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by 일훈이 Jul 11. 2018

나이 먹은 신입사원 일기 - 퇴사 확정

끝이 정해졌다.


 사수에게 퇴사를 선언한 다음날.

 대리님께 말씀드릴 생각에 아침부터 몸이 배배 꼬였다.

 초조하거나 불안할 때 나오는 습관이었다.

 하지만 종일 일이 터져 면담이 지연되더니,

 결국 그다음 주 월요일이 되어서야 나는 대리님과 얼굴을 보고 대화를 나눌 수 있었다.

 생각보다 쿨한 대리님의 말투와 눈빛에 나오던 눈물이 쏙 들어갔지만

 그만큼 깔끔하게 마무리 지을 수 있었다.

 


 그리고 몇 시간 후, 지사장님께서 나를 부르셨다.

 나가는 날짜를 확정하는 최종 면담이었다.




 나의 윗선인 대리님께 대충 이야기를 들으신 듯했다.

 어떤 분야를 갈 것인지, 나가서 무엇을 할 것인지 물어보셨다.

 예상한 것보다 꽤나 자세하게 물어보셔서 순간 거짓을 말할까 하다가, 진실을 말했다.



 아직 준비된 것도 결정된 것도 아무것도 없다고.

 다만 마음이 이끄는 대로 가고 싶다고.



 지난 대리님과의 미팅에서 울컥하는 나의 모습이,

 무언가 변명을 하려는 듯했던 모습이 나는 마음에 들지 않았었던 걸까.

 최종 면담에서는 지사장님의 눈을 똑바로 마주 보고 차분하게 이야기했다.



 10분 남짓한 짧은 시간.

 나는 지사장님의 그런 눈빛을 처음 보았다.

 아쉬움과 섭섭함이 묻어나는 눈빛.

 (나중에 나의 얘기를 들은 아빠는 대다수의 리더가 그 상황에선 그렇게 행동할 거라고 말씀하셨지만...

  좋을 대로 해석하기로 했다.)



 아까워해 주셨다는 이야길 들은 적 있다.

 그래서 처음 정직원으로 전환하지 않겠다 결정했을 때

 이유도 여러 차례 물어보시고, 없던 티오를 늘려 동기와 나를 모두 뽑아 주신 것도 알고 있다.

 그 기대에 부응하지 못한 것 같아 죄송하지만 나는 지난 시간 동안 최선을 다했다.



 이야기 끝에 퇴사 일정은 2월 말일로 확정되었다.

 제대로 써 보지도 못했던 휴가 14일은 수당으로 나에게 돌아올 예정이었다.



 이 회사에서 몇 안 되는 이방인이자, 신입으로서 하고 싶은 말이 많았던 나는,

 처음이자 마지막으로 용기를 내었다.


 "나가기 전에 밥 사주세요"

 "난 밥은 안 사줘. 술을 사주지"

 "더 좋은데요??"


 지난 시간 동안 나는 지사장님이 너무너무 어려웠었는데

 마지막이 되어서야 처음으로 웃어 보일 수 있었다.

 그리고 회의실 문을 열고 나왔다.

 이젠 정말 돌이킬 수 없게 되었다.




 언제나 바빴고 힘든 시간이었지만 나의 지난 1년을 후회하지 않는다.

 앞으로 1년 후 지금의 선택을 후회하지도 않을 거다.


 시간이 흐른 자리엔 사람이 남고, 추억이 남고, (돈도 남고)

 무엇보다 내가 남는다는 것을 알았으니까.


 어제보다 조금 더 자란 내가.







 (그건 그렇고 퇴사라니!!!!! 너무 신나잖아!!!!)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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