기진맥진한 금요일 저녁 퇴근길, 하루가 다 끝났다고 생각하고는, 흐물흐물해진 몸을 지하철 인파에 꾸겨 넣는다. 내 앞의 어떤 여자가 자꾸 나를 째려본다. 제가 미는 게 아니라 뒤에서 미는 거라고요라고 외치고 싶지만, 그럴 기운조차 없다. 그냥 시선을 피하고, 그래 밀어라 밀어. 당신들도 얼마나 집에 빨리 가고 싶으면 그럴까 싶어서 모든 걸 체념하고 있을 무렵에, 나에게 한통의 전화가 온다.
" 부장님 안녕하세요 바쁘시죠? "
우리 회사 생산팀의 과장이 한 전화였다. 보통 이 시간에 전화를 걸었다는 건 늘 사고가 터졌다는 의미였다. 지하철에서 전화를 받는 건 무례한 짓이었지만, 전화를 받자고 다시 이 사람들을 뚫고 나가는 게 더 무례하다 싶어서 어쩔 수 없이 전화를 받는다
" 네 급한 일이니까 전화하셨겠죠. 무슨 일 있어요?
" 저희가 부장님께서 보내신 생산계획을 잘못 보고, 이틀 후 계획 제품을 먼저 생산했지 뭡니까 하하하. 그래서 혹시 저희 판매계획이랑 비교했을 때 큰 문제가 없을지 검토 부탁드리려고 전화했습니다."
" 아니 과장님. 지금 퇴근시간이 지났고, 제가 그걸 어떻게 다 일일이 기억합니까? 여기 지하철인데 다시 사무실로 되돌아가서 문제없는지 살펴볼까요? 그리고, 왜 계획대로 안 하고 당신들 마음대로 한 겁니까? 책임지지도 못할 거면서."
전화를 걸어온 과장은 나에게 산산조각이 났다, 분을 이기지 못한 나는 거기서 멈추지 못하고 공장장에게까지 전화해서 항의를 했다. 한참을 씩씩거리다가 결국은 지하철을 반대방향으로 갈아타고는 사무실로 다시 돌아가서 재고 수준이 이상이 없을지를 한참 살펴보고는, 다음 주 생산계획을 변경해서 공지하게 되었다.
이때가 3년 전, 코로나가 시작하기 직전 시기였던 것으로 기억한다. 왜 그렇게 화가 났을까를 생각해 보면, 일단 지하철에 갇혀있었고 금요일 저녁이었던 것도 있지만, 내가 이 일을 수습하기 위해서는 사무실로 다시 들어가야 한다는 생각 때문이었다. 아무것도 내 손안에 자료가 없는데 그 자리에서 어떻게 일처리를 하겠는가. 거기서 오는 불안함과 조급함이 컸었다. 그 뒤로, 회사에서는 영업사원이 아니면 절대 줄 수 없다는 걸 사정사정해서 쓰던 노트북 하나를 받아내었다. 하지만, 자리에 앉아있지 않으면 불안했다.
지금, 내 새로운 동료들과 일을 할 때는 대부분을 화상회의로 만나게 된다. 나는 늘 일정한 장소에서 접속을 할 수밖에 없지만 동료들이 접속하는 장소나 환경은 너무 다양하다. 시골에 있는 집, KTX, 택시, 일본, 전주 등등 시간과 장소를 가리지 않는다. 완전자율출퇴근이기 때문에 내가 어디에 있는지를 미리 설명할 필요가 없다. 그런데 여기서 중요한 것은,
어디에 있더라도 늘 같이 있는 것처럼, 내 일과 우리의 일에 몰입되어 있다는 점이다
우리 동료들에게는 장소나 주변 환경이 중요한 것이 아니었다. 어디서든 집중할 수 있게 훈련되어 있고, 잠시 주의가 흐트러지더라도 언제든지 자연스럽게 중심으로 돌아올 능력이 있다. 그래서 굳이 사무실이라는 물리적인 환경이 필요 없는 것이었다. 대신 늘 노트북이 있어야 하고, 인터넷에 원활히 접속할 수 있어야 했다.
흔히들 말하는 노매드족이라고 표현해도 되겠다. 우리는 언제 어디에 있어도 연결되어 있고 함께하기 때문에 같은 부족이라고 해도 될 것 같다. 그때의 나도 노트북이란 게 있었지만, 늘 불안했던 이유가 동료들이 나와 함께 집중하고 몰입한다는 믿음이 없어서는 아닐까? 본인의 실수에 일말의 미안함도, 회사에 피해가 갈까 우려하는 마음도 없는 그 과장은 동료라고 느껴지지 않았던 것이다.
어제의 퇴근길에서 새로운 동료가 슬랙으로 질문을 던져왔다. 나는 클라우드의 파일을 열어서 살펴보고, 자료를 수정해서 업로드하고, 그 의견에 대해 피드백을 한다. 지하철의 벤치에 앉아서 말이다. 그때처럼 당황하지 않고 꼰대부장처럼 화를 내지도 않는다. 우리는 어디에 있어도 늘 연결되어 있고, 서로를 믿기 때문이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