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투명인간이 되고 싶어

극내향인의 바람

by 정담아

‘이거 완전 너야.’

친구에게 카톡 메시지가 왔다. 무언가를 캡처한 사진 여러 장도 함께 도착했다. 인터넷을 돌아다는 글이었다. ‘전부 완전 넌데, 특히 이게 너’라며 친구가 콕 찍어준 사진을 제대로 들여다봤다.



Q. 조건 없이 아주 사소한 초능력 하나를 가질 수 있다면? (단, 타인에게 직접적으로 영향을 끼치는 능력은 불가)

A. 투명인간 되기. 나 진짜 투명인간이 되고 싶어. 어색한 사람 만나면 투명인간 되어서 인사 안 하고 지나가기 내 꿈.



‘아, 뭐야. 진짜 너무 난데?’

정말 그랬다. 할 수만 있다면, 투명인간이고 싶은 순간이 있다. 아니, 아주 많다.


그게 어느 곳이든 첫 모임 첫날이 딱 그런 순간이다. 누군가가 먼저 말을 걸어오지 않으면 입을 열지 않는다. 일단 대화가 시작되면 나도 모르게 마음을 확 열어젖히고 푼수가 되어버리지만 그 시작, 그러니까 빗장을 푸는 게 너무도 어렵다. 누군가가 그 문을 열어주지 않는 이상 좀처럼 열리지 않는다. 절대 먼저 문을 열지 않겠다고 다짐한 적은 없다. 그저 할 수 없을 뿐이다. 그냥 하면 되는 거 아니냐고? 그게 안 된다. 왜냐고? 한 마디로 설명할 수 없는 꽤 복합한 이야기다. 하지만 한 가지만은 분명하다. 낯선 존재와의 마주함이 주는 서걱거림을 매우 견디기 힘들다는 것. 물론 그걸 극복하지 못하는 삶 역시 녹록지 않다. 그럼에도 그럭저럭 살아온 인생이었다. 본격적으로 프리랜서의 삶을 시작하기 전까진.


프리랜서는 조직에 소속되어 있지 않다는 점에서 이전의 불안정성과는 다른 구석이 있었다. 그전까지는 업무에서 소통이 필요한 사람들은 대부분 같은 조직에 있는 익숙한 이들이었다. 하지만 프리랜서는 달랐다. 타인과 나를 연결을 해주던 조직이 사라지자 나는 그저 세상에 홀로, 덩그러니 놓였다. 그리고 스스로 낯선 사람들과 닿기 위해 노력해야 했다. 내가 먼저, 손을 내밀어야 했다. 막막했다. 심지어 나는 새로운 가게에 들어가는 것조차 힘들어하는 사람이다. 밖에서 힐끗 바라봤을 때 손님이 많거나 주인이 무심해 보이면 그제야 슬쩍 들어가고, 궁금한 게 있어도 웬만하면 삼킨다. 내게 주인이 다가오거나 말을 걸면 정말인지 투명인간이 되고 싶다. 대화를 시작하면 무언가를 반드시 사야 할 것만 같은 기분이 들고, 마음에 드는 게 없어 그냥 나오면 그곳에 두고 온 미안함이 하루 종일 나를 끌어당겼다.


내가 누군가에게 먼저 말을 건네는 순간이 있긴 했다. 정말 온전히 상대의 실수로 머리끝까지 분노가 차오르거나, 생존과 관련되는 일일 때. 프리랜서로 낯선 이에게 다가가 문을 두드리는 건 대개 생계와 직결되는 문제였다. 그래서 먼저 움직여만 했다.


제일 처음 직접적으로 당면한 과제는 북마켓에서 사람들과의 교류였다. 독자들과의 만남도, 다른 작가들과의 만남도 너무도 설레는 일이었지만, 그래서 더 조심스러웠다. '뭐라고 말을 해야 하지? 부담스러워하진 않을까?' 가만히 앉아서 미리 무슨 말을 해야 할지 머릿속으로 여러 번 쓰고 지웠다. 혹시라도 상대를 불편하게 한다면, 나를 구성하는 모든 세포들이 있는 힘껏 부끄러워할 테니까. 그리고 그 여운은 나와 며칠을 함께할 테니까. 상대가 내 실수를 인지하든 못하든, 기억하든 못하든 상관없었다. 내가 기억하니까. 내 안에 오래 머물며 문득문득 떠오를 테니까.


엉덩이를 들었다 놨다, 시선을 올렸다 내렸다를 반복하며 적당한 순간을 골랐다. ㄸ.. 오오, 또또오, 또오오오옥 똑, 똑- 아주 조심스럽게 낯선 이의 세계를 두드렸다. 제가 당신의 세계를 두드려도 될까요? 당신의 세계 한 구석에 저라는 존재를 한 움큼만, 들여놔도 될까요? 그리고... 그리고... 제가 당신의 세계를 궁금해해도 될까요?


이런 마음을 눌러 담을 말을 고르고 고른 뒤 조심스레 한 자씩, 한 단어씩, 한 문장씩 내려놓았다. 상대와 나 사이에 느슨한 연결고리가 생기길, 희미한 교집합이 그려지길 바라며. 나의 두드림이 언제나 상대에게 가 닿지는 않았다. 내가 차곡차곡 쌓은 말들은 우수수 바닥으로 떨어지기도 했고, 내가 보낸 마음이 허공에 산산이 흩어지기도 했다. 그럴 때면 누가 볼까 봐 재빨리 내가 떨어뜨린 조각들을 주워 담으며 생각했다. 에이, 괜히 말 걸었어.


이런 나를 훤히 들여다보듯 친구는 말했다. 가만히 있지 말고 적극적으로 말을 붙이라고. 제. 발. 마지못해 알았다고 대답을 했지만, 정말인지 생겨먹은 성격을 고치는 건 어려운 일이었다. 정말 큰 용기를 내어 말을 먼저 건넨다고 해도, 그래서 내가 던진 문장이 상대에게 탁- 걸렸다고 하더라도, 여전히 팽팽한 긴장감이 남아 있었다. 끝이 상대로 연결되는 선을 쥐고 느슨하지도, 끊어지지도 않게 적당한 텐션으로 잡아당겼다가 놓기를 반복해야 했다. 끊어지는 대화 사이에 흐르는 어색함, 마무리할 타이밍을 찾아내느라 아등아등하는 초조함, 아직 매끄럽게 다듬어지지 않은 관계의 까끌함 사이를 능숙하게 조절해야 했다. 하지만 나는 그저 그 모든 시간 속에서 투명인간이고 싶었다.


그럼에도 투명에서 벗어나야 했다. 존재를 드러내야 했다. 그 과정은 어렵고 고단했다. 어색한 침묵을 깨고, 무언가를 던져야 했다. 대답이 돌아오기까지 걸리는 시간의 초조를 견뎌야 했으며, 오랫동안 비어 있는 마침표의 자리에 쉼표라도 찍기 위해 종종거려야 했다. 어색함 때문에 횡설수설했던 나를 인지하고 꼭꼭 숨어버리고 싶을 때도 있었다. 그런 수고를 견뎌야겠다고 마음먹은 건 단지 생계 때문만은 아니었다. 아주 가끔 낯선 이와 마음이 포개지는 순간에 대한 기대와 기다림 때문이다. 그 찰나에 폭발하는 환희와, 따스한 빛이 흩뿌린 무수한 반짝임을 사랑하기 때문이다. 그래서, 용기를 내기로 했다. 낯선 이에게 나를 드러내기로 했다. 투명인간은 누군가에게 닿을 수 없으니까.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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