마음이 일기예보처럼 바뀐다. 하루의 숱한 고락이 얼키고설키다 굳어버린다. 22시 30분이 고비다. 아무리 좋았던 하루도 그때 정신을 놓으면 빠개진다. 수면제를 먹는다. 효과는 명쾌하다. 잠들기 직전에서 잠든 직후 사이의 의식이 사라진다. 꿈속은 현실처럼 맑으나 결코 현실이 아니라는 것을 안다. 한참을 헤매다 전날 예측한 시간보다 10분 일찍 눈이 떠진다. 어떻게 잠들게 된 건지 기억해내려는데 머릿속이 컴컴하다. 한동안 무연했다가, 이내 한손으로 반대쪽 팔을 쥐어본다. 생생하고 물컹하다. 살아 있는 것이다. 새로운 하루가 시작된 것이다. 꿈이 아무리 무의식의 선두를 달리련들 죽음이 늘 저만치 앞서 있다. 천하무적, 죽음은 막강하고 나는 매일 죽었다가 암흑 속에서 다시 태어난다. 형의 발인을 기다리던 새벽, 나는 꿈에서 형을 만났다. 형은 불사조가 되어 찬란한 화염으로 날 껴안았다. 타들어가는 내 어깨에 형은 눈물을 떨궜다. 그 눈물이 어찌나 차가운지 나는 소스라치며 깨어났다. 한참을 앞만 쳐다보고 있노라니, 마치 아무 일도 없던 것처럼 형이 향초 잿더미에서 부활할 것 같았다. 그때 형은 내 안에 들어왔던 걸까? 그래서 보이지 않았을까? 요즘 난 형의 환생을 대신 겪고 있는 걸까? 하지만 그날 이후 나의 모든 꿈 속에서, 형은 나타나지 않았다. 꿈 속에서, 암흑은 탈의가 불가능한 전라(全裸)였다.
형이 너무나도 보고 싶다. 형의 존재를 가족 이외에는 주변 아무도 모른다는 것이 슬프다. 궁금한 사람이 없다고 해서 말하지 말아야 하는가? 설아조차 몰랐다. 얘기한들 형이 돌아오는 게 아니니까, 숨기는 게 낫다고 생각했다. 그땐 그랬다. 이제야 그게 마냥 나은 게 아니란 걸 알겠다. 내가 죽으면 주변인들은 나를 필사적으로 숨길 것이다. 알음알음, 아는 사람들끼리만 간혹 얘기하고, 새로 친해지는 사람들은 날 모르겠지. 은정이의 결혼식에 온 사람들의 태반은 은정이의 대학교 단짝 중에 사망자가 있다는 걸 모를 거다. 종성이의 사서 동료들은 나의 존재를 짐작조차 못할 것이다. 자연스러운 일이다. 언젠가는 잊히겠지. 행복할 수 있는 사람들은 그걸 유지할 수도 있어야 하니까. 결국 내 관계의 구성원 중 90%는 자기의 행복을 위해 날 감출 것이다. 그래야만 한다. 당연하다. 하지만, 잊힌다는 게 슬프다. 잔명이 12개월 가량뿐이 안 된다는 소견서를 받아든 오늘, 나는 슬프다.
놀랄 일이 아니라고 생각해왔다. 슬픔은 사랑의 뒷면에 불과하다. 단명을 타고난 우리 형제를 기르며 사랑만을 보여준 부모님을 위해서라도 나는 덤덤해야 한다. 형의 사망 당시 나이와 얼추 비슷하다. 예상하며 살아왔다. 그런데 속수무책, 정작 기한을 들으니 미치겠다. 병원 화장실에서 손을 씻으며 거울을 보는데 눈물이 났다. 1년 뒤면 형을 만나겠지? 꿈에서조차 볼 수 없던 형, 무덤가의 바람으로 자취를 대신하던 망자 김진성과 마침내 회우한다. 살아온 나날 비록 짧고 남길 것 적으나 마냥 한스러운 건 또 아니다. 나의 눈을 마주하며, 그 눈이 그간 담아온 세상을 마주하며, 눈물을 터뜨릴 생각은 없었다. 어린이용 세면대에서 코를 풀던 아이가 멀뚱히 날 쳐다봤다. 아이는 대머리였다. 녀석의 벙거지, 야윈 팔, 거기 덕지덕지 붙은 테이프 자국. 나는 정말이지 부끄러워 견딜 수가 없었다. 밖에서 우는 어머니를 안심시키고(그럴 수 없다는 걸 알지만) 도망치듯 도서관에 왔다.
의사는 조심스레 덧붙였다. 12개월로 예상하나 기적처럼 두 배를 더 살 수도 있다고. 끄덕였지만 기대는 없다. 기적이란 한 사람의 수명의 11%에 해당하는 횟수로 나타난다. 형은 유서에 그리 적었고 난 줄곧 동의했다. 내년에 난 스물일곱이다. 만 나이에 생일을 못 넘기면 더 적다. 즉 기적은 두 번 나타나 형의 주장과 일치하거나, 운좋게 세 번 나타나 확률을 올릴 것이다. 두 번의 기적은 이미 일어났다. 공교롭게도 내가 기적이라고밖에 해석하지 못한 그 두 번은 모두 설아와 관련됐다.
이쯤에서 부탁하건대, 다만 설아에게, 쓸 수 있는 기적의 카드를 다 써버린 내가 너의 사연에 응답할 수 없는 걸 언젠가는 이해해 주겠니? 나를 기억해 주겠니? 거기에 더해 묻건대, 내 몇 안 되는 독자들이여, 그동안 어떻게든 어디에든 내 이야기를 적어둬야 했던 마음을 이해해 줄 수 있을까? 나는 그림자의 빛바랜 어둠을 밟으며 걸어왔다. 그림자가 짙어지니 비로소 그것이 내 목숨이었는 줄을 알겠다. 어두워 미안하다.
오늘 나의 일기는 '엣지 오브 투모로우'의 톰 크루즈보다 내가 더 많이 소생했음을 자랑하려 쓴다. 그래봐야 웃는 사람은 아무도 없겠지만.
김동률, 동행
나의 어둠이 누군가의 빛이 되기를, 감각의 비망록이 경적을 울리기를, 모든 사랑이 설아에게 닿기를.
*"4. 무사히 돌아갈 것을 약속하며"는 "3. 그늘을 조용히"에서 이어집니다. 감사합니다.
3. 그늘을 조용히: https://brunch.co.kr/brunchbook/ineeduforsummer