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by 전작가 Sep 15. 2022

Daniel

#10




 따뜻한 물줄기가 샤워기 헤드에서 힘차게 솟아 나왔다. 둥그런 욕조 속으로 물이 채워지는 동안 수면 위로 수증기가 아른아른 피어올라 마치 천장이 이슬로 뒤덮인 하늘을 닮아갔다. 아슬아슬하게 매달려 있는 물방울이 한 방울 두 방울 미셀의 이마로  떨어질 때마다 마치 첫 잎을 피어내는 씨앗처럼 젖은 피부 표면 위로 짜릿한 촉이 섰다. 이마에 닿았던 물방이 가슴골 사이를 지나 배꼽 아래로 스쳐 지나가자 온 몸이 조여왔다. 뿌연 수증기 너머로 다니엘이 어른거렸다. 습한 공기로 호흡이 가빠지는 건지 그의 생각에 미쳐가는 건지 미셀의 마음을 훔친 그의 농염한 눈빛과 키스가 미친 듯이 그리워졌다. 다정스레 머리칼을 겨주던 촉감을 다시금 느끼고 싶었다. 



  "곧 퇴근입니다. 저를 잠시 기다려 줄 수 있겠어요? 전하고 싶은 말이 있습니다."

 다니엘은 거친 호흡을 가다듬으며 고개를 들었다. 그의 반듯한 이마 사이로 곧게 뻗은 콧날과 각진 턱선 그리고 균형 잡힌 짙은 눈썹과 푸른 눈동자는 상당히 마성적이었다.

  "네..  밖에서 기다리고 있을게요."

 미셀은 흐트러진 옷가지를 추스르며 떨리는 목소리로 대답했다. 두 뺨은 마치 빛이 산란한 저녁노을처럼 홍조로 붉게 물들어 있었다. 


 다니엘은 퇴근 준비를 하는 동안 고객과 사적인 교감을 나눈 것에 후회가 밀려왔다. 회사 내 벌어진 상황을 어떻게 수습해야 할지 혼란스러웠다. 미셀에게 전할 말을 되새기며 매장 문을 힘껏 밀어 열었다. 저 멀리 미셀의 뒷모습이 보였다. 빛나는 금발과 슬림한 큰 키에 버버리 코트를 입은 모습은 완벽에 가까웠다. 주위를 서성거리다 뒤를 돌아본 그녀와 눈이 마주치자 전하려 했던 말들이 눈처럼 스르르 녹아 사라지고, 머릿속이 온통 그녀의 생각으로 가득 차 버렸다. 당장 달려가 그녀를 품싶어졌다.

  "미셀.. 드라이브나 할까요?"

 차문을 열면서 미셀을 바라봤다. 그녀도 본능적으로 그의 차에 몸을 실었다.

  "네..."

  그들은 한동안 아무 말 없었지만 어디로 가야 할지 아는 듯했다. 그저 정처 없이 돌고 돌다가 결국 차를 세운 곳은 그의 집 앞이었다. 자석에 이끌리 듯 서로를 간절히 원하던 그들은 주춤하는 기색도 없이 여느 커플처럼 자연스레 서로에게 향했다.





 그의 집은 작지만 아늑했다.

  "사실...  당신 같은 아름다운 여인과 함께 있을 줄은 전혀 예상하지 못했어요... 프랑스산 Eddie Féraud, 2015  어때요? 미세한 타닌과 부드러운 질감이 마치 당신의 입술 같아요. 오늘 밤 저와 함께 해요.. 미셀... 이리 와요.."

 다니엘은 그녀를 끌어와 품에 안았다. 미셀은 단단하고 넓게 벌어진 그의 가슴에 얼굴을 묻고 찰스에게 느끼지 못했던 강한 이끌림을 느꼈다. 그러나 그의 품이 엄마처럼 편안하더라도 더 이상 머무를 수는 없었다.

  "미안해요. 다니엘... 오늘.... 오래 있지는 못할 거예요.. 저는..."

 다니엘은 머뭇거리는 미셀을 벽으로 지그시 누른  그녀의 두 손목을 잡아 머리끝까지 끌어올렸다. 미셀풍만한 가슴골이 더 깊어졌다. 다니엘은 그녀의 붉은 입술을 빨기 시작했다.  혀끝이 닿는 곳곳마다 그녀가 달아오르는 욕정으로 신음했다. 그때 미셀의 전화기가 울렸다.

  "잠.. 잠깐만요... 다니엘..."

  "받지 마요. 오늘은 이대로 있어요.."

 다니엘은 전화기 쪽으로 뻗은 미셀의 손목을 가로채어 침대로 이끌었다. 잠시 머뭇거리던 그녀도 그를 따라 은밀한 곳으로 발걸음을 옮겼다.



 똑똑똑... 욕조 밖에서 문 두들기는 소리에 화들짝 놀란 미셀이 정신을 차렸다.

  "여보, 혹시 욕조에서 잠든 건 아니지."

  "어... 찰스... 곧 나갈게.."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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