찰스는 저녁 식사를 준비하느라 분주했다.아라비아풍(Arabescato)의 무늬결이돋보이는 아일랜드 식탁이 널찍한 주방 사이로보였다. 식탁 위로 김이 모락모락 나는 치즈 핫도그와 풍만한 향이 가득한 달콤 망고 카레라이스가먹음직스럽게 놓여 있었다. 아이들은 냄새를 따라음식 주위를 맴돌면서환호성을 쳤다.
"와~~ 맛있겠다. 이거 아빠가 다 만든 거예요"
"응. 그래. 오늘은 엄마 대신 아빠가 준비했어."
"그럼. 엄마는 오늘 늦으시는 거예요? 언제 오시는 거예요?"
졸리는 늘 엄마를 챙겨주는 기특한 딸이었다.
"엄마는 새 차를 찾고친구분들과 저녁식사를 하고 오실 거야.오늘 저녁식사는 우리끼리 먼저 하자꾸나!"
찰스는쥐방울만 한 졸리를 두 팔로 번쩍 들어 올려 어린이용 식탁에 앉혔다.
"엄마한테 한번 전화라도 걸어볼까?"
"네네~~."
졸리가 큰소리로 환호성 치자 뒤에 서 있던 엔젤도 팔닥팔닥 뛰며 소리쳤다. 사실 찰스도 아이들 못지않게 미셀이 궁금했다. 이 시간이면 아이들 걱정에 먼저 전화를 했었을 그녀였다.찰스는 전화 대신 문자를 남겨 보았다. 모처럼의 자유시간을 방해하고 싶지는 않았기 때문이다.
"내 천사들.. 아무래도 엄마는 조금 바쁜 것 같다.. 일단 저녁을 먼저 먹고 엄마를 기다려보는 건 어떠니? 괜찮겠지?"
아이들은 삐쭉거리는 입술을 쭉 내밀며 마지못해 고개를 끄덕였다.
저녁식사를 마치고 아이들을 재우고 나오면서 아직까지 메시지를 확인하지 않는 미셀이 걱정되기 시작했다. 시간이 9시를 넘자 참다못한 찰스는 휴대폰을 꺼내 버튼을 눌렀다. 예상과 달리 신호음이 길었다. 신호음이 길게 울리다 음성 서서함으로 넘어갔다.이상한 기운을 느꼈다.
'이상하네.. 한 번도 이런 적이 없었는데... 무슨 일이 생긴 건가?..'
미셀의 걱정에 안절부절못하는 찰스가 전화기의 버튼을 누르려하는 동안미셀은 차마 집으로들어가지 못하고 문 밖을 서성이고 있었다. 그녀는 찰스와 아이들을 마주 볼 자신도 없었지만, 여전히다니엘과의뜨거웠던순간들로 흥분을 가라앉힐 수가 없었다. 그때 전화가 또 울렸다.
"미셀. 잘 오고 있는 거야? 아이들이 기다리다 잠들었어. 어디쯤이야?"
"어.. 찰스.. 곧 도착해 피곤하면 먼저 자.. 금방 갈게."
미셀이 문 쪽으로 등을 돌리려 할 때 현관문이 철컹 열렸다.
"아니 여보... "
"문 앞에 와 있으면서 왜 들어오지 않고.. 자기 괜찮은 거야? 술 좀 마셨구나!!"
"어.. 와인 좀 마셨어. 술 좀 깨면 들어가려고 했지..."
"어서 들어와. 피곤할 텐데 씻고 자야지.."
찰스는 어째 수척해 보이는 그녀의 어깨를 감싸 안고집안으로 들어갔다. 찰스는 참 좋은 남편이었다. 미셀에게 프러포즈를 허락받은 유일한 남자였다. 결혼 생각이 없었던 미셀은 아마 아이가 생기지 않았더라면 그와 동거로만 지냈을지도 모른다. 하지만 양부모를 잃고 고아가 된 그녀를 조건 없이 받아 준 찰스와 감동적인 결혼식을 올리게 되었고, 이보다 행복할 수 없는 나날을 보내고 있었는데.. 미셀에게남편의 아내로서, 두 아이의 엄마로서'외도'라는 꼬리표가 달려버렸다.
"미셀 괜찮아?"
"...... 어어.. 괜찮아."
복잡한 생각들이 파도처럼 그녀를 덮쳤다.찰스와 아이들 그리고 다니엘이 순차적으로 눈앞을 스쳤다. 그와 마셨던 레드와인의 취기가 가슴과 목덜미 주위를 여전히 맴돌았고, 미셀의 머릿속은 다니엘의 생각으로 가득 찼다. 찰스에게서 다니엘의 단단한 몸이 겹쳐 보이기까지 했다. 그저 불장난이라며고개를 저어보았으나 소용없었다."
"찰스 나 좀 씻을게. 먼저 눈 좀 붙여.. 아이들 챙기느라 피곤했을 텐데.."
미셀은 그를피해 욕조로 미끄러지듯 도망쳤다. 수도꼭지를틀자 뜨거운 물줄기를 타고 수증기가 피어올랐다. 샤워실이안개로 덮인 마을처럼 훈훈한 열기로 가득 메워져 갔고,미셀의달아오른다리사이로 다니엘이채워져 갔다.욕조에 물이차오를수록뿌연 연기 너머로 그때의격렬했던움직임이아른거리기 시작했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