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by 전작가 Sep 12. 2022

James

#0




 전쟁터가 된 도로 위로 3중 추돌의 흔적이 고스란히 남아 있었다. 뒤집힌 채로 연기를 뿜고 있는 엑시언트 수소 전기트럭(FCEV) 옆으로 테슬라 모델 s와 BMW 쿠페가 흉측하게 일그러져 있었다. 사람들의 고통스러운 비명소리가 메아리처럼 바람을 타고 울려 퍼졌고, 뜯겨나간 날카로운 파편들과 시커멓게 타오르는 연기가 불지옥을 연상시켰다. 아비규환 같은 현장 속에서 비틀어진 몸을 가누지 못하는  남자가 구겨진 차 틈 사이로 보였다.


 그의 이름은 제임스 매카티, California Institute of Technology에서 학생들에게 가장 존경받는 최연소 공대 교수이다. 훤칠한 외모에 인기가 많은 제임스는 아내만을 끔찍이 사랑하는 순정파이다. 4주년 결혼기념일을 위해 서둘러 집으로 향하는 길이었다. 사고를 당하지 않았다면 사실 지금쯤 집에 도착할 시간이었다. 제임스는 오늘 대학 강의를 마치고  달 전부터 미리 예약해 둔 한정판 에디션을 찾으러 매장에 갔었. 한 달을 기다린 보람이 있었다. 결혼기념일 선물로 준비한 크리스털 목걸이의 촉감이 대리석처럼 매끄러웠고, 빛에 따라 색이 변하는 보석이 우주를 담은 듯 황홀했다. 제임스는 선물과 자약 꽃다발을 들고 차에 올라탔다. 차에 시동을 걸자 <Ckay-Love nwantiti>이 흘러나왔다. 노을빛으로 물들어가는 하늘과  노래가 완전한 케미를 이루는 것 같았다. 콧노래를 흥얼거리며 Western road 2번가에서 사거리에서 차를 돌리려 할 때였다.

 "이런... 왜 여기서 신호가 걸린 거야."

 빨간 신호등에 걸려 잠시 차를 멈춰 세웠다.  

  "도로에 차도 별로 없는데 이 정도는 괜찮겠지?"

 주위를 둘러보니 드문드문 지나가는 자동차들과 횡단보도를 건너는 몇몇 사람들뿐이었다. 제임스는 액셀 밟으려 했다. 그때 백밀러로 BMW 차 한 대가 눈에 들어왔다. 주위의 시선에 아랑곳하지 않고 서로 키스를 하는 커플이 보였다.

  "뭐지. 저 차는 언제부터 있었던 거야? 저 사람들 보아하니 부부는 아니겠네 아니겠어."

 혼자서 혀를 차며 커플의 험담을 늘어놓는 동안 1분 2분 3분이 지나 5분 6분이 지났어야만 했었다.

 "아니.. 저 신호등이 왜 저러지? 고장 났나?"

  자신을 기다리고 있을 클로이를 생각하니 마음이 조급해지기 시작했다.

 "어쩔 수 없군..."

 그는 신호를 무시하고 사거리를 넘어가려 할 때 믿기지 않는 광경이 펼쳐졌다. 거대한 트럭이 미친 듯이 그를 향해 돌진하고 있었다.

 "아니.... 저 미친 새끼 뭐야?....."



 그는 상처 입은 폐로 숨을 들이마실 때마다 피를 토해냈다. 날카롭게 부러진 뼈들이 피부층을 뚫고 벌어진 상처 사이로 솟아올라왔고, 찢어진 이마에서 뜨거운 피가 목선을 따라 주르륵 떨어지자 정신이 혼미해지기 시작했다. 겨우 뜬 실눈 사이로 검고 매캐한 연기가 깨진 창문 너머로 솟아오르는 것이 보였다. 도로 위로 피어오르는 뜨거운 열기와, 시커먼 연기들이 사고의 잔해를 마치 창문을 가린 커튼처럼 가로막았다. 제임스가 매연으로 잔기침을 하자 깊게 찔린 옆구리 틈에서 뜨거운 핏덩어리가 쏟아져 나왔다. 피를 쏟아내자 온몸이 나른해지기 시작했다.

  "클로이... "

 제임스는 아내의 이름을 불렀다. 결혼기념일 선물로 함께 준비한 작약꽃이 갈기갈기 찢긴 종이조각처럼 사방에 흩어져 있었다. 작약꽃 향이 클로이를 더욱 아른거리게 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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