요한 크리스토프 아놀드
요한 크리스토프 아놀드의 '아이들의 이름은 오늘입니다'를 통해 옛날 친구 생각도 나고 제가 가르쳤던 학생들 생각도 나고 희연이와 희재를 위해서 해줄 수 있는 게 무엇일까 다시 한번 고민하게 되었습니다.
저는 하반신이 마비된 목사님의 아들과 함께 대학교에서 공부했습니다. 사실 그 친구는 저와 동갑내기지만 재수를 해서 1년 늦게 입학했습니다. 함께 영어교육과 학생회에서 활동하며 친해졌습니다. 저는 산본에 살고 그 친구는 안산에 살아서 같이 4호선을 타고 대학을 다녔습니다. 지금은 개척교회 목사님이 된 그 친구가 떠올랐습니다.
그리고 제가 대학교 졸업 인증을 위해 봉사활동 시간만 채우려고 시작했다가 4년 정도 자원봉사를 했던 군포시 청소년쉼터 하나로도 생각났습니다. 북한에서 온 학생들, 부모님이 안 계신 학생들, 조폭의 자녀로 태어나서 보호시설에 있다가 온 학생들... 정말 다양한 학생들이 생활하고 검정고시를 준비했습니다.
또한 2007년 대학교 3학년 때, 미국 뉴저지 Y 캠프에서 코셔푸드 식재료 관리자의 보조요원으로 2달 동안 자원봉사를 했던 것도 생각났습니다. 그곳에서 세계 여러 국가에서 온 대학생 자원봉사자들을 만났습니다. 유대인들의 자녀들이 캠프장에서 생활했습니다. 다양한 외국계 대학생들이 그들의 강사이자 생활도우미였습니다. 2달 동안 그 당시 한화로 약 500만 원 정도의 비용이었지만 유대인 부모들은 그 캠프를 믿고 자녀들을 보냈습니다.
현재 재직 중인 회사에서 주변 동료들의 이야기를 들어보면 유치원생부터 여러 가지 학원을 보내고, 어떤 동료는 육아휴직을 사용해서 함께 해외경험을 쌓기도 하고, 자녀들을 자유롭게 자녀들이 원하는 것을 찾아가게끔 하는 강연을 듣고도 회사 차량 안에서 서로 대화하는 이야기를 들어보면 맞는 말이지만 한국 현실에서는 그렇게 하기 힘들다면서 학원을 보낸다고 했습니다.
돌아보면 제 자신도 맞벌이를 하는 부모님께서 집에서 게임을 할까 봐 비행청소년과 어울릴까 봐 학원에 보내셨습니다. 종합학원, 영어학원, 컴퓨터학원,... 게다가 저는 중학교 진학할 때도 시험을 보고, 고등학교 진학할 때도 시험을 보고, 대학교는 수능시험을 봤습니다. 스트레스, 긴장감, 불안한 미래, 손이 불편한 아버지, 여러 가지 원인으로 잘못된 길을 갈 뻔했지만, 다행히 교회 중고등부에서 활동하며 청소년 시절을 보냈습니다.
이만저만해서 대학 전공도 신학교 안에 있는 영어교육을 선택하게 되었고, 군대에서 2년을 영어를 사용하지 않으면 다시 초기화가 될 것이 두려워 카투사, 통역병, 어학장교 순으로 입대 계획을 세우고 운이 좋게 카투사로 효순이, 미선이 사건이 났던 파주 캠프 하우즈에서 군복무를 했습니다.
그곳에서 전국의 수재들을 많이 만났습니다. 카이스트, 포항공대, 서울대, 연세대, 고려대, 서강대, 밴쿠버 대학교, 과테말라 선교사 아들, 지금도 연락을 하며 지내는 선후임들의 모습을 보면 은행에서 근무하는 분들도 있고, 항공사에서 근무하는 분들도 있고, 대학교에서 교수님이 된 분들도 있고, 회계법인에서 근무하는 분들도 있고, 법조계에서 근무하는 분들도 있고 그렇습니다.
사실 처음에는 잘 풀리는 선임들, 후임들이 부러웠습니다. 그리고 그들의 유복한 집안 환경과 뛰어난 두뇌와 노력하는 모습이 대단하다고 느꼈습니다. 하지만 40여 년을 살아보니 그리고 현직장에서 정년퇴직을 하는 65세 선배님들을 보니 이제는 하루하루 행복하게 사는 것이 더 중요하는 생각이 들었습니다.
전쟁과 기근으로 고통받는 국가도 있고, 부정부패가 일상인 국가도 있고, 복지가 좋지만 세금을 많이 내야 하는 국가도 있고, 총기를 소지할 수 있어서 언제 어디서 무슨 봉변을 당할지 모르는 국가도 있고, 2025년 현재 한국에서 생활하는 것이 쉽지 않지만 그래도 대한민국에서 지내는 것이 행복하다는 것을 다시 인식하게 되었습니다.
희연이와 희재가 산울 배움 공동체에서 바르게 성장하고 더 밝은 아이들이 되어서 주변에 좋은 영향을 주고 본인들의 밥값을 하는 사람이 되었으면 좋겠습니다. 또한 저와 안해님도 함께 성장할 것으로 보입니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