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by 일훈이 Mar 31. 2017

열네번째, 신수동 오헨

추운 겨울, 따뜻한 위로가 되어준 빵

빵집 : 오헨

위치 : 서울 마포구 독막로 215

메뉴 : 버터향 가득 크로와상, 고소함이 일품인 곡물 빠베, 수제 어니언 크림치즈와 매일 바뀌는 미니 패스츄리





그 날은 참 힘든 날이었다.

영하 10도를 밑도는 추운 날씨였고 마음은 그보다 더 추웠다.

나이를 먹을수록 나를 이용하려는 사람들이 많구나를 느꼈던 날이었다.





우울한 감정을 막기 위해 계획대로 움직이기로 했고, 버스 환승을 거쳐 모르는 동네에 입성했다. 지도 앱에 의지해 골목길을 통과해서야 겨우 만난 신수동 빵집 오헨. 수많은 빵집을 다니며 길 찾는 눈을 키워온 나에게도 조금 당황스러운 위치였다. 찾아낸 내가 기특하기까지 했으니 이만하면 첫 번째 목표는 달성한 것 같다.







인적 드문 휑한 길가에 위치한 하얀색 빵집. 간판이 없어 그냥 지나칠 뻔했으나, 고소한 빵 냄새가 나를 이끌었다. 문을 열고 들어가니 그곳은 또 다른 세계였다. 포근한 조명 아래 브라운과 화이트의 조합이 따스했고 직접 깎은 듯한 나무 선반은 갤러리를 연상케 했다. 빵을 올려놓은 접시며 테이블도 모두 직접 만든 듯 따스한 느낌이었는데, 주방에서 나오신 사장님을 보는 순간 주인과 꼭 닮은 공간이라 생각했다.






테이블 한 켠에 짐을 두는 사이 사장님이 물으셨다.

"오늘 커피 드셨어요? 여기까지 오시느라 많이 추우셨을 텐데 커피 한 잔 드릴게요."

아직 아무것도 사지 않아 죄송하기도 했고 이후 카페에 갈 예정이었던지라 괜찮다 말씀드렸더니,

"마침 방금 커피를 내렸는데 양이 많아서요. 한 잔 드시면서 몸 좀 녹이세요."라신다.

그렇게 내 손엔 커피잔이 쥐어졌고, 꽁꽁 언 몸이 녹자 사진 촬영이 가능한지 양해를 구했다.

"얼마든지요. 그런데 일단 이것 좀 드시고요."라며 이번에는 즉석에서 빵을 잘라 시식을 권하시는 사장님.


 




직접 빚은 듯한 기다란 접시에 한 조각 한 조각, 내가 먹는 속도에 맞춰 다양한 빵을 내어주시는데 나만을 위한 빵 플레이트를 대접받는 기분이었다. 오픈한 지 얼마 되지 않은 곳이고, 나는 오늘 처음 방문했는데. 오랜 단골인 양 대해 주시는 이런 다정함이라니.








오헨의 빵 역시 사장님처럼 다정한 맛이었다. 겉은 바삭 속은 촉촉한 하드 계열은 크랜베리와 호두, 달콤한 무화과, 고소한 곡물 등이 들어 씹는 맛이 좋았고, 짭쪼름해서 계속 들어갔다. 크로와상 역시 기름지지 않고 깔끔했다. 돌돌 잘 말린 자태는 단정했고 뭉친 곳 하나 없이 가벼운 식감이면서도 버터향이 풍부했다. 직접 만드신다는 어니언 크림치즈도 인상적이었다. 다른 곳과 달리 양파즙을 사용하지 않아 되직하고 양파가 풍부하게 들어 아삭한 식감의 수제 크림치즈.










먹을 곳이 없으니 금방 나오겠지라던 예상과 달리 나는 오헨에 꽤 오랜 시간 머물렀다. 잔잔한 음악과 따스함에 쉬이 발길이 떨어지지 않았고 맛있는 빵들 중 몇 가지를 고르느라 고민을 거듭했다. 서있었지만 충분히 쉬고 있는 듯한, 내가 가장 좋아하는 순간 중 하나.









오후 3시가 넘은 시각, 든든한 포만감을 느끼며 길을 나섰다. 시식으로 먹은 빵은 그 날의 첫끼였지만, 배보다 마음이 더 불러 더 먹지 않아도 충분했다.





오헨에서 받은 위로의 순간을 곱씹으며 다음 목적지로 향하는 발걸음은 참으로 가벼웠다. 그리고 딱딱하게 굳었던 마음 역시 다시 말랑말랑해짐을 느낄 수 있었다.



사람에게 받은 상처는 역시 사람이 치유할 수 있나 보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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