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by 전설 Oct 01. 2020

V. 사람 사이에서

첫 만남에서 이렇게

       

처음 만나는 자리는 으레 어색하다. 일로 만나는 비즈니스 모임은 물론 사적으로 만나는 동호회 모임에서도 그렇다. 먼저 자기소개를 하기 전에 어색한 분위기를 누그러뜨리는 가벼운 이야기를 주고받는다. 이를 영미권에서는 스몰 토크(small talk, 한담)라고 부르는데 첫 만남의 어색한 분위기에서는 ‘큰’ 노력이 필요하다. 오늘의 미세먼지 수치에 대해서 이야기 나누거나 오는 길에 차는 안 막혔는지 등을 물어보며 이야기의 엔진을 예열시킨다. 이런 가벼운 이야기를 묻는 게 불편하고 어색하다고 해서 바로 모임의 주제로 건너뛸 수는 없다. 나는 그런 주제로 이야기를 할 준비가 되어 있지만 상대방은 무방비 상태일 수도 있기 때문이다. 내가 원하든 원하지 않든 나의 스타일과는 별개로 가벼운 이야기를 주고받는 것은 피해 갈 수 없는 대화의 수순이다. 

가벼운 이야기를 부담스러워하는 사람이 있는데 가벼운 이야기는 어디까지나 시작이라고 생각하는 것이 좋다. 이 단계를 무난하게 잘 넘어가야 다음 단계에서 본격적인 대화를 나눌 수 있다. 가벼운 이야기를 주고받다 보면 질문에 대답을 해야 하는데 그때는 네, 아니오 식의 단답형 답은 피하는 것이 좋다. 단답형 답은 일종의 ‘닫힌 대답’이어서 추가적인 질문이나 이야기를 끌어내지 못하기 때문이다. 상대방에게 대화를 해 나갈 여지를 주기 어렵다. 처음 만난 자리에서 대화가 뚝뚝 끊어지는 경험을 했다면 자신의 대답을 점검할 필요가 있다. 상대방이 자신에게 질문을 하면 적극적인 태도로 자세하게 대답하는 것이 좋다.  

첫 만남 자리에서 있었던 일이다. 역시나 피할 수 없는 시간인 자기소개를 했다. 모르는 사람들 앞에서 자기소개를 한다는 게 상당히 어색하고 민망한 일이다. 그래서 모임에서 자기소개를 하자고 하면 다들 피하려고 한다. 많이들 어색해하지만 그렇다고 자기소개를 안 하고 모임을 진행하는 것도 아상하지 않겠는가. 자기소개 양식은 간단하다. 이름, 나이, 직업, 하고 싶은 말 정도다. 

자기소개를 하며 한 친구가 하고 싶은 말로 오늘이 자기 생일이라며 쑥스럽게 웃었다. 이 모임에서 처음 만나는 친구였다. 내가 즉석 생일 파티를 하자고 제안했고 모임 장소는 순식간에 생일 파티장으로 변했다. 다들 축하한다는 말을 해 주었다. 생일 파티의 주인공은 연신 고맙다는 인사말을 건넸다. 서로 모르는 사이였지만 좋은 일로 서로 축하를 해 주니 다들 기분이 좋은 표정이었다. 

생일 선물 대신 따뜻한 말이나 덕담을 한마디씩 해 주자고 했다. 처음 만난 사람에게 덕담이라니 뭔가 싶을 수도 있는데 생일인 사람에게는 잔잔한 감동을 준 것 같았다. 모임이 끝나고 그 친구에게서 문자메시지가 왔다. 

‘형, 고마워요. 잊지 못한 생일 선물을 해 주셔서. 와이프가 형에게 정말 고맙다고 꼭 전해 달래요. 그동안 와이프가 제 생일에 생일상도 차려 주고 모임도 많이 해 봤는데, 이렇게 생일 때 덕담을 해 준 건 처음이라고. 좋은 경험하게 해 줘서 고맙대요.’

그날 이후로 모임을 가게 되면 모임에 참석한 사람들에게 돌아가면서 좋은 말을 해 주는 것으로 자리를 정리하곤 한다. 

상대방에게 긍정적인 말 특히 칭찬을 할 때는 실제로 그 사람이 잘하고 있는 것을 진심을 담아서 칭찬해야 한다. 그 사람 자체보다는 그 사람이 한 일을 칭찬하는 것이 좋다. “진짜 멋지네요”보다는 “오늘 입은 파란 넥타이가 아주 잘 어울리네요”가 더 좋다. “일을 참 잘하네요”보다는 “이번에 ○○ 일 아주 잘했네요”가 더 낫다. 이렇게 칭찬도 구체적으로 하는 것이 좋다. 간혹 그 사람 자체를 칭찬하는 것을 불편해하는 사람들이 있다. 이들에게는 이런 식으로 구체적인 특정 사실을 칭찬하는 것이 좋다. 

나는 사람들과 만나는 자리면 어떤 자리든 가리지 않는다. 술자리 역시 마찬가지다. 술을 잘 마시지 못하지만 술자리가 주는 편안함, 솔직함을 좋아한다. 지금은 많이 바뀌었지만 모임 하면 떠오르는 게 술자리다. 먹고 마시는 술자리 문화에 익숙하다 보니 이야기를 나누는 자리를 어색해한다. 어색한 분위기는 순간이고 신선한 경험은 오래 기억에 남는다고 생각한다. 어느 자리에서나 서로에게 좋은 말 한두 마디 정도 하고 본 행사(?)를 시작했으면 하는 마음이다. 모든 자리에서 일종의 ‘애피타이저’로 좋은 말(칭찬, 덕담) 한마디를 고정 메뉴로 정해 놓으면 어떨까. 

최근에는 첫 만남에서 고민거리를 말해 보는 시간을 갖고 한다. 누구나 고민을 안고 사는데 그 고민거리를 가족이나 친한 지인에게 터놓기는 부담스러울 때가 있다. 그런 고민들을 처음 만난 사람들에게 이야기를 하면 해답을 찾지 못해도 이야기를 했다는 것만으로도 마음이 한결 가벼워진다. 그저 고민거리를 터놓는 것만으로도 한결 어깨가 편해지고 마음속 묵직한 무엇을 덜어 낸 기분이다. 초면에 고민을 이야기하는 것을 꺼리는 사람들도 있을 것이다. 다 같이 고민을 터놓고 말해 보자가 아니라 편하게 고민을 말하고 싶은 사람은 하고 그렇지 않은 사람은 안 해도 된다. 경험상 누군가 자신의 고민을 이야기하면 그 후부터 모임 분위기는 한결 편안해진다. 흔히 잘나간다는 사람들과의 모임에서도 이와 비슷한 경험을 여러 차례 했다. 이런 것이 인지상정인 것 같다. 우리는 저마다 다 다르지만 고민의 경험은 시나브로 공감하게 된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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