9월 3일 난맥상
몇 번을 재차 불러도 아프지 않은 이름들을 잊으며 나는 불행해진 걸까. 신용하지 않는 사람들의 이름을 잊지 못하며 나는 뭘 바랐던 걸까? 무엇이든 할 수 있으며 뭐든 다 잘 될 것이라는 믿음으로 버텨도 끄떡없는 불행이다. 아무것도 할 수 없다는, 뭐든 다 내 편이 아니게 된다는 자책을 환영하는 방황이다. 현실이라는 거대한 늪지, 칩거를 연민하며 파고든 진흙. 숨구멍 하나 뚫기도 버거웠던 나는 갯벌 깊숙이 맛조개의 활로를 가로막는 현무암이 아니면 무엇이란 말이냐? 위로 밀고 나가려고도 했지만 차가운 공기가 두려웠다. 아무도 꺼내주지 않는 심연에서 발버둥칠 때마다 아래가 열려 푹푹 꺼졌다. 종로3가에서 홀로 낮술을 마시던 가을의 어느 날, 괜히 친하지도 않은 사람에게 전화를 걸어 흰소리를 지껄이고 거리를 헤매다 찬란한 가을의 주홍빛에 미쳐 가로등에 고개를 쳐박고 오줌을 누던 날, 난맥상은 총체적이라 어느 하나 개선의 여지가 있는 구석이 없었다. 더 늦기 전에 순천만에 가 봐야 하는 걸까? 전국에 눈 내리는 날 순천만에 가자던 설아의 말을 혼자라도 지켜야 하는 걸까? 순천만은 갯벌이었던가? 그곳에 가서 빠지기라도 하면, 이 고독이 끝나게 될까.
마이 엔트 메리, 내 맘 같지 않던 그 시절
10월 1일 언필칭 고독
고독의 정곡을 찌르리라 결심한 지 며칠도 안 되어 일촉즉발이다. 추석 전후의 몇 가지 사건들이 부른 그야말로 갑작스런 충만감에 허우적댄다. 사건이라봐야 몇 마디 칭찬을 들은 게 전부이기는 하나, 그게 얼마나 특별한지 지금의 내가 되어보지 못하면 모를 것이다. 실은 얼마나 괴로웠던가, 이제 좀 덜 외로우려나. 펜촉을 지휘봉 삼아봐야 이란격석, 저 막강한 고독과의 지구전이 마침내 끝나리라는 희망이 엄습한다. 급하게 펜을 휘둘러 방패를 두르고 진지를 세운다. 희망의 복심을 없애버린다. 직진뿐을 모르던 문장들, 확신에 찬 손놀림, 백척간두에서 거머쥔 내 유일한 신념을 상기한다. 난 차라리 계속 쓴다는 것.
연민보다 검열이 낫다. 탈출 심리는 자기연민, 연민은 과신을 부르고 펜끝만이 진실하다. 오래간만의 칭찬을 아무렇지 않은 척 눙쳐놓고, 고작 일기 쓰는데 두 줄을 몇 번이나 긋는 거냐. 고독의 정곡이든, 한가운데든, 정가운데든. 대체 무슨 차이가 있단 말이냐. 과신이다. 글만은 그걸 알게 한다. 글은 연민 대신 검열을 택하며, 검열의 현장에서 난 진실만을 고해야 한다.
한 상황에 적합한 말은 단 하나라는 플로베르의 격언이 힘이 된다. 그 하나는 곧 선택이다. 내 선택이 정답이다. 선택은 정답이라 주장할 권리를 주며, 권리를 믿고 밀어붙이면 난장판 속에서 선택은 정답이 되어버린다. 전장에서 선택의 졸속행정을 비난하는 자는 속으로 도망칠 궁리뿐이다. 삼십육계를 신봉하는 후진 참견은 무시한다. 난 고독의 정곡을 고른다. 밀고 나간다. 후진은 없다. 되뇌고 또 되뇐다. 패배는 있되, 후퇴는 없다. 자신을 믿고 간다. 될 때든 안 될 때든 계속 간다. 어떤 생각이 들든 상관없다. 어떤 망설임도 결국 재친다. 뚫고, 베고, 오르며, 동분서주, 갈팡질팡, 전진만은 계속한다. 뛰지 못하면 걷고, 걷지 못하면 구른다. 박빙(薄氷)이면 미끄러져서라도 간다.
고독의 정곡은 보라. 일진일퇴 병가지상사, 난 차라리 계속 쓴다.
10월 10일 소실점
잔년 중에 한 달이 갔다. 이제 남은 건 열한 달. 미치겠는 날도, 아무렇지 않은 날도 있었다. 쌍욕이 나오는 날도, 공중도덕에 어긋나는 짓을 한 날도, 감정이 과하다 못해 걷잡을 수 없이 커져버린 날도 있었다. 그러던 어느 날, 아마 추석의 다음 날 즈음이었던 것 같은데, 뭐라도 해야겠다는 마음이 올라오기 시작했다. 오늘 내가 죽는다면 뭘 하고 싶을지에 따라 행동하라는 잡스의 말이 가정이 아니라는 생각이 퍼뜩 들었다. 생각은 강력해서 9월의 악마적인 기운을 누그러뜨렸다. 마치 발끝에 세상의 모든 가을 바람이 모인 것처럼, 난 단숨에 갯벌에서 빠져나왔다. 나오고 보니 내가 들어가 있던 곳은 갯벌이 아니라 축축한 나무뿌리 곁이었던 것 같았다. 매미 유충이 때를 맞아 햇빛을 향해 올라오니, 등딱지에는 "틈이 생기고, 볕과 바람이 쓰라리게 스며들었다.*" 나는 쇠락에 굴하지 않는 생성의 기쁨에 겨워 몸을 떨었다.
이제부터 연기를 배울 것이다. 어차피 조금이라도 더 살려면 운동을 해야 하고, 뭐, 죽기 전에 한 번은 해보고 싶었다. 일단 시작하고, 목표가 구체화되면 적어보겠다.
아, 가을이, 가을만이, 가을이야말로. 이 멋진 계절이, 온통 물든 주홍빛이, 국화꽃 핀 놀이공원, 은행잎, 버스의 차창, 아가씨의 블라우스 속을 비춘다. 햇빛이 던지는 구속 143km 슬라이더에 바람이 방망이를 휘두른다. 빗맞은 은행잎이 짝을 지어 하늘거린다. 몰래 빼낸 엄마 차를 갓길에 세우고 견인차를 부르며, 가슴은 목도리도마뱀처럼 부풀어 오른다.
장범준, 흔들리는 꽃들 속에서 네 샴푸 향이 느껴진 거야
추유황색, 여기는 정동길이고, 여행은 언제나 삶의 새로운 지평을 열어준다. 내 생애 마지막 가을을 절대 허투루 보내지 않겠다. 꼭, 반드시, 결단코, 기필코, 기어코 삶을 위한 무언가를 남길 것이다. 조조의 말을 빌리는 것이 도움이 된다. '영교아부추, 휴교추부아(寧敎我負秋 休敎秋負我)', 내가 가을을 저버릴지언정 가을이 나를 저버리게 하지는 않을 것이다. 제페토 할아버지에 이리 말했더니 가을이 꼭 운명처럼도 들린단다. 하여간 끼워맞추는 데 일가견이 있는 할아범이다.
*김종길, '문.'