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by 호접지몽 Jun 14. 2023

마지막 수업

오늘은 제가 한학기 동안 출강한 경기대학교 수업의 마지막 날입니다. 실질적인 강의의 마지막은 지난주였고, 지금은 학생들이 시험지에 사각사각 열심히 시험문제에 대한 답을 적고 있습니다. 생에 처음으로 강단에 섰고, 그 학기의 마지막 시간을 학생들과 한 강의실에서 같이 보내고 있습니다 (학생들은 저의 감성과 전혀 상관없이 열심히 답을 적고 있네요). 학기의 마지막이라 그런지 에어컨이 꺼져 있어서, 언덕길과 6층의 계단을 열심히 올라온 학생들의 땀냄새가 창밖에서 불어오는 바람과 함께 이 강의실에 공존합니다. 열정의 향기라고 해야 할까요. 마지막 날이다 보니 이런 소소한 것들까지 세세하게 저에게 느껴지고 있습니다.


제가 학생들을 가르쳤다고는 하지만, 실제로 제가 받은게 더 많은 한학기의 시간이었습니다. 학생들이 저에게 보내는 집중의 눈빛과, 동감하는 끄덕임이 저에게 더 큰 동기를 주고 용기를 북돋았습니다. 부족한 저의 첫번째 강의에서 제가 얻은건, 이분들의 에너지였습니다. 제가 하는 새로운 사업의 시작점에 이분들이 저에게 큰 동력을 주었습니다. 그래서 이 120명의 학생들에게 진심으로 감사하다는 말을 하고 싶습니다.


교토삼굴이라고 했던가요. 처음에는 강의를 하고자 하는 목적이, 사업을 하다가 혹시 잘못되었을 경우 최소한의 생계를 유지하고자 하는 도구 정도로 생각했던 것 같습니다. 그런데, 그런 마음 자체가 매주 학생들을 대하면서 정말 죄스럽다는 생각을 했습니다. 저에게 호구지책이었던 강의가, 이들에게는 미래를 위한 중요한 시간이었기 때문입니다. 그런 미래를 나의 호구지책 정도로 생각했다는 사실이 너무 부끄러워, 매주 화요일 수요일 오후의 이시간에는 저의 모든 체력을 다 바쳐서 강의를 했습니다. 집에 오면 모든 체력이 다 소진되어서 쇼파에 누워서 끙끙 앓았을 정도였지요.


이제 강의실에 시험을 마친 학생들이 하나 둘씩 빠져나가기 시작했습니다. 강의실에 모든 학생이 다 빠져 나가면, 진짜 이번 학기 강의의 마지막 순간을 텅빈 강의실과 함께 체감하겠지요. 주임교수님께서 다음학기 강의도 맡을 건지를 물으셨을때, 솔직히 조금 망설였습니다. 지금 하는 사업에 집중해야 하는 극초기의 순간이라서, 강의라는 다른 일을 병행하는 것이 옳은 것인가, 그리고 가능한 것인가를 심각하게 고민했습니다. 그런데, 오늘 이 수업시간에 사각사각 정성들여 답안지를 작성하는 학생들을 보니, 다음학기 강의도 해야겠다는 생각이 듭니다. 이 분들이 저에게 준 에너지를 어떻게든 돌려드리는게, 저의 도리이자 작은 소명이 아닐까 하는 생각이 들었기 때문입니다.


그래서, 오늘은 제가 가르치는 마지막 수업이 아니라, 23년도 1학기 마지막 수업이라는 표현히 정확할 것 같습니다. 적어도 23년 2학기에는 강의를 계속 할 테니까요. 지금과 같은 마음가짐을 늘 유지했으면 좋겠습니다. 그래서 23년에도 24년에도, 제게 허락된 시간동안은 계속해서, 사회에 나가기 직전의 대학생들에게 조금이라도 도움이 되는 강사가 되면 좋겠습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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