일곱 개의 날들
에스프레소 한 잔,
이어서 아메리카노 한 잔.
빈 속을 싸-하게 긁어 내리는 카페인과
달달한 것들로만 속을 채운 주말.
좋아해
너와 함께 먹었던 떡볶이
너와 함께 걸었던 한강
너와 함께 들렀던 코엑스
너와 함께 머물렀던 카페
이제 다 보내줄 수 있을 것 같다
안녕
자존심 상한다는 나의 말에 친구가 말했다.
"원래 마음 앞에서는 자존심이고 뭐고 없는 거니까 둘째 치고."
순간 정신이 아득해졌고,
하나의 생각이 며칠을 맴돌았다.
내가 만약 괜한 자존심을 부리지 않았더라면
나는 얼마나 많은 사람들과
인연을 이어올 수 있었을까.
나도 사랑이란 걸 해볼 수 있지 않았을까.
자존심 같은 거 내려놓고
조금 더 솔직한 내가 될 수 있을까.
긴 밤이었다.
두 시간이 스무 시간처럼
스무 해처럼 느껴진 긴 시간
잠들지 못하는 내가 슬펐고
그렇게 말하는 네가 미웠다.
잔인한 이 계절을 내가 혼자 이겨낼 수 있을까
두려워진 아침이었다.
울적해하는 날 위해 꽃 한 송이를 건네던 너
우리 동네로 가는 지하철 안에서 한강을 바라보며
언니의 출퇴근 뷰가 좋아 다행이라고 말하던 너
함께하지 못한 사람을 위해
우리의 만남은 비밀로 하자던 너
참 따뜻한 너
와인 한 잔에 이야기를 꺼내고
와인 한 잔에 너를 보내고
와인 한 잔에 새로운 마음을 담고
그렇게 한 병을 뚝딱
꽃이 지나간 자리를 녹음이 채운다.
이렇게 또 하나의 계절이.