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by 호접지몽 May 25. 2023

아내의 연포탕

빡빡한 일상의 연속이다. 아침 5시에 일어나 보라매 공원으로 나간다. 주차를 해 놓고는 준비운동을 하고, 대략 한시간 정도를 달린다. 땀이 식을때 까지 걸으면서, 달릴때 머리속에 있던 생각들을 정리해서 글로 남긴다. 집으로 돌아와서는 찬물로 샤워를 하고, 아내와 아이와 점심을 먹고, 노트북과 타블랫PC, 전공서적, 영업서적이 들어가 무게가 15kg 정도 되는 큰 가방을 메고 집을 다시 나선다. 하루에 보통 두개에서 세개의 업체와 만나서 고객이 필요하거나 불편한 사항을 묻고, 우리의 서비스가 어떻게 그들에게 도움을 줄지를 생각한다. 보통 한개의 업체를 만나는데 걸리는 시간은 한시간에서 한시간 반, 업체를 만나기 위해 이동하는 시간도 한시간에서 한시간 반이 걸린다. 즉, 3개정도의 업체를 만나면 하루가 끝이 난다.


그렇게 파김치가 되서 집으로 들어온 어느날이었다. 집에는 장모님이 계셨다. 그 순간 안도가 되었다. 아이도 할머니를 좋아하고 아내도 장모님이 계시면 마음이 편안해 하기 때문이다. 내가 집에 들어왔는데도 아이는 할머니와 노느라고 아는체도 하지 않았지만, 장모님이 계셔서 너무 감사했다. 조용히 방으로 들어가 옷을 벗고 샤워를 하고 나왔다.


어지러이 거실에 흩어져 있는 장난감을 끙끙거리며 줍고 있는데, 아내가 조용히 내 곁으로 오더니 이렇게 말한다,


" 엄마 와 있으니까 방안에서 잠깐 쉬어. 그동안 저녁 해 놓고 있을께"


평소같으면 장모님이 계시는데 방에서 자는게 죄송스러웠겠지만, 그날은 아침부터 일정이 너무 빡빡했는지 피곤이 나를 짓누르고 있었기 때문에, 염치없이 그러겠다고 하고 안방으로 들어갔다. 침대에 몸을 누이고 눈을 감는다. 아이가 할미할미 하면서 이리저리 뛰어다니는 소리, 장모님과 아내가 투닥거리다가 정겹게 이야기 하는 소리가 들린다. 이제라도 나가야 하나? 막상 어두운 방에 누우니, 아이와 놀아줘야 하는데, 아내 얼굴을 보고 오늘은 어땠는지 물어보고 고생했다고 말해줘야 하는데 그렇지 못해서 미안한 마음이 든다. 그런 생각을 했다 고 인식하고 얼마 뒤에 나는 그냥 잠이 들었다.


잠에서 깬건 그 뒤 한시간 정도가 지난 후였다. 장모님은 가시고, 아이가 안방으로 들어와 아빠를 부르는 소리에 벌떡 일어난 거다. 나를 깨우는걸 저지하려는 아내가 안방에 따라 들어와 내가 일어난걸 물끄러미 보더니, 저녁이 다 되었으니 밥먹자고 내손을 잡고 식탁으로 이끈다. 


식탁에는 김이 모락모락 나는 연포탕이 있었다. 다이어트를 한답시고 밥을 끊은지 이제 한 10개월 정도가 되어 가는데, 아내는 곤약밥을 지어서 연포탕 옆에 두었다. 그 음식의 온기를 얼굴로 느끼고 있는 것만으로도 오늘 하루의 피로가 풀리는 기분이었다. 그 국물을 입에 담는 순간, 오늘 하루 있었던 나의 고민과 번민, 속상한 마음과 지쳤던 마음을 토닥이고 있음을 알 수 있었다. 


" 정말 맛있다. 어떻게 이렇게 맛있게 끓였어?"

" 맨날 애기가 낙지 좋아하니까 애기꺼만 하다가, 오빠가 너무 피곤해 해서 몸보신 될까 하고 끓였어. 많이 먹어"


아내가 배려해 주어서 즐긴 한시간의 꿀같은 낮잠과, 감동적인 연포탕 덕분에 너무도 편안하고 행복한 저녁이었다. 삶의 기쁨과 행복이란, 짜릿하고 엄청난 순간이 아니라, 잔잔하고 편안하게 흘러오는 강물같은 것이 아닐까. 아내가 주는 사랑이 나에게는 그런 존재인것 같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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