왕복 수백 킬로미터, 먼 길 운전할 부모의 피로를 먼저 헤아리는 그 마음이 기특하면서도 한편으론 가슴 한구석이 짠해왔다. 군 생활이 녀석을 타인의 고단함을 살필 줄 아는 어른으로 만들어 놓은 모양이었다. 하지만 곁에 있던 아내가 손사래를 치며 펄쩍 뛰었다.
"무슨 소리야. 부대 앞까지 같이 가야지! 엄마는 하나도 안 힘들어."
그것은 이성적인 계산 끝에 나온 판단이 아니었다. 기름값과 통행료, 왕복 시간과 운전의 피로도를 따지는 효율의 세계는 '모정'이라는 본능 앞에서 무력하게 무너졌다. 1분 1초라도 아들의 얼굴을 더 눈에 담아두고 싶은 간절함, 부대 위병소로 들어가는 그 뒷모습 끝까지 눈길을 떼지 못하는 마음. 사랑은 언제나 계산보다 앞서 나가는 법이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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철원 와수리, 그곳에 두고 온 마음
결국 우리는 오후 두 시를 넘겨 아들의 목적지인 철원 와수리로 향했다. 운전대를 잡은 내 곁에서 아내는 자꾸만 아들의 얼굴을 살폈다. 나는 백미러로 뒷좌석에 앉은 아들을 바라보며 첫 휴가의 소감을 물었다. 아들은 "너무 좋았습니다. 정말 만족스러워요"라며 환하게 웃었다. 그 짧은 대답 속에 담긴 진심이 차 안의 공기를 더욱 진하고 묵직하게 만들었다. 나누는 대화도, 차 안을 흐르는 음악도 조심스러워지는 시간이었다.
와수리 터미널 인근의 식당에서 아들과 마지막 저녁을 함께했다. 정적 속에 울리는 숟가락 소리조차 마음에 깊이 박히는 식사였다. 아내는 본인의 젓가락질은 잊은 채, 말없이 고기 반찬을 아들 쪽으로 연신 밀어 넣었다. 그 손길에는 "더 먹어라"는 다정함 대신, "부디 아프지 말고 잘 지내라"는 간절한 기도와 당부가 맺혀 있었다. 아들은 그런 엄마의 마음을 아는지 모르는지, 묵묵히 밥그릇을 비워냈다. 그 모습이 대견하면서도 눈시울이 뜨거워지는 것은 어쩔 수 없었다.
각자의 자리에서 키우는 단단한 사랑
복귀 시간이 다가오자 아들은 다시 늠름한 군인의 얼굴로 돌아왔다. 터미널의 찬 공기 속에 아들을 내려주고 돌아오는 길, 아내는 차창 밖으로 시선을 던진 채 아무 말 없이 손수건만 만지작거렸다. 현관에 놓여 있던 커다란 군화 한 켤레가 사라진 자리는 생각보다 깊고 넓었다. 이제 집안은 다시 아들이 오기 전처럼 넓고도 고요해질 것이다.
하지만 그저 아쉬움과 슬픔에만 잠겨있지는 않기로 했다. 이별은 영원한 단절이 아니라, 각자가 지켜내야 할 소중한 제자리로 돌아가는 과정임을 알기 때문이다. 아들은 국가와 자신을 지켜야 할 자리를 향해 씩씩하게 걸어갔고, 우리는 남겨진 일상 속에서 아들이 언제든 돌아와 쉴 수 있도록 그 자리를 다시 정성껏 닦아둘 것이다.
헤어짐을 담담히 받아들이는 이 마음가짐이야말로, 지금 우리가 아들에게 줄 수 있는 가장 단단한 사랑임을 믿는다. 다시 수저가 세 벌로 줄어든 식탁에 앉겠지만, 우리의 마음속에는 언제나 보이지 않는 네 번째 수저가 놓여 있을 것이다. 오늘의 그리움을 조용히 접어 아들의 밤 위로 보낸다. 잘 자거라, 아들아. 다시 수저 네 벌이 나란히 놓일 그날을 기다리며.
#첫휴가 #가족애 #부모마음