좋소 꼰대 부장의 스타트업 도전기 (9)

나를 함부로 평가하게 두지 않기

by 호접지몽

지금의 회사에 처음 입사했을 때, 나는 동료가 필요했다.


첫 회사에서는 대졸 공채로 입사를 하다 보니, 우리 모두는 선후배 사이로 공동 운명체라는 시스템에 있었다. 늘 가까운 곳에 내가 기댈 동료가 있다는 생각을 하면서 직장 생활했다. 어려운 일이 있으면 선배 좀 도와주십시오라고 정에 기대어 부탁을 하기도 하고, 되지 않을 일도 다른 부서의 동기들이 보이지 않는 곳에서 힘을 써 줘서 되는 일도 많았다. 그렇게 우리는 하나라는 인식이 강했고, 그것이 직장생활이라면 당연하다고 생각했다


그 이후 첫 직장에서 퇴사해서, 5년 전 지금의 회사에 이직을 했을 때, 조직의 모든 사람들이 나를 묘하게 주시하고 있음을 느꼈다. 아니, 얼마나 대단한가 보자고 벼르고 있었음이 더 적합한 표현 같다. 입사 다음날부터 나의 결정을 기다리는 일들이 길게 늘어서 있었고, 이 과정에서 자그마한 실수도 새로운 경력직에게는 용납이 되지 않았다. 항상 살얼음을 걷는 기분으로 실수에 민감한 일들에 얼마나 고군분투를 했는지, 그때를 생각하는 것만으로도 몸에 힘이 들어간다.


그때의 나는, 주위에 아무도 없었다. 심지어 내 팀의 동료들도 텃세를 부리는 상황에서, 나를 지지해 주는 사람이 절실했다. 그래서 우리 팀, 같은 부문의 직원들에게 끊임없이 내 업무와 태도를 피드백해주기를 바랐었다. 그들은 이미 내가 없는 자리에서 나를 평가하고 씹어대고 있었으므로, 적어도 내가 그 일부만이라도 알기를 원했다. 그래야 내가 살아남을 수 있었다.


그렇게 나는 새로운 회사에서 살아남았고, 인정도 받았다. 주위 동료들에게 일 잘하는 사람으로 평가받기도 하였다. 하지만, 너무 지나치게 몸부림치고 칼같이 업무를 처리하다 보니, 하나둘씩 잡음이 일기 시작했다. 우리 팀 동료들을 감싸고 이들과 한 목소리를 내면서, 우리 팀 내에서는 좋은 평가를 받았지만, 다른 부서 직원들에게 나는 함부로 할 수 없는 사람이 되어 있었고, 회사에서는 나와 같이 일하기가 힘들다, 무섭다는 말이 공공연히 들리기 시작했다.


그런데, 어느 시점부터 나를 어렵고 힘들다고 수군거리는 무리 중에, 내편이라고 생각했던 사람들이 점점 섞이기 시작했다는 걸 알게 되었다.


"그래 너희 팀도 힘들지? 맞아 우리 팀장이 성격이 좀 이상하긴 해 나는 너희마음 충분히 이해해 '


라는 말들로 인기관리들을 했던 것이다. 그리고 동료들은 충고라는 좋은 명분으로, 내 사정이나 이유에 대한 이해나 경청 없이 나를 내 앞에서 비난하기 시작했다. 그 말을 들을 때문에다, 스스로를 반성하고 자책했다. 억울하기도 했지만, 여러 사람의 의견이 그러하다면 내가 잘못된 것이라고 생각했다. 그렇게 나 스스로를 깎아 나갔다.


그렇게 나를 다른 사람의 비판의 기준에 맞추어 스스로 재단하다 보니, 점점 나 자신이 위축되고 힘이 들었다. 그들의 기준에 따라 스스로를 하나하나 부정하기 시작했고 너무 힘이 들었다. 정말 나는 잘못만 하는 사람일까? 다른 사람들을 힘들게만 하는 사람일까? 나에 대한 자신이 없었고, 집에 가는 길이면 내가 회사에서 했던 말을 되뇌며 괴로워했다.


하지만, 그들이 그렇게 쉽게 나를 판단하기에는, 내 실적은 매년 전부서에서 탑이었고, 진급도 했다. 나를 이유 없이 비난했던 동료들도 결정적인 순간에는 내가 만든 안전지대에서 위험을 피하고 있었다. 조직에서는 나를 인정하고 있었고, 결국 주위사람의 비판의 기준과 조직에서 보는 나의 평가 기준은 방향이 다르다는 결론에 이르렀다. 그렇다면 그동안 왜 그렇게 다른 사람의 평가에 집착했단 말인가. 내가 그냥 나였어도, 잘해 나갈 수 있었지 않았을까? 다른 사람이 나를 평가하게 둔 것이 결국 스스로를 힘들게 했구나 하는 결론에 이르렀다.


불편한 술자리에서 어떻게든 내가 무엇이 잘못되었는가를 물어보고, 그들 앞에서 반성하는 모습 (척하는 모습일 수도 있겠다)을 보이고, 취한 몸을 이끌고 집에가며 하나하나 곱씹어 보았던 지난 시간이 얼마나 허망했던지. 결국 나는 나이고, 나를 평가할 수 있는 사람은 상사뿐인데, 왜 그렇게 다수의 시선에 나를 맞추려고 스스로를 괴롭혔을까.


그래서 그 뒤로 그 누구도 나를 함부로 평가하게 두지 않기로 했다. 이제는 나답게 일하고, 원칙과 방향을 정하여 나아가고, 그 누구에게도 떳떳한 사람을 목표로 하루하루를 살고 있다. 남들이 쉽게 씹는 껌처럼 쉽게 말하는 싸구려 기준 말고, 내 삶의 기준에 맞추어 살고 있다. 나에게 텃세를 시전 하고, 나를 주제로 뒤에서 재미있게 각색한 뒷말로 웃음을 유도하여 재미있는 사람이 되고, 오래 근무했다는 견장을 뽐내며 충고하려 든 사람들은 이제 내 머리속에서 사라졌다.


이렇게 삶의 태도가 바뀌자, 내가 나를 괴롭히는 스트레스가 많이 줄어들었다. 내가 생각할 때 떳떳한 원칙이면 그대로 밀어붙였고, 내 상사에게 결제를 올리는 케이스 중 반려된 건은 단 한건도 없었다. 나에 대해서 이러쿵저러쿵 말이 나온다는 얘기가 더 이상 내 귀에 들리지도 않았다. 그들은 자기의 입맛대로 내가 움직이지 않아 불만이지만, 나의 일에 더 이상 평가할 수 있는 기회가 주어지지 않았기 때문에 어떤 말도 할 수 없었던 것이다.


지금 새로운 동료들과 일을 시작하는 것을 고민할 때도, 내가 이들에게 어떨 것 같은지를 물어보았다면 아마 100% 안 되는 일이라고 했을 거다. 그게 되겠냐, 그들이 뭐가 아쉬워서 당신과 일을 하겠냐? 이용만 당하다가 버려질 확률이 높다. 그냥 지금 하는 일만 문제없게 충실하게 하면 된다. 왜 긁어서 부스럼을 만드는 것이냐. 등등.


하지만 지금의 나는 나를 믿는다. 더 이상 누구의 지지를 바라지 않는다 (우리 가족의 성원과 지지는 늘 힘이 된다). 새로운 프로젝트를 한 발 한 발 나아가고 있는 지금, 누구도 나를 함부로 재단하고 평가하게 두지 않겠다고 했던 결심이 내 삶의 방향을 바꾸었다. 앞으로 내 삶이 어떻게 될지, 이 프로젝트가 실패할지 어쩔지 모른다. 하지만 나는 내 삶을 무한대로 되돌릴 수 있는 능력이 있대도, 언제든 이 결정을 할 것 같다. 후회하지 않는다. 불안하지도 않다. 이 결정을 한 이후의 내 삶이 행복하고 여유로워졌으니까.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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