어려움을 겪을때 동료를 진정으로 알 수 있다
우리가 동료로 만난 것은 내가 다니는 회사와, AI 시스템을 개발해 주는 회사가 손을 맞잡고, 제조사의 판매계획 예측과 공급관리를 종합적으로 조율하는 S&OP (Sales & Operations Management) 를 시스템으로 지원해 주는 것을 목표로 삼았기 때문이다. 시스템 개발사는 S&OP 가 무엇인지 잘 몰랐고, 나는 수년간 이 체재를 회사에서 운영해 온 책임자였기 때문에 가능한 협업이었다. 회사 내부에 있는 영업부서의 직원들을 순차적으로 인터뷰하고, 우리와 거래하는 협력업체의 대표나 관계자들도 순차적으로 만났다. 그들을 만나면서, 내가 시스템 개발사의 동료들에게 이야기 했던 문제점과 결핍 그리고 해결방안에 대해서 다른 각도의 관계자의 의견이 일치하는지를 확인해 보고, 그들의 관점에서 새롭게 조명하는 문제점에 대해서 심층적으로 살펴볼 수 있는 계기가 되었다.
그런데, 깊게 파면 파볼수록 동료들의 마음속에 자리잡은 생각이 있었다. 이게 정말 잘 될까? 하는 물음이었다. 협력사, 특히 우리와 비슷한 규모에 있는 회사들과 인터뷰를 해볼 수록, 그 불안감이 커져만 갔던 것이다. 이분들이 우리에게 해주는 피드백은 다음과 같았다.
" 정말 좋은 아이디어와 실행방안입니다. 그런데, 우리는 그런 시스템의 도입이 없어도 사람이 충분히 매꿀 수 있다고 생각합니다."
" 여러분이 말씀하시는 대로, 과연 판매예측의 고도화가 가능할 까요? 그것을 고도화 하는것이 실제적으로 가능하다고 하더라도, 얼마만큼의 효용이 있을까요?"
" 중소기업은 S&OP 라는 회의를 잘 하지도 않죠. 부장님이 워낙 선구자시니 하는거지, 이런 회의가 뭔지도 모르는 사람이 많은데 도입을 하려고 할까요?"
아이디어는 좋지만, 다들 시기상조가 아닌가 하는 의견이었다. 하긴, 내가 이 회사에 와서 S&OP 라는 회의체가 필요하다고 해서 만들었고, SCM 팀도 꾸리게 되었다. 대기업들에서는 당연히 있는 조직이지만, 중소기업에서 이런 조직이 있는 것은 흔하지 않은게 사실이니까. 그렇다면 우리가 보고 있던 시장성이라는 것은 상당히 작은 것은 아닐까?
거기에다가, 우리가 범용으로 가볍게 개발하여 여러사람에게 Saas (Software as a service) 형식으로 공급하여 쓰여지기를 바래서 개발을 진행했던 S&OP 시스템은 깊게 파고 들면 파고 들수록 복잡도가 증가하고 커스터마이징이 기업별로 필요하다는 것을 알게 되었다. 그러면 도입할때 들어가는 비용도 증가하고, 컨설팅도 수행해야 한다. 구독 형태로 쓰여질 수 있는 시스템과는 점점 거리가 멀어지게 되는 것이다.
결국 우리는 초기에 우리가 생각했던 시장성이나 제품의 개발형태, 고객들이 도입했을때 투입되는 비용과 시간, 효용성 측면 모두 우리가 예측했던 것과 달라질 것이라는 생각에 이르게 되었다. 한마디로, 더이상 진행하기가 어렵다는 결론을 내렸던 것이다. 몇개월간 들였던 공이 물거품이 되는 순간이었다.
동료들의 리더였던 J 는 이것을 꽤 담담하게 받아들였다. 그리고 나에게 이렇게 이야기 했다.
"부장님 우리 지금 추진하던 프로젝트는 잠시 미뤄두시고, 다른 주제로 넘어가시죠. "
처음에 내가 아이디어를 냈던 것은 S&OP 를 통해서 여러 고객이 이 플랫폼을 활용할 경우, 추후에 구매나 연구개발 부서에 있는 사람들을 활용해서 공동의 구매니즈를 파악하고 여러 구매자들의 수요를 하나로 합쳐 구매볼륨을 크게 하고 가격경쟁력을 확보할 수 있는 새로운 플랫폼을 만들자 였다. 우리는 이 두번째 과제로 일단 건너가기로 합의하고 새로운 프로젝트를 시작했다.
나는 늘 궁금했다. J는 왜 첫번째 프로젝트가 더이상 진행되기 어렵다고 느꼈을때, 내 손을 놓지 않고 두번째로 넘어가자고 했을까? 그는 이미 스타트업씬에 오래 있었고, 머리가 좋고, 인맥도 넓은 사람이었다. 나같은 중소기업의 꼰대 부장의 아이디어로 다음 프로젝트로 함께 피벗하자고 말한 이유는 무엇일까? 다른 아이디어나 새로운 파트너도 많았을텐데 말이다.
언젠가 술자리에서 그 질문을 했을때 J 는 자신이 운영하는 블로그에 그시기에 썼던 글을 나에게 보여주었다. 정확한 워딩은 기억나지 않지만 그 핵심은 기억이 난다. 그 글의 내용은 아래와 같았다.
" 사업은 아이템으로 하는 것이 아니다. 사업은 동료와 함께하는 것이다 ."
정말 잘 될것 같은 아이템이어서, 이걸 해서 성공하면 때돈을 벌것만 같아서 나와 함께했던게 아니라고 J는 말했다. 어떤 아이템이라도 나와 우리가 함께한다면 우리가 사는 세상에 어떤 기여를 할 수 있지 않을까 하는 생각을 했다고 J는 말했다.
내가 다니는 회사에서는 이런 식의 반응은 참 기대하기가 어렵다. 일단 아이디어를 내기 어려운 환경이다. 그게 좋다고 칭찬하는 사람보다는, 그게 되겠냐고 비판하고 깎아내리는 사람이 더 많았다. 아니 그게 대다수라고 말하는게 맞겠다. 그래서 그게 실패하게 되면, 역시 내말이 맞았어 쓸데없이 시간만 낭비했네. 라고 앞에서 뒤에서 수근거리고 비아냥 거리는 것이 당연한 문화였기 때문이다. 그 아이디어가 잘 진행이 되더라도, 대다수의 사람들은 한사람의 아이디어가 잘 되어 회사에 도움이 되는 것을 좋아하기 보다는, 그사람이 지나치게 튀어서 자기들이 못나보이는 것을 경계한다. 그것이 궁극적으로 우리가 속해있는 조직에 어떤 도움이 될지 안될지를 기준으로 판단하는 것이 아닌것이다.
그런데 J는 나를 동료로서 믿고 나의 첫번째 아이디어가 시장분석을 해보니 여러가지 문제가 있다고 판단했음에도 나의 두번째 아이디어를 밀고 가보자고 제안해 주었다. 수년간 같이 일했던 우리 회사의 동료들은 나를 믿지 못하고 공격하기 바쁜데, 만난지 몇개월 되지 않은 새로운 동료는 나 자체를 믿어주었던 것이다. 나의 일에 대한 진심을 믿어주었던 것이다.
그래서 우리는 새로운 프로젝트를 함께 시작했다. 전보다 더 나를 믿어주는 새로운 동료와 함께. 모든것이 좋을때 옆에 있던 동료보다는 어려울때 같이 있으면서 서로를 믿는 동료가 더 값지다는 것을 알게 되었다. 그리고 우리의 여정은 다시 가속도를 내게 되었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