brunch

You can make anything
by writing

C.S.Lewis

by 일훈이 Mar 31. 2017

열세번째, 훕훕베이글

사장님을 꼭 닮은 사랑스러운 베이글




빵집 : 훕훕베이글

위치 : 경기 광명시 시청로 124

메뉴 : 담백한 플레인 베이글, 통밀 베이글, 팥앙금이 품은 베이글, 치즈 가득 베이글, 찐한 초코 베이글, 한 달에 한 번 월간 베이글












아주 오래전, 샵인샵의 개념이 서서히 퍼져 나가던 시기. 유명한 크로와상 가게 한편에 베이글 전문점이 생겼다. 발음도 낯선 훕훕베이글. 베이글&크림치즈야 미국에서도 많이 먹었던 조합이고 프랜차이즈 카페에서도 판매하는 것이어서 익숙했지만, 부재료를 품은 베이글이라니.

나이프가 필요 없는 편리함에 한 번, 탱글탱글 옥수수와 팥알이 씹히는 베이글 부재료에 두 번, 귀여운 소녀 얼굴이 그려진 포장지와 와인 쇼핑백에서 영감을 받아 만들었다는 기다란 포장법에 세 번. 나는 훕훕베이글의 모든 것이 새롭고 놀라웠다.






한 번 베이글을 맛 본 후에는 그냥 훕훕베이글의 팬이 되었다. 기껏해야 블루베리, 어니언, 에브리띵 베이글 정도만 생각했던 내게 상상 이상의 라인업을 보여주었기 때문이다. 베이글의 단짝인 크림치즈를 품고 있어 평범해 보이지만, 빵에 색감을 넣어 특별함을 살린 녹차 베이글과 단호박 베이글. 호빵 맛이 나는 팥앙금 베이글과 호떡인 듯 아닌 듯, 고소한 흑임자 베이글. 말린 무화과가 통 크게 들어간 무화과 크림치즈 베이글도 맛있고, 고급진 발로나 초코가 듬뿍 든 딥초코 베이글과 치즈가 가득 든 치즈 타이거도 인기다. 특히 이 두 개는 마른 팬에 살짝 구우면 눈에 띄게 빠른 속도로 사라지는 걸 경험할 수 있기에 꼭! 집에서 먹어야 한다.







그뿐 만이 아니다. 지금처럼 꽃 피는 4월엔 벚꽃 베이글, 홍옥 쏟아지는 어느 가을날엔 사과 크랜베리 베이글, 찬바람 날 땐 포근한 고구마 베이글 등 특정 기간만 판매하는 베이글도 있었다. 동서양을 넘어 드는 조합부터 제철 식재료를 이용한 한정판 메뉴. 이러한 베이글의 변신은 시기를 놓치면 일 년을 기다려야 했기에 나는 열심히 달력을 체크했다. 다양한 재료를 고민하고 테스트를 거쳐 원하는 맛을 내는 과정이 쉽지 만은 않을 텐데, 훕훕베이글은 멈추지 않는다. 시즌 메뉴에 이어 최근에는 "월간 베이글"이라는 이름으로 매 달 새로운 베이글이 나오는데, 신기하게도 기존 메뉴와 겹치는 법이 없다.









다양한 메뉴 변화만큼 훕훕 베이글도 많은 변화를 거쳤다. 크로와상 가게의 샵인샵에서 시작해 작은 개인 카페의 샵인샵으로 이사 가더니 명동에도 잠시 입점했다가, 여의도에도 등장했다가, 결국 서울 밖 광명에 둥지를 틀었다. 지하철 노선 한 바퀴를 돌고 버스를 환승해야 겨우 갈 수 있는 쉽지 않은 거리. 너무 멀리 떠난 베이글 사장님이 야속하기도 했으나, 중고등학교가 근처에 있어 언제나 생기 넘치고 서로의 안부를 묻는 동네 사람들로 가득한 광명 매장을 보며 나의 원망은 사르르 녹아내렸다.








그중 가장 큰 변화는, 베이글 사장님의 변화일 것 같다. 퇴사하고 시작했다던 베이글 가게는 5년 차에 접어들었고 포장지 소녀를 쏙 닮았던 사장님은 가정을 꾸리시더니 한 아이의 엄마가 되었다. 태어났다는 소식을 들은 게 엊그제 같은데 훌쩍 자라 자기 얼굴만 한 플레인 베이글 하나를 다 먹는다는 사장님의 빵공주. 야무지게 빵을 먹는 아이의 사진을 보며 생각했다. 하나뿐인 딸에게 매일 하나씩 줄 수 있는 빵이라면 이보다 더 건강할 순 없을 거라고. 사장님은 이유식을 만들던 마음으로 매일매일 베이글을 구울 지도 모르겠다고.







'베이글 = 질기고 맛이 없다(무맛)'라는 인식을 깨고 베이글을 세상 밖으로 이끌어 준 훕훕베이글. 수많은 상황을 잘 이겨냈고 다음 달 새로운 도약을 준비하는, 작지만 강한 빵집을 응원한다.


그리고 어떤 변화가 찾아와도 베이글에 대한 애정과 건강한 음식에 대한 사장님의 마음은 변치 않을 걸 알기에, 다음 달 월간 베이글도 설레는 마음으로 기다려 본다 :)

















매거진의 이전글 열두번째, 망원동 빵집 그랭블레
브런치는 최신 브라우저에 최적화 되어있습니다. IE chrome safari