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by 전작가 Oct 06. 2022

The Door

#15




 그의 집은 작지만 아늑했다. 우거진 숲으로 둘러싸인 목조 주택 면에는 하늘을 닮은 작은 호수가 수채화처럼 잔잔하게 펼쳐져 있었다. 특히 호숫가 길은 조용히 햇살을 받으며 산책하기 좋은 코스였다. 길을 따라 걸으며 서로의 예 추억을 회상하기도, 잔잔한 호수에 비친 산과 구름이 만들어낸 풍경을 눈에 담을 수 있었다. 실내는 80년대 빈티지 영국산 가구들이 클래식한 분위기를 자아냈고, 창가 옆 페브릭 소파에 앉아 지평선 아래로 붉게 물들어가는 노을을 바라보는 것만큼 아름다울 수가 없었다. 훈훈한 바람이 부는 여름이면 핑크 뮬리가 수 놓인 레이스 커튼 아래로 태양빛을 머금은 한 폭의 그림자 꽃이 마루 위로 흔들리며 피어났다. 긴 밤을 지나 동틀 무렵 무성한 나뭇잎 사이로 지저귀는  산새 소리가 아침을 깨울 때면, 흔들리는 침대 너머로 그들의 격렬한 신음소리가 숲을 울렸다. 미셀은 가족을 뒤로하고 그와 밀애를 즐겼던 은밀한 이곳을 아니 사랑할 수 없었다.


 그들은 이런저런 담소를 나누며 호숫가를 에돌아갔다.

  "미셀, 그 루카스라는 사람을 찾았어.. 전력회사 직원이었는데 감전사고로 한 달 정도 혼수상태였다가 우리처럼 기적적으로 깨어났데."

 자신들과 비슷한 현상을 겪은 사람이 생존해 있다는 다니엘말에 미셀의 두 눈이 휘둥그레졌다. 

  "다니엘.. 우리 같은 사람들있다니 놀라워.. 그들을 만나면 꼭 묻고 싶은 말이 있어..."

  "그게 뭔데?"

  "우리가 보고 느낀 것들.. 사실인지 상인지 확인해보고 싶어... 내가 본 그 형상이 진짜인지 아니면 무의식 속의 허황된 말인지 반드시 알아내고 싶어.."

  "미셀.. 난 당신을 믿어. 당신이 보았던 그 자에 대해서 더 말해 줄 수 있어?"

 

 다니엘의 '그 자'라는 말에 미셀의 푸른 동공이 흔들리기 시작했다. 그리고 그와 밀애를 즐겼던 아늑한 공간들이 차갑고 어두운 병실로 오마주 되어 갔다. 그녀는 무언가로부터 홀린 듯 벽을 마주하고 들릴 듯 말듯한 작은 소리로 속삭이기 시작했다. 다니엘은 그런 그녀의 가녀린 어깨를 잡고 흔들었다. 그럼에도 그녀는 아랑곳하지 않고 한 곳을 응시한 채로 누군가와 대화를 나누는 듯이 입술을 달싹였다.

  "미셀... 괜찮은 거야? 나 좀 봐봐"

  "다니엘.. 그날 밤 누군가 내 이름을 부르는 소리에 눈을 떴어. 난 당신인 줄 알았는데.."

 미셀은 신들린 사람처럼 멈추지 않고 거침없이 말을 토해냈다.

  "나를 깨운 것은.... 여러 개의 반짝이는 빛들이 별처럼 어두운 병실을 밝혔지. 허공 위로 분주히 떠돌아다니던 빛들이 한 곳으로 모이면서 그 형체갖춰갔어. 그 자는 사람이 아니었어..."

  "사람이 아니라면 도대체 뭐야?"

  "그 자는 자신을 '차원 설계자'라고 했어."

  "차원 설계자?.. 그게 뭐야?"

  "끝이 보이지 않는 방대한 우주는 무한한 에너지로 이루어져 있잖아. 그 에너지는 어디서 오는 거 같아?"

  "그건... 스스로 만들어 내지.."

  "모두들 그렇게 알고 있지만 사실 그렇지 않아. 우리가 모르는 우주의 그곳에 숨겨진 비밀이 있어."

  "숨겨진 비밀?..."

  "빛의 속도로 300억 광년 떨어진 곳에서 무한한 에너지가 발산해. 우주공간의 모든 에너지원은 모두 그곳에 시작하지. 차원 설계자는 그곳을 찾기 위해서 광활한 우주를 단번에 오갈 수 있는 차원을 건설하고 있어."

  "그곳에 가려는 이유는 뭐야?"

  "그건 직접 가 봐야 알겠지.. 그곳에 가면 해답을 얻을 수 있을지도 몰라.."

  "아... 그러니까 차원 설계자는 무한한 우주의 원동력인 에너지가 솟아나는 그곳을 찾기 위해 차원을 건설하고 있다는 거군."

 다니엘은 실마리를 찾았다는 듯이 고개를 끄덕였다.

  "차원 설계자는 우리를 "눈뜬자들"이라고 불렀어.

  "눈뜬자들?"

  "우리는 이미 죽은 사람일까? 아니면 다시 살아난 걸까?"

  "이렇게 멀쩡하게 살아있는데 무슨 소리를 하는 거야?"

  "나와 당신이 깨어났을 때 3시 14분이었고, 병원에서 기괴한 현상들을 겪었을 때도 3시 14분이었어. 병원 문을 나서고 나서야 알았지. 시간이 멈춰 버렸다는 것을.."

  "맞아.. 집까지 단 숨에 올 수 있었던 것도 신기했어. 잠시 잠들고 일어나니까 예전의 삶으로 돌아가 있었지. 도대체 어떻게 된 일인지... 루카스라는 사람도 같은 현상을 목격하고 상당히 혼란스러웠다고 했어. 의사가 처방해준 약을 먹으면서 안정을 취하고 있다고 했지만..."

 입술을 손으로 잡아 뜯는 미셀은 극도의 불안을 감추지 못했다.

  "다니엘. 우리는 아마도 이 세상 사람이 아닌 것 같아."

  "말도 안 돼. 미셀.."

  "다니엘. 우리가 살아야 할 곳은 더 이상 이곳이 아닐지도 몰라."

  "우리가 만약에 죽었다면 이곳이 천국이라도 된다는 거야?"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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