이근배 시인의 문학강연을 다녀와서
문학은 언제나 우리 삶과 맞닿아 있다.
어느덧 한 해를 마무리하는 12월 끝자락이 되었다. 마음을 비우고 정리하는 시기에 매우 뜻깊은 행사가 있었다. 얼마 전 그러니까 12월 17일, 노원구청 소강당에서「백두산문인협회」가 주최한 문학강연이 열렸다. 설레는 마음을 가득 안고 행사장에 도착했다. 반갑게 인사를 나누며 사진을 찍는 등 분위기는 한껏 무르익고 있었다.
행사가 시작 되었다. '백두산문인협회' 김윤호 회장은 인사말에서
"1994년 6월, 민족문화의 활성화와 조국의 평화통일의 밑거름의 기치를 내걸고 출범했다."는 창립 취지를 설명했다. 한국문학의 견인차 역할을 하고 있음도 밝혔다. 그러고보니 내년이면 30주년이 되는 긴 역사를 자랑하고 있었다. 비록 일천하지만 문인으로서 진심으로 발전을 기원해본다.
이어 이근배 시인이 '한국 문학의 내일'이란 주제로 문학강연이 있었다.
이근배 시인은 한국 문화계를 대표하는 거목이다. 대한민국예술원 회장 등을 역임했다. 특히 한국문단 최초 신춘문예 5관왕에 빛나는 전설적인 분이시다. 시작부터 끝까지 건강한 목소리와 자세를 유지하여 또 다른 감동을 받았다. 이곳을 찾은 문학을 사랑하는 문인들에게 큰 울림을 주었다.
전 세계가 그룹 BTS(방탄소년단)는 한글로 쓴 노래를 즐기고, 영화 '기생충','미나리', 드라마 '오징어 게임' 등 K콘텐츠를 소비하고 있다며 우리 문화의 우수성을 높이 평가했다.
"문화적 저력은 그냥 나오는 게 아니죠. 우리 민족은 문학하는 민족이기 때문입니다.”
한국 문학이 세계 문학에 서 있는 위치에 관해서도 피력했다.
"한국인에게는 모국어가 있습니다. 바로 한글이라는 문자가 있지요. 우리 민족만큼 시 잘 쓰고 소설 잘 쓰는 사람이 없습니다." 한국이 문화의 나라이고 뛰어난 천재성이 있는 예술 민족이라는 것이다.
미국 청년 호머 헐버트는 1886년 고종이 세운 서양식 교육기관인 '육영공원' 교사로 오게된다. 그는 우리 한글을 배워 3년 만에 '사민필지'란 세계 사회지리 교과서를 한글로 썼다. 1890년부터 교과서로 사용했다. 이 일은 우리 교육과 우리 한글을 빛내는 튼 빛이었다. 그리고 1913년 중화민국 초대 총통 원세계(袁世凱)를 만
나게 된다. 그 때 중국인이 문맹을 걱정하는 말을 듣고 "한글을 가져다 쓰라"고 권했다는 일화를 소개하기도 했다.
그리고 인간사회의 운명을 바꾼 힘을 쓴 문명 비평서「총ㆍ균ㆍ쇠 」, 2020년「대변동」을 쓴 제러드 다이아몬드는 한국어판 서문에서 '한글이 지구상의 가장 위대한 문자'임을 침이 마르도록 칭찬하고, 우리나라에 와서 "한국은 아무것도 걱정 할 것이 없다. 한글이라는 위대한 나라를 만든 나라이니까"라고 역설했다는 대목에서는 뜨거운 민족애와 자긍심을 느꼈다.
만주어 소멸에 대해서도 언급하였다. 한때 세계 최대 제국이었던 청나라의 공용어 만주어가 사실상 소멸되었다. 천만명의 만주족이 대륙 전역에 존재하고 있음에도 만주어를 구사할 줄 아는 인구는 줄어들고 있다. 300여년 가까운 세월동안 한 왕조의 공용어로 쓰인 만주어가 이처럼 비참하게 고사 위기에 직면한 것은 만주족의 자기 정체성 붕괴다. 한족으로의 급속한 동화도 한몫 했다고 볼 수 있다. 만주서는 소멸된 언어로 사어가 되었다. 사용을 하지 않으면 존재가 위햡받는다는 점을 일깨워주는 씁쓸한 현실이다.
1636년(인조 14) 12월, 청나라가 조선에 대한 2차 침입을 감행했다. 병자호란을 다룬 영화 '남한산성'. 전장에서 청군이 만주어를 사용하는 여러 장면이 나온다. 청나라는 중국을 통일하고 수도를 베이징으로 정하면서 만주어는 지금의 중국보다 더 넓은 지역에서 사용되었다고 한다. 차츰 청 왕실은 중국의 수준 높은 문화에 빠져 들면서 자신들의 언어를 잊기 시작했다. 1912년 청이 멸망하자 그들의 공식 언어였던 만주어는 누구도 지켜주지 않았다. 역사의 아이러니가 아닐 수 없다.
이근배 시인님은 사랑시 중 절창으로 손꼽히는 아래 시조를 소개하기도 했다.
<사랑이 거짓말이>
김상용
사랑이 거짓말이 님 날 사랑 거짓말이
꿈에 와 뵌단 말이 그 더욱 거짓말이
날같이 잠 아니 오면 어느 꿈에 보이리
문인들이 함께 읊조리기도 했다. 참고로 김상용은 조선 인조 병자호란 때 주전론을 펼친 예조판서 김상헌의 형이기도 하다.
오늘 행사는 문학강연과 시 낭송 등으로 문학적 감동이 배가 되었다.
이처럼 스스로 지키지 않는 영토는 남에게 빼앗길 수밖에 없다. 스스로 관심을 갖지 않는 언어는 언젠가 소멸할 수밖에 없다. 국제화 시대에 소수 언어는 더욱 빠르게 사라져 가고 있다고 한다. 유네스코의 '소멸 위기에 처한 언어 지도'에 의하면 금세기 말께 소멸할 것이라고 예견한 바 있다. 우리가 아름답고 우수한 한글을 지키지 않는다면 영어나 중국어 등과 같은 주도적 언어에 동화될 수밖에 없다고 생각해 본다.
잠시 유네스코의 자료를 살펴보면, 지구촌의 빈부격차만큼이나 언어 간에 ‘위상’ 차이도 크다. 세계인의 80%가량은 이 중에서 단 92개(1.3%) 언어를 제1언어(first language, 모국어)로 사용한다. 지구상에서 5000만 명 이상이 모국어로 사용하는 언어는 23개에 불과하다. 제1언어를 기준으로 가장 많은 인구가 사용하는 언어는 표준 중국어(13억 명, 20.3%)이고, 그 뒤를 스페인어(4억 2700만 명, 6.56%), 영어(3억 4000만 명, 5.21%), 힌디어(2억 6700만 명, 4.1%), 아랍어(2억 6000만 명, 3.99%) 순으로 잇고 있다.
한국어의 경우 중국, 동러시아 일대 등 7개 국에서 7730만 명이 사용하는 언어로 12위에 올라 있다는 자료이다.
K컬처의 매개인 한국어에 대한 관심과 더불어 한국어를 배우려는 열풍이 이어지고 있다. 그리하여 전 세계 여러 나라에 '세종학당'이 개설되어 있다. 2023년 6월 기준 현황을 보면 아시아 28개국 139개소, 유럽 28개국 57개소, 아메리카 14개국 34개소, 아프리카 13개국 14개소, 오세아니아 2개국 4개소로 총 85개국 248개소가 개설되어 있다. 이처럼 세종학당이 늘어나는만큼 전 세계에서 한국어를 사용하는 인구도 늘어날 거라 기분 좋은 생각을 해본다.
한글의 미래는 밝고 다양한 발전이 예상된다. 현재로서는 디지털 기술의 발전으로 한글이 더욱 글로벌하게 사용되고 있다. 스마트폰, 컴퓨터, 인터넷 등의 플랫폼을 통해 한글을 사용하는 사람들이 급증하고 있다. 또한 한류 열풍으로 한국 문화에 대한 국제적인 관심이 높아지면서 한글 역시 주목받고 있다.
글은 세상을 보는 현미경이다. 글은 또한 세상을 여는 열쇠다. 글을 통하면 세상 어디에도 통달할 수 있다. 언어는 인생과 세상의 오묘한 이치가 오랜 세월 투영된 선물같은 산물이다. 문학은 언어의 정수다. 예나 지금이나 문학을 통해 폭넓고 깊게, 바르게 세상을 읽을 수 있음이다. 우리의 정체성과 문화적인 가치를 지키는 문화유산인 한글을 지키는 것은 우리 모두의 몫이라 여겨진다. 우리 문학이 세계 만방에 꽃씨를 활짝 틔워가기를 바라며 두손을 모은다
아름다운 문장의 향기를 마음을 담아 전하고 싶다.
"다향(茶香)은 천리요, 문향(文香)은 만리"라 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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