아름다운 구속

망나니처럼 살다가

by 정현철

얼핏 보면 모범생처럼 보였을지도 모르는 학창 시절


하지만 저는 국민학교에서 중학교를 진학할 때 100점 만점의 시험을 치르고


중학교에서 고등학교에 진학할 때도 200점 만점의 시험을 치르고


그렇게 지친 상태에서 고등학교에서 동아리 활동을 시작했습니다.


영자신문편집부 PAGE와 댄스동아리 Zenith


댄스동아리 선배들은 저를 무척 좋아했습니다. 공부는 안 하고 맨날 춤만추는 것들...이라는 이야기를 듣다가


제가 동아리에 들어가면서 전교 30등 안에 드는 성적을 알고 더 이상 선생님들이 댄스동아리에 공부 얘기는 하지 않게 되었으니까요


하지만 저는 욕심이 지나쳤습니다. 고등학생이 무슨 생각이었는지 영자신문을 처음부터 마지막 인쇄까지 모두 해야 한다는 이상한 생각을 했습니다


그렇게 영자신문 편집부장이 되고 댄스동아리에서 핵심 멤버가 되면서 내신 성적은 자연스럽게 떨어지고


그나마 영어는 진심으로 공부해서 그런지 다행히 항상 1등급이 나오고 내신 영어도 흔들리지는 않았습니다


그렇게 400점 만점의 수능 시험을 2001년도에 치르고 2002년에 대학교에 입학해야 하는 상황에... 실제 수능 총점은 마지막 모의고사 점수보다 100점 정도 낮게 나왔습니다


다행인지 불행인지 전체적으로 다들 시험을 못 봐서, 제 수능 영어 성적은 그래도 상위 2% 이내였습니다


그렇게 성적에 맞춰서 지방 대학에 진학하느냐 재수를 하느냐 고민하다가


수능영어 점수와 면접만으로 지원 가능한 특별 전형으로 서울의 이름 없는 대학교에 입학했습니다


이만저만해서 군복무를 미군부대에서 카투사로 보내고 중등임용시험에서 몇 차례 낙방하고


서울의 한 대형 어학원 총무팀에서 첫 사회생활을 시작했습니다


이후 친구와 지인들의 조언과 도움으로 여러 차례 이직해서


현재는 외국계 공공기관 총무팀에서 운전을 주 업무로 하고 사무보조를 하고 있습니다


두 아이의 아빠가 되고 책임감이 생기고... 하기 싫다고 안 하는 그런 사람이 될 수가 없었습니다


중소기업에서 산업용 접착제를 팔면서 합법과 불법 사이의 애매한 업무들도 많이 처리했고


주한방글라데시 대사관에서 대포통장도 만들뻔하고


백수시절에 정수기 부품 조립하는 곳에서 손이 느리다고 잘리기도 하고


카카오톡 대리운전을 하면서 연예인 차량도 운전해 보고


중고차 수출을 하면서 각종 차량에 명함도 꽂아보고


내일 배움 카드로 지상직 아카데미 수강도 하고 겸사겸사 항공화물 터미널에서 아르바이트를 하다가 무기계약직도 되어보고


정말 재미있게 살았습니다


이제 그냥 평범하게 조용히 살고 싶습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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