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아침밥형 인간

내가 사랑하는 시간

by 정담아

‘일찍 일어나는 새가 벌레를 잡는다’는 말이 있다. 고리타분함이 묻어나는 속담이 소환된 건 아침형 인간의 부상 탓이었다. ‘부지런함’과 ‘성공’을 천편일률적인 시간 패턴에 넣어 강요하는 것에 대한 반감이 일었지만, 나는 주변에서 대표적인 아침형 인간으로 불렸다. 어쩌다 보니 출근 시간이 굉장히 이른 직장에 다니게 되었고, 먹고살기 위해서 하루를 일찍 시작해야 했다. 하지만 그것만이 이유는 아니었다. 나는 같은 직장을 다니는 동료들에 비해서도 상당히 일찍 일어나는 편이었는데, 그건 순전히 ‘밥’ 때문이었다.


어릴 때부터 먹는 것에 진심이었다. 살기 위해 먹는 게 아니라 먹기 위해 사는 쪽에 가깝고, 배가 고파서 먹는 게 아니라 음식 그 자체를 마주하기 위해 먹는 달까. 맛없는 것에 위장을 내어주는 걸 굉장히 불쾌해하며 가치 없는 맛에 지불하는 푼돈도 아깝게 여긴다. 무엇보다 중요한 것은 하루에 끼니를 꼭 챙겨 먹는 것이다. 가볍게 먹을지언정 결코 그냥 지나치는 법은 없다.


아침밥도 예외는 아니었다. 학창 시절엔 늦잠을 자는 바람에 머리 감을 시간이 없더라도 아침밥은 꼭 먹고 집을 나섰다. 아침밥을 거르고 등교를 하면, 오전 내내 시위를 해대는 위장 탓에 도저히 수업에 집중할 수 없었다. 일을 시작하면서 기상 시간을 앞당긴 건 그 때문이었다. 빈속으로 일을 할 수 없는 건 변함이 없었으나, 늦잠을 잤다고 해서 머리를 안 감거나 완전한 민낯으로 출근할 수 없다는 사실. 그래서 나는 이른바 꼭두새벽에 일어나기 시작했다.


새벽 3시 반에서 4시 정도에 눈을 떴다. 사방이 깜깜하고 고요했다. 잠들기 전에 봤던 어둠과는 분명 다른 느낌이었다. 눈을 감기 전의 어둠은 느슨하게 풀어헤쳐져 있었다면 눈을 떴을 때 맞이한 새벽의 시간은 좀 더 팽팽하게 당겨져 있었다. 너무 조여서 금방이라도 터져버릴 것 같은 날 선 긴장감은 없지만 늘어져 있던 시간 사이사이의 주름이 펴져 있는 느낌이랄까. 그 단단한 산뜻함이 마음에 들었다. 아직 익숙하지 않아 낯선 그 느낌도 좋았다. 소음과 빛마저 잠들어 있는 그 정적이, 그 어떤 이물도 허락하지 않은 순수한 침묵이 마음에 들었다. 묵직하되 무겁지 않은, 산뜻하되 가볍지 않은 고요를 영원히 붙잡아 두고 싶었다.


은은하게 깔린 어둠과 함께 간단하게 몸을 깨우고 나면, 향으로 정신을 깨웠다. 구수한 곡물, 새콤한 소스, 달큰한 채소까지 다양한 내음 중에서 내가 가장 사랑하는 건 단연 커피였다. 매일 아침 커피포트에 물을 받았다. 버튼을 누르고 원두를 갈았다. 드르륵드르륵- 손에 힘을 주는 만큼, 팔을 움직이는 만큼, 정직하게 소리가 났다. 중간중간 아예 끊겨 버리는 불규칙한 속도와 일정하지 않은 높낮이의 그 향기로운 소리가 좋았다. 하루 첫 노동이 절정으로 치달을 때쯤 주전자에서도 경쾌한 소리를 보냈다. 한낮의 사무실에서 끓어오르던 주전자가 내던 신경질적인 소음과는 다른 소리였다. 보글보글- 그 산뜻한 온기를 투박하게 갈린 원두에 흘려보내면 또르르 똑똑똑- 맑은 소리가 그윽하게 퍼졌다. 내 작은 세계를 감싸는 향기로운 소리가 좋았다. 입안에 퍼지는 달고 쓰고 시큼한 맛의 향연, 그 은은한 내음이 좋았다. 거기에 담백한 빵 하나를 곁들이면 완벽한 아침이 완성되었다.


이른 출근이 필수인 직장은 그만두었지만, 그 완벽한 아침은 그만둘 수 없었기에, 여전히 아침 일찍 눈을 뜬다. 물론 기상 시간이 뒤로 밀려나고, 일어난 뒤에 다시 잠 속으로 빠져들기도 하지만 여전히 어스름한 시간에 기지개를 켠다. 아직 세상이 움직이기 전 그 고요의 단단한 탄성이, 넘치지 않은 촉촉함이, 막연하지 않은 흐릿함이 좋다. 듬성듬성 번지는 어둠 위 희미하게 깔린 정적을 성기게 채우는 나만의 소란을 사랑한다.


나는 아침밥형 인간이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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