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by 전설 Oct 01. 2020

V. 사람 사이에서

사회생활에서의 인간관계

대학을 다니며 엄청난 스펙(자격증, 해외연수, 사회봉사, 공모전 수상 등)을 쌓아도 취업을 하는 것은 하늘의 별 따기이며, 어렵사리 취업을 해도 직장 생활을 순항하기가 쉽지 않다. 학교라는 테두리 안에서는 성적이 가장 중요한 덕목(?)이겠지만 사회에서는 실력(능력)뿐만 아니라 인간관계도 중요한 덕목이 된다. 

예나 지금이나 인간관계는 어려운 인생 영역 가운데 하나다. 특히 요즘 젊은이들에게는 더욱 어렵다. 공부에 올인하고 성적에 목을 매다 보니 다른 사람을 생각할 여유도 없고 왜 타다른 사람을 생각해야 하는지 이유도 모르는 경우가 많다. 이로 인해 인간관계에 서투르고 공감 능력이 낮아서 점점 개인주의가 되어 간다. 이는 성적 제일주의, 입시가 불러일으킨 가장 큰 문제라고 생각한다. 인간관계나 공감능력은 족집게 과외로 며칠 만에 마스터할 수도 없고, 만들어질 수도 없다. 이십 년 이상을 나만 알고 지낸 사람이 다른 사람의 마음을 이해하기는 쉽지 않다. 

입시에서는 마침표가 있지만 인간관계에서는 마침표가 없다. 일흔여덟 살 할아버지도 여든 살 할아버지와의 인간관계 때문에 힘들어하신다. 그 연세쯤 되시면 무슨 욕심이 있고 무슨 문제가 생기겠냐고 하지만 그렇지 않다. 그게 인생이더라. 살아 있는 내내 인간관계는 지속된다. 인생에서 삼분의 이 이상을 보내게 되는 직장은 인간관계 그 자체이며 인간관계의 축소판이다.

오랫동안 제자들을 만나고 그들의 성장 과정을 지켜보다 보니 그들이 가장 힘들어하는 주제를 알게 되었다. 바로 인간관계다. 관계는 칼로 무를 자르듯이 단번에 끊어 낼 수 없다. 관계가 깊을수록 더욱 그렇다. 

내가 생각하는 인간관계의 핵심은 간단하다. 좋은 사람과는 관계를 맺고 싫은 사람과는 굳이 관계를 맺지 않는 것이다. 사회생활을 하다 보면 어쩔 수 없이 관계를 맺어야 한다. 그럴 때는 관계의 깊이에 신경 써야 한다. 일하면서 맺은 관계라면 업무 시간에만 연락을 하고 미팅을 하거나 연락을 할 때는 업무와 관련된 이야기만 나누도록 하자. 싫은 사람과 굳이 관계를 깊이 맺을 필요는 없다. 

단, 관계의 깊이에 상관없이 함께 일하는 파트너라면 상대방을 신뢰해야 한다. 상대방이 나를 신뢰하지 않는 것 같은데 어떻게 내가 먼저 상대방을 신뢰하느냐고 되묻는 사람들이 더러 있다. 처음부터 상대방을 의심하고 경계하면 일상이 피곤해진다. 내가 먼저 상대방에게 신뢰를 보내는 것이 일단은 나에게 유익하다. 또한 신뢰가 밑바탕에 깔려 있지 않으면 일 자체가 힘들어진다. 

‘좋은 사람만 만난다 해도 다 못 만나고 죽는 것이 우리네 인생이다.’ 관계에 대해 고민할 때 많이 떠올리는 말이다. 회사에 다니고 사회생활을 하다 보면 친구, 애인을 만날 시간이 많지 않다. 하루가 멀다 하고 자주 만나던 단짝 친구도 서로 자기 일을 하다 보면 한 달에 한 번 만나는 것도 힘들어진다. 결혼하고 아이까지 생기면 일 년에 한 번 만날까 말까다. 일 년에 한 번 만난다고 하면 십 년이면 열 번이다. 보고 싶은 단짝 친구도 보기 힘든데 만나면 불편한 사람을 굳이 따로 만나서야 되겠는가. 

어떤 사람, 집단과의 관계에서 회의를 느끼거나 어려움을 겪는다면 이 말을 기억하길 바란다. 편하지 않은 부담스러운 사람을 따로 시간을 내서 만나야 할 필요가 있을까. 만약 일과 관련해서 중요한 사람이라면 되도록 일하는 시간에 약속을 잡고, 예의 바르고 정중하게 행동해서 뒷말을 듣는 일이 없도록 각별하게 신경 쓰자.     

일과 관련된 관계가 아니라는 전제 아래 내가 생각하는 인간관계는 만나면 좋은 사람들을 만나야 한다는 것이다. 그 사람들만 만나기에도 남은 인생이 짧다. 일로 엮인 관계라면 일이라는 테두리 안에서만 관계를 유지하자. 일정 정도의 거리를 두고 적절한 긴장 관계를 유지하는 것이 좋다. 상대와 거리를 두고 긴장 관계를 유지하는 좋은 방법은 상대에게 존댓말과 경어체를 쓰는 것이다. 상대에게 경어체를 쓰게 되면 나는 물론이고 상대방도 공손해지게 마련이다. 상대방이 나보다 나이가 많든 적든 따지지 말고 존댓말과 경어체를 쓰자. 

문자메시지나 카톡 메시지를 보낼 때도 마찬가지다. 의례적 안부로 시작해서 업무와 관련된 소통만 하고 격식에 맞는 끝인사로 마무리를 하는 식이다. 이모티콘 사용도 자제하자. 이렇게 관계를 맺어도 일에 전혀 지장이 없다. 무미건조해 보일 수도 있지만 이 모습이 내 삶의 전부는 아니지 않는가. 

공공기업에 다니는 친한 동생이 있다. 그 동생은 연락할 때마다 직장 상사에 대한 불만을 쏟아 낸다. 처음에는 푸념이겠거니 생각했는데 이제는 푸념이 쌓여 불만이 되었고 그로 인한 스트레스가 대단했다. 불만의 요지는 직장 상사가 자기에게만 일을 많이 시키는데 그 상사가 자신을 평가하기 때문에 어쩔 수 없이 시키는 일은 뭐든지 다 맡아서 악착같이 하고 있다는 것이다. 

나는 그 동생에게 “악착같이 일할 필요 있니? 시키는 일만 하면 되지 않겠니. 다음에 그 상사가 일을 시키면 그 일만 적당히 해.”  

상사가 일을 시키면 할 수밖에 없다. 물론 열심히 해서 나쁠 것은 없다. 하지만 상사 때문에 스트레스를 받으면서까지 악착같이 할 필요는 없다. 내 꿈을 위해 더 나은 내일을 위해 열심히 일한다. 요샛말로 뼈를 갈아서까지 일에 매달리고 꿈에 집착할 필요가 있을까. 꿈이든 일이든 그저 우리 삶의 일부일 뿐이다. 

회사에서 거절을 못하는 사람들이 있다. 이들은 자기 욕망보다 다른 사람의 욕망을 더 중요하게 생각하기 때문이다. 이런 사람들은 자기지향적이지 않고 타인지향적이다. 상대방의 부탁을 다 들어준다고 해서 상대방(직장 상사)이 더 믿어 주고 대접해 주는 것도 아니다. 만약 나라면 무슨 부탁을 해도 오케이하는 사람에게 믿음이 가겠는가. 우리는 감정을 지닌 사람들이어서 맨날 오케이만 할 수 없다. 즉 늘 예스만 외치면 그게 진심인지 아닌지 헷갈릴 수 있다. 상대방이 중요한 업무를 맡기려고 할 때 예스맨에 맡길지 고민을 하게 마련이다. 거절할 줄 모른다는 것은 솔직하고 믿을 만하다고 받아들여지기 어렵다. 상대방의 제안이나 부탁을 거절하는 것을 상대방을 거부하는 것으로 생각하는 사람이 있다. 일과 관련된 대답은 어디까지는 일시적인 사안에만 해당하는 것임을 잊지 말자. 

내가 사회생활 하면서 가장 싫어하는 위선적이 말이 있다. 때론 이 말을 구호처럼 외치기도 한다. 바로 “우리는 가족이다”라는 말이다. 어떤 직장에서는 가족을 좀 더 강조하기 위해 “우리는 한 가족이다”라고 쓰기도 한다. 이 말은 거짓말 중에 거짓말이라고 생각한다. 직장 사람들, 회사 사람들은 결코 가족이 될 수 없고 가족 같은 관계도 아니다. 그저 일로 맺어진 관계일 뿐이다. 그 관계 이상을 요구하거나 기대해서는 안 된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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