Q. 지울 수 있는가?
A. 없다.
1.
그 날도 아파트에서 전단지를 돌리고 있었다. 유난히 다리가 무겁고 터질 듯 했다. 대학 조교 선생님에게 연락이 왔다. 전공 교수님의 부고 소식이었다. 나는 교수님의 수업을 듣지 않았다. 솔직히 말하면 누군지도 잘몰랐다. 조교샘께도 솔직히 말했다. 저는 교수님 수업도 못 들었다. 그리고 왜 저한테 연락하셨냐, 다른 사람에게 연락해라. 그렇게 끊었다. 그러면 안되는 것이다. 내가 당장 힘들다고 남에게 티를 내면 안되는 일이다. 게다가 부고 소식인데 그렇게 쌀쌀맞게 굴면 안되는 것이다. 나는 너무 힘든 나에게 빠져있어 그 사실을 몰랐다.
2.
간혹 중학생도 맡기도 했다. 생각나는 아이가 하나 있다. 여자애였고 공부하기를 무척이나 싫어했다. 심지어 집도 나가고 싶어하는 아이었다. 사춘기의 여자아이라 어려웠다. 아이는 예뻤고 어른이 되면 하고 싶은 일이 벌써 있었다. 이 아이가 나에게 부탁을 했다. 체육대회 하는데 조퇴를 하고 싶다. 아픈 척하며 선생님께 조퇴증을 받을 예정인데 선생님이 이모인척 전화 좀 받아줄 수 없겠냐고. 어른답게 단칼에 거절해야했는데, 끈덕지게 전화해오는 바람에 귀찮아서 어영부영 수락해줬다. 그렇게 사기를 치고 우린 시내로 나가 점심을 함께 먹었다. 그 후 아이의 부모님의 퇴회 의사를 밝혔고 우린 만날 수 없었다.
3.
한창 힘든 시절, 아이들에게도 영향을 주었다. 사소한 일로 짜증내고 조금이라도 마음에 들지 않으면 어른에게 쪼르르 달려가 고자질을 했다. 아이들이 더 혼날 수 있게 말이다. 집에 혼자 있거나 돌보는 손길이 많이 느껴지지 않으면 수업도 대충했다. 대충 아이 말을 들어주는 척하며 시간을 떼우기도 했다. 아이보다 더 아이같은 짓을 하고 말았다. 그리고 귀찮아했다. 아이들의 조잘거리는 목소리가, 엄마들의 상담시간이.
어떤 아이가 나한테 그랬다.
'선생님, 일 하기 싫죠?'
아이들은 꽤 정확하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