43세, 영업에 나서다
직장 생활 내내 내 커리어는 구매업무에 있었다. 사람들이 항상 이야기하는 '갑'의 위치다. 돈을 쓰는 부서에 있었기 때문에, 내가 무엇인가를 제안하기보다는, 상대방이 나에게 제안하는 것에 대한 평가를 하는 위치에 있었다. 그래 맞다. 인정하자. 갑이라서 늘 우쭐했다. 내가 영업을 하는 상대방 보다 우월한 위치에 있다고 생각했다. 그러다 보니, 영업하시는 분들의 제안에 대해서 안 좋은 평가를 서슴지 않았다.
" 저 사람은 영업사원인데 옷이 저게 뭐냐? "
" 제안서를 이런 식으로 만들어서야 뭐가 핵심인지 어떻게 알겠어?"
" 협상을 하려면 전략을 가지고 와야지, 자꾸 와서 감정에 호소하려고 그래? 우리가 자선기업이니?"
" 강점이 없고 평범한 회사네. 저런 회사는 쌔고 쌨다 야 "
" 말하는 태도가 저게 뭐냐? 잘못했으면 납작 엎드려도 해결해 줄까 말까인데, 참 한심하다 "
우리 팀의 담당들과 미팅을 끝내고 오면서 했던 말들이다. 그래도 스스로에게 면죄부를 주면, 절대 그 사람 앞에서 대놓고 평가하지는 않았다는 점이다. 하지만 나의 태도는 온몸으로 느꼈으리라. 그런 나를 대하는 상대방의 입장에선 내가 참 힘들고 피하고 싶은 존재였을 것 같다.
그런데 이제 입장이 180도 바뀌었다. 우리가 만든 서비스를 사용해 달라고 영업을 해야 한다. 15년을 갑의 위치에 있다가 순식간에 을의 입장으로 바뀐 것이다. 스타트업이라는 업계의 특성상 잘 갖추어진 제안서가 있는 것도 아니고, 서비스가 완벽하게 완성된 것도 아니다. 미완성인 우리를 설명하고 받아달라고, 써 달라고 제안해야 하는 것이다.
그동안 업계에서 쌓은 인맥이 있어서, 처음에 서비스 제안을 위해서 만나자고 할 때 많은 사람들이 흔쾌히 그러자고는 한다. 하지만 막상 우리 서비스에 대해서 설명하면 정말 좋다는 의견도 있지만, 아이디어는 좋은데, 실제 그렇게 될지 의문이다라는 피드백들도 있다. 그리고 부정적인 피드백도 상당히 많다. 뚜껑을 열지 않았기 때문에 어쩌면 당연한 결과 이기는 하지만, 부정적인 이야기를 들었을 때는 힘이 빠지는 게 사실이다. 영업을 한다는 것이 이런 것이었나?
그동안 꼬장꼬장한 나를 상대하고 돌아갔던 영업사원들도 집에 돌아가는 길에 발걸음이 처지고, 한숨이 나오고, 기운이 빠졌을까? 집에 들어가기 싫고, 친구에게 전화해서 하소연하고 싶었을까? 그동안 내가 했던 행동들이 사무치게 후회가 된다. 말이라도 예쁘게 하고 위로라도 한마디 건넬걸. 십 년이 넘게 모질었던 내가 이렇게 미울 수가 없다.
43세, 영업에 뛰어든 아저씨는 지금 발가벗고 광장에서 수많은 사람들과 마주하는 기분이다. 그렇지만 지금 내 기분을 핑계로 지금 이 순간처럼 아무것도 하고 싶지 않아서 넋 놓고 있을 수는 없다. 낮고 겸손한 자세로 잠재 고객들의 목소리를 최대한 듣고 우리의 것으로 흡수해야 한다. 15년 동안 길들었던 우쭐한 나를 바꾸는 데는 많은 고통이 따르겠지만, 이걸 이겨내야 새로운 길이 열린다는 걸 온몸의 피부로 경험하는 요즘이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