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by 호접지몽 Jan 21. 2023

20년 전의 나에게 꿈이었던 나

20년 전에는 스물두 살이었습니다.


지금까지 인생에서 가장 어둡고 혼란한 시기였습니다. 내일 내가 눈을 뜰 수 있을까를 걱정하는 것도 어려웠습니다. 왜 나에게 이런 시련이 왔을까를 수백 번 생각해 보아도, 답은 나오지 않았습니다. 그렇지만 괴로울수록 내가 할 수 있는 유일한 생각이었습니다.


아버지의 사업 실패로, 빚쟁이들이 탑돌이를 하듯 밤새도록 집주위를 맴돌며 감시했습니다. 전화로 협박도 많이 받았습니다. 열심히 준비했던 시험과 카투사 입대는 좌절되고, 낮에는 그저 허공만 바라보고 있다가, 저녁이 되면 택배 상하차 알바를 갔습니다.


다른 사람들은 두 시간 만에 도망갔던 그 일을, 꽤 오랫동안 버텼습니다. 허리가 끊어질듯한 고통이 있었지만, 일을 하는 동안은 다른 생각이 들지 않아 좋았습니다. 그리고 그 일의 월급이 너무도 소중했습니다. 예정되어 있던 입대일 전에 한 푼이라도 더 어머니께 드리고 갈 수 있었으니까요. 


그렇게 억지로 시간을 쓰며 버티다가, 어머니와 같이 있던 그 지옥 같은 공간에서 저 혼자 군대로 도망쳤습니다. 예정된 입대여서 미룰 수가 없었지만, 그때를 생각하면 어머니께 너무 미안합니다. 미룰 수 없다는 건 핑계였는지 모릅니다. 군대에 있었던 저는 역시 몸은 힘들었지만 마음은 한결 편안했으니까요.


우연히 그 시절 일기를 꺼내보게 되었습니다. 일기에는 꽤 여러 날 비슷한 내용이 쓰여 있었습니다. 잠이 들기 전에 눈을 감으면 한 20년만 지나있었으면 좋겠다는 내용이었지요. 20년 동안 내가 뭘 대단하게 이루지는 않겠지만, 어떻게든 버텼겠지 싶었나 봅니다. 20년만 지나면 뿔뿔이 흩어졌던 우리 가족이 다시 함께 모여 살고, 회사도 다니고 결혼도 하고 아기도 낳아 키우는 평범한 사람이 되어 있겠지 싶었나 봅니다. 그런 평범한 미래의 내가 나의 꿈이었습니다.


어떻게 시간이 지나갔는지 모릅니다. 미래를 보았을 때 아득하게 느리던 시간이 뒤돌아 보았을 때는 어쩌면 그렇게 빠를까요. 저에게 힘든 시간은 늘 찾아왔지만, 그때마다 시간은 누구에게나 처럼 지나갔고, 그걸 버틴다고 표현들을 합니다. 특출 난 능력이 있었던 것은 아니고 엄청난 성공이 있었던 것도 아닙니다. 남들처럼 군대를 제대했고, 가족들은 다시 모여 살 수 있었습니다. 열심히 알바를 하면서 학교를 졸업했고, 회사를 들어갔고, 한 번의 이직이 있었습니다. 사랑하는 아내와 만나서 결혼을 했고, 아이도 낳아서 열심히 키우고 있지요.


그렇게 살아온 20년 동안 어찌 힘든 일이 없었겠습니까? 수없이 회사를 때려치우고 싶었고, 가족끼리 다툼도 많았습니다. 어렵게 아내와 시작했던 작은 가게는 박근혜 대통령이 탄핵되는 날 많은 빛을 남기고 문을 닫았고요, 남들은 그렇게 쉽게 갖는 아기를 여러 번의 시도 끝에 가질 수 있었습니다(제 건강 탓이었습니다). 그 외에도 셀 수 없이 어렵고 힘든 날들이 많았지요.


그런데 20년이 지난 후 뒤를 돌아보니, 저는 22살에 바라던 꿈을 이미 이루었던 거였습니다. 누가 봐도 평범한 40대의 삶을, 20대에 꿈꾸어 왔습니다. 그 길이 평탄하지 않았지만, 꾸역꾸역 살아내다 보니, 잘 살아내었습니다. 많은 후회가 있지만, 뒤를 돌아보기보다 앞을 바라보고 살고 있습니다. 결점 투성이인, 이런 나라도, 20년 전 눈감으면 상상했던 미래의 내가 지금의 나입니다.


지금, 40대에 고민하는 나의 현실을, 60대의 내가 뒤돌아보면 어떤 생각을 할지 궁금합니다. 20년 후의 나는 더 유연하고, 생각과 통찰력이 깊으며, 몸도 마음도 건강하고 깨끗하게 살고 있으면 좋겠습니다. 20년 전의 내가 바라던 모습대로 지금의 내가 되었듯이, 20년 후의 나도 그렇게 값진 삶을 보냈으면 좋겠습니다.


20년 후의 내가 이 글을 보면서, 오글거릴 수도, 고개를 끄덕일 수도 있겠네요.

그리고 지금 이 순간 너무 힘들어 견딜 수 없는 누군가가 본다면, 작은 위로가 될 수 있으면 좋겠습니다 내일은 23년 설 명절입니다. 모두가 풍요로울 수는 없지만, 모두가 평안한 명절이 되었으면 좋겠습니다.

그리고 지금 이 순간 너무 힘들어 견딜 수 없는 누군가가 본다면, 작은 위로가 될 수 있으면 좋겠습니다

내일은 23년 설 명절입니다. 모두가 풍요로울 수는 없지만, 모두가 평안한 명절이 되었으면 좋겠습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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