brunch

You can make anything
by writing

C.S.Lewis

by 전작가 Sep 13. 2022

Michelle

#8





 미셀은 결혼한 지 겨우  달이 되었지만 토끼 같은 아이들이 두 명이나 있다. 결혼과 출산은 이야기인 줄로만 알았던 그녀는 기념일을 빠지지 않고 챙겨주는 든든한 남편과 사랑스러운 아이들이 한 집에 살고 있다는 사실이 신기할 따름이었. 아이를 가지지 않았다면 결혼 생각이 없었던 미셀은 쌍둥이를 출산하고 10년이 지나서야 찰스의 끈질긴 구애로 결혼식을 올렸다. 때마침 그의 사업 규모가 확장되어 캘리포니아 주 비버리힐즈로 온 가족이 이사를 온 후 벌써 2주가 지났다. 몇몇 동내 이웃들과 왕래도 하며 즐거운 시간을 보내고 있는 미셀은 아이들을 통학시키는 일로 하루를 시작한다. 오늘따라 쌍둥이들의 등하교를 마치고 걷는 5월의 산책길이 내음으로 가득했다. 이토록 설렐 수는 없었다. 내일부터 최신형 전기차로 아이들을 통학시킬 수 있다는 생각에 한 걸 내디딜 때마다 마시멜로우를 밟는 듯 마음이 설레었다. 사거리 넘어 BMW 매장이 어렴풋이 보이자 콧노래가 저절로 나왔다. 횡당보도에서 잠시 멈춰서 휴대폰을 꺼냈다.


  "찰스. 나야 미셀. 당신 행여나 맘 변하면 안 되는 거 알지? 지금 주문해둔 전기차 찾으러 가는 길인데 나중에 다른 말하는 거 없기다."

 몇 달부터 예약해 두었던 전기차를 구매할 기쁨에 그녀의 푸른 눈이 보석처럼 빛났다.

  "미셀. 당신이 좋다면 나는 다 좋아. 당신이 오랫동안 기다려왔잖아. 새로 알게 된 동네 이웃들과 맥주라도 한 잔 하고 천천히 들어와. 오늘은 내가 아이들 저녁 먹일 게."

 찰스의 나긋나긋 목소리는 미셀과 대조적으로 침착했다. 

  "고마워 여보. 그럼 저녁에 봐."

 전화기를 끊자마자, 신호등이 파란불로 바뀌었다. 횡단보도를 건너갈수록 매장 건물이 시야로 가까이 들어왔다. 2층 높이의  유리벽이 빛에 반사되어 반짝거렸다.


  "어서 오십시오. 고객님. 성함이 어떻게 되시나요?"

  "미셀 킴입니다."

  "네. 잠시만요. 구매고객 리스트 잠시 확인해 보겠습니다."

 원은 희고 가지런한 치아를 내보이며 미소 짓더니 잠시 앉아서 기다리라는 말을 남기고 매장 중앙으로 멀어져 갔다. 그는 자리에 앉아 컴퓨터를 한참 들여다보더니 담배 피우다 걸린 고등학생처럼 움찔하며 미셀에게 고개를 돌렸다.

  "고객님. 너무 죄송합니다.  그란 쿠페 i4 입고되었으나.... 혹시 다른 차종은 생각해 보셨는지요?"

 미셀은 어이없는 표정을 지으며 되물었다.

  "아니.. 신차가 입고 되었는데 다른 차종을 생각해보라니요! 무슨 말씀이신가요?"

 미셀은 기대했던 만큼 실망도 컸는지 달아오른 흥분을 쉽게 가라앉히지 못했다.

  "당분간 전기차는 판매일이 늦어질 예정이라고 합니다.. 죄송합니다."

  "죄송하다는 말을 들으려는 것이 아니라 판매하지 않는 이유를 논리적으로 설명해주세요... 일주일 전에만 해도 입고되었으니 방문하라고 연락 주시지 않았나요?"

 그녀의 목소리가 매장에 쩌렁쩌렁 울렸다. 자동차를 구경하는 몇몇 사람들이 힐끔거리며 미셀을 쳐다보자 톤을 낮추고 작은 목소리로 되물었다.

  "여보세요.. 정확한 사유를 설명하지 않는다면 가만있지 않겠어요. 저는 내일부터 꼭 그 차로 운전해야 합니다. 알겠어요?"

 원이 난감해 하자 저 멀리서 검은색 슈트를 입은 남자가 다가왔다. 185cm쯤 보이는 큰 체격에 넓은 어깨가 그녀의 시선을 사로잡았다. 왼쪽 가슴 포켓에는 로즈골드 금속 명찰이 거울처럼 반짝거렸다.

  "안녕하세요. 저는 BMW 매니저 다니엘이라고 합니다. 무엇을 도와드릴까요?"

 점원이 그에게 속삭이며 상황을 다시 설명하자 다니엘은 따뜻한 표정으로 미셀을 스페셜 VIP방으로 안내했다.

  "고객님, 저를 잠시 따라오시겠어요?"

 다니엘은 핑크 벨벳 의자로 미셀을 정중히 에스코트했다.

  "미셀 씨. 일단 자리에 앉으시죠."

 그의 무게 있는 자태에 이끌려 얼떨결에 착석한 미셀은 그의 깊고 푸른 눈에 매료되고 말았다.

  "우선 미리 말씀드리지 못해 죄송하다는 말씀을 전해드립니다. 지난주부터 전기 완성차 배터리에 문제가 발생되어 조사 중입니다. 사실 배터리의 문제라기보다.. 현재 출고 예정인 자동차의 배터리에 완충되었던 전기가 모두 방전되어 그에 따른 현상을 공장에서 확인 중에 있습니다. 좀 더 기다려주신다면 원하시는 차종을 준비해 두겠습니다. 여기 명함으로 언제든지 연락 주십시오."




 미셀은 무언가에 홀린 듯 말을 더듬으며 다니엘이 건네주는 명함을 가방에 넣었다.

  "네.. 그.. 랬군요.. 그럼 언.. 제쯤 가능할까요?"

 다니엘은 날렵하고 매끄러운 턱선을 손가락으로 쓸면서 미셀을 지그시 바라보았다.

  "솔직히 정확한 일정은 말씀드리기 어렵습니다만.. 곧.."

 다니엘이 말을 하다 침을 삼켰다. 둘 사이에 오묘한 기운이 오고 가는 것을 느낀 그들은 할 말을 잃고 서로 바라보기만 했다. 미셀은 귀 아래로 흐르는 힘 있는 그의 목선을 따라 우직하니 벌어진 그의 어깨까지 시선을 따라갔다. 슈트 아래로 달라붙은 탄탄한 몸이 그의 매끄러운 피부를 고스란히 보여주는 듯했다. 미셀은 손 끝으로 그의 피부를 느껴보고 싶었다. 단단한 가슴을 손바닥으로 훑으며 셔츠를 찢어 버리고 싶었다. 미셀은 천장 위의 조명이 하나씩 꺼지고 그가 앉은 의자 아래로 요염하게 기어가는 상상을 했다. 그의 굵고 단단한 두 장딴지를 양 옆으로 밀어내고 힘 것 솟아있는 그것을 사랑스럽게 어루만져 주고 싶었다.

  "...... 미셀 씨..."

 그러자 밤꽃 냄새가 그녀의 코를 간지럽게 했다. 한 입 물자 입 안 가득 밤꽃 냄새가 5월 꽃내음만큼 향기롭게 퍼져갔다. 그녀의 무릎 아래로 떨어져 버린 그의 슈트 위로 금속 명찰이 보석처럼 반짝거리고 있었다.


  "미셀 씨.. 너무 급작스럽게 생긴 일이라.. "

  "뭔가에 홀렸나 봐요.. 미안해요. 다니엘..."

 



이전 08화 Gone
brunch book
$magazine.title

현재 글은 이 브런치북에
소속되어 있습니다.

작품 선택
키워드 선택 0 / 3 0
댓글여부
afliean
브런치는 최신 브라우저에 최적화 되어있습니다. IE chrome safari