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by 이점록 Nov 05. 2023

가을에 오신 손님

   바야흐로, 사유와 사색의 계절이다. 옷깃 스치는 바람결과 사각사각 떨어지는 낙엽을 마주하는 아름다운 계절이다. 하늘은 드높고 맑고 푸르다. 곱게 물든 나뭇잎이 고운 색깔로 물들이고 있다. 흙 한 줌, 바람 한줄기, 구름 한 점에도 저절로 탄성이 흘러 나온다. 그래서 수많은 현자들이 가을을 치켜세우는데 주저하지 않았을 것이다.

 

  이 좋은 계절에 참으로 귀한 손님이 오셨다. 그래서 글 제목을 '가을에 오신 손님'으로 정했다. 제가 늦여름에 올렸던 '새로운 인연이 너무 좋습니다.' 의 속편이라 감히 말하고 싶다. 동유럽 여행지에서 만난 인연이 시작되고 오늘이 두 번째 만남이다. 그때 목동에서 첫 번째 만남을 뒤로하고 헤어지면서 "가을에 만나요"라며 약속했었다. 드디어 11월 첫째 주 토요일이다. 뭇사람들은 깊어가는 가을에 단풍 구경이나 가을 축제를 찾아 떠나고 있다. 우리 두 부부는 아름다운 선연을 이어가기 위해 기다리던 두 번째 만남을 가졌다.

  

  이번에는 우리 가족이 손님을 맞이하기로 했다. 우리집은 단독 전원주택이다. 아침부터 대청소를 하느라 손놀림이 바빴다. 집안 청소는 집사람이 나는 마당과 집 앞 골목에 떨어진 낙엽을 쓸었다. 그리고 물과 대걸레로 데크를 씻어냈다. 그야말로 기분 좋은 분주함이었다. 딸도 식사 자리에 함께하기로 했다. 그때 여행하면서 같이 사진을 찍는 등 기분좋은 기억이 있기에 가능하다. 


  오찬 장소인 S갈비에 조금 여유있게 도착했다. 그런데, 아! 서울에서 두 분이 먼저 도착해 벤치에 앉아 우리를 기다리는 진풍경을 연출하고 계셨다. 우리는 반갑게 포옹하듯 인사를 나눴다. 

  "오시는 길 많이 힘드셨지요?" 나는 죄송한 마음에 인사를 건넸다.  

  "길이 막힐지 몰라 일찍 출발했는데, 다행이 빨리 도착했습니다"라며 따스한 마음을 전해 준다. 

  예약된 방으로 들어가니 이미 세팅이 되어 있었다. 자리에 앉자마자 그동안의 안부를 서로 묻는다. 모처럼 이렇게 귀한 분들과의 즐거운 시간이 넘 좋다. 서빙을 하시는 분께 기념 사진도 부탁드렸다.  


  최근 트렌드 중에서 식사 후 카페로 가는 것은 흔히 즐기는 방법 중 하나이다. 그렇지만 나는 카페 보다는 우리집에서 차를 마시자며 손을 이끌었다. 물론 특별한 것은 없지만 정을 나누기에 적합하다고 생각했다. 집에 도착하자 양손에 가득 귀한 선물 꾸러미를 가지고 오셨다. 구순의 아버지께서 직접 농사를 지은 고구마를 가지고 오셨다. 그리고 선물용 된장까지. 감사한 마음이 너무나 크다.

  

  우선 서재 쪽 테이블로 자리를 안내했다. 딸은 슬리퍼를 신을 수 있도록 가지런히 내놓는다. 사실 슬리퍼는 바닥이 차가울 경우, 발의 혈액순환을 도울 수 있고, 따뜻함을 유지하는데 도움이 되기 때문이다. 좋은 느낌을 통해 안정감을 주어 마음을 열기 위한 첫걸음이라 여긴다. 


  사실 가족들과 편안하게 지내는 집에 손님을 초대하면 신경쓰이는 게 한두 가지가 아니다. 하지만, 손님을 맞이함으로써 더 귀한 소통의 기회를 얻을 수 있다. 그리고 손님을 환영하고 대접함으로써 관계를 유지하고 강화할 수 있기에 최적이다. 무엇보다도 그 사람에 대한 존경과 친절을 나타낼 수 있다고 생각한다.


  정현종 시인의 '방문객' 중 일부를 소개한다. 

  사람이 온다는 건

  실은 어마어마한 일이다.

  그는 그의 과거와

  현재와

  그리고 

  그의 미래와 함께 오기 때문이다.

  한 사람의 일생이 오기 때문이다.

            - 중   략 -


  이 시는 읊을 때마다 인연의 소중함을 느낄 뿐만 아니라 소위 세 번 감탄하는 명시다. 


  가족에 대한 이야기에 고개를 끄덕이며 서로 공감을 한다. 재미있는 이야기에 너도나도 웃음꽃이 만발했다. 솔직히 시간이 허락이 된다면 긴 시간을 같이 지내고 싶은 심정이다. 그리하여 특별한 경험을 공유하고 아름다운 추억을 만들고 싶다. 이런 모습이 풍요로운 삶을 유지하는 비결이 아닐까 싶다. 인생 2막에 새롭게 시작하는 인연이 더 없이 귀하다.

   

  즐거운 대화를 나누다 보니 어느덧 헤어질 시간이 되었다. 우리는 헤어지기 전 다음에 만날 약속 날짜를 정했다. 새해 1월 하순경에 세 번째 만남을 약속했다. 가만히 보니 2개월 보름 만이다. 나는 "가능하면 부부간의 만남을 가족간의 만남으로 확장하자"는 의견을 제시했다.   

   

  골목길까지 나가 배웅을 하면서, "운전 조심하세요." 라며 노파심에 당부 인사를 했다. 며칠 전에 본 기사가 떠올랐기 때문이다. 특히, 가을철은 단풍 구경 등 나들이 수요가 높아지면서 교통사고 비중이 증가하고 있다고 한다. 도로교통공단이 최근 3년간(2020~2022년) 가을 행락철(10~11월) 교통사고를 분석한 결과, 하루 평균 602건의 교통사고가 발생해 9.3명이 숨지고 865.7명이 다친 것으로 보도되었다. 이 기간 교통사고 발생 건 수는 다른 기간(1~9월·12월) 대비 10.1% 높았다고 하니 조심 운전만이 상책이다.  


  마당에서 한참 맨발걷기를 하던 중 카톡이 울렸다. 

  "좋은 것에 가서 가서 좋은 분들과 즐거운 시간 잘 보내고 서울에 잘 도착했습니다."라며 감사의 글이었다.

  "자칫 소홀함이 없었는지 모르겠습니다. 귀한 인연 아름다운 만남이 되도록 살피겠습니다."라며 나는 답문을 보냈다. 참 기분이 참 좋은 선물같은 날이다.    


  만남은 하늘에 속한 것이며 관계는 땅에 속한 일이라 여긴다. 세상의 모든 일은 만남과 관계를 통해서 이루어지는 것에 이견이 없다. 그래서 세상살이에 이 둘의 조화에 의해서 오롯이 살아가는 것이다. 따뜻하고 아름다운 만남은 그런 관계를 유지하기 위해 노력하는 사람에게 주어지는 것이라고 본다. 결코 저절로 생겨나지는 않을 것이다. 우연이 인연이 되고, 그 인연이 미처 생각지도 못한 길을 열어준다고 믿는 편이다. 


  우리가 살아가면서 수 많은 인연을 만나고 헤어짐을 반복한다. 더 사랑하고 더 이해하고 더 깊이 삶을 나누고 싶어지는 사람이 있게 마련이다. 귀한 인연의 끈으로 남겨진 조각을 잘 가꾸고 싶다. 우리에게 부닥쳐오는 희노애락의 삶, 소중한 인연이라면 무엇이든 이룰 수 있지 않을까? 인연을 어떻게 마무리 하는가는 오롯이 나 자신에게 달렸기 때문이다. 


   지금은 낙엽이 마치 꽃비처럼 길 위에 수 놓고, 그 낙엽을 밟으며 가을을 만끽하고 있다. 오늘처럼 가을비가 내리는 날이면 낙엽들은 빗속에서 한층 더 오묘한 빛을 내 뿜는 듯하다. 보면 볼수록 신기하다. 

  어느덧 속절없이 세월이 흘러 인생의 가을에 접어든 나이가 되었다. 인연의 소중함을 더 없이 느낀다. 

  참 삶은 인연을 귀하게 여기는 것이리라.

    

  가을에 오신 손님에게 나는 과연 어떤 사람으로 기억될까 곰곰이 생각해 본다. 


#공감에세이 #인연 #손님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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