공정보다는 친절에 가까운 사람이고 싶다.
공정한 세상을 만들고 싶었다. 대학 졸업 후 처음 아이들 앞에서 섰을 때 홀로 다짐했다. 너희들이 내 나이가 됐을 때, 꼭 더 좋은 세상을 만나게 해 주겠다고. 덧없는 약속이었다.
교직을 들락거리며 수많은 부정의를 마주했다. 면접에서 대놓고 남자 친구의 유무와 부모님의 직업, 정치적 지향을 묻는 무례함은 기본, ‘사회적 약자를 도우면 안 된다’는 헛소리부터 ‘가난한 집에서 태어나 열심히 공부해서 좋은 대학을 간 사람들이 위험하다’는 몰상식한 발언까지 서슴없이 쏟아냈다. 그 모든 순간, 나는 그런 불의에 대항하기보다는 나를 고쳤다. 이력서와 자소서에서 농활과 과학생회, 공부방 활동을 지웠다. 그것들이 왜 문제가 되는지 따져 묻고 싶었고, 편협하고 무식한 그들의 생각을 부숴주고 싶었지만, 그럴 수 없었다. 나는 일할 곳이 간절한 구직자였으니까.
어렵게 구한 일자리에서도 나는 매 순간 분노를 삼켰다. 시간강사인 내게 부당한 업무를 떠넘기면서 ‘학생을 위한다’는 명분을 들이대는 그들의 문장에서 아이들은 그저 들러리일 뿐이라는 걸 빤히 알면서도, 강사 반에 배정됐다는 이유만으로 불이익을 받을 아이들 때문에 어쩔 수 없이 내 시간과 에너지를 무료로 내어줬다. 그 뒤 얻게 된 기간제 자리는 덜 억울했지만, 억울하지 않은 건 아니었다. 모든 비정규직이 그렇듯 정규직이라는 미끼를 던지며 부당함을 감내할 것을 요구했다. 화가 났다. 일을 더 많이 해서가 아니라, ‘그런 이유’로 나를 부려먹는다는 게. 무엇보다 견딜 수 없는 건, 그곳이 학교라는 것과 내 위치가 달라졌다는 사실이었다.
학생일 때는 그저 목격자의 입장으로 불의를 마음껏 비난할 수 있었지만, 이제는 그럴 수 없었다. 나는 어른이었고, 심지어 그 조직에 몸담고 있는 어른이었다. 거지 같은 상황을 침묵하는 건 분명 큰 잘못이었다. 하지만 조직 최하위에 위치한 내가 무슨 말을 하면 그저 ‘성격 나쁜 애’라는 낙인만 찍힐 뿐이었다. 억울했다. 그런 환경 속에서 내가 할 수 있는 건 그저 적당한 타협선을 찾는 것이었다. 나는 그들이 원하는 업무성과를 냈지만 내가 하고 싶은 활동들을 했다. 커리어를 쌓아 다른 곳으로 갈 생각이었다. 내 능력을 인정해주는 곳, 내 가치를 알아봐 주는 곳으로.
물론 실패했다. 서류 전형과 필기시험은 쉽게 통과했지만 그다음부터가 어려웠다. 몇 번을 미끄러지고 나서야 어렴풋이 깨달았다. 나는 그들만의 리그에 멋모르고 순진하게 기웃대고 있는 어리석은 이방인이란 사실을. 어쩌면 나는 그들이 불편해하는 사람일지도 몰랐다. 그들이 원하는 건 유능한 교사가 아니라 충성스러운 직원일지도 몰랐다. 나는 정교사가 되기를 포기했다. 아니, 포기라는 말이 너무 기분 나빠서 선택하지 않기로 했다, 고 말했다.
그럼에도 학교를 떠나지 않았던 건 딱히 할 일이 없어서이기도 했고, 교직에 여전히 흥미가 있었기 때문이었다. 하지만 아이들에게 ‘행동하는 사람’이나 ‘나와 타인에게 예의 있는 사람’이 되라고 할 때마다 자괴감이 들었다. 정작 나는 그렇게 하지도 못하면서 아이들에게 그런 사람이 되어야 한다고, 나와 타인을, 사회를 돌보는 사람이 되어야 한다고 말할 때마다 부끄러웠다. 아이들에게 하는 말은 정말 전부 진심인데, 그 진심을 배신하며 살아가는 내가 너무 부끄러웠다. 한없이 비겁한 사람인데 아이들이 나를 정의로운 사람으로 볼까 봐 걱정이 됐다. 그렇다고 비겁한 사람이라는 걸 들키고 싶지도 않았다. 나는 그들에게 세상의 절망과 희망을 모두 보여주고 싶었지만 나의 모순을 보여주고 싶지 않은, 비겁한 사람이었다. 교직을 좋아하지만 교사에 만족하지 못하는 이상한 사람이라는 것도 말하고 싶지 않았다. 너희들의 성장에 보람만 느끼기엔 내 성장과 표현 욕구가 더 중요한 인간이라는 것도 꺼내 보이고 싶지 않았다. 하지만 이 모든 마음을 숨기는 게 점점 버거워졌다. 그래서 일을 그만두었다.
일을 그만두고 종종 그런 생각이 들었다. 그저 도망친 건 아닐까. 말단의 꼬리가 아무 힘이 없어도 아이들을 직접 마주하는 사람인데, 작은 변화를 이끌어낼 수 있는 자리가 아니었을까. 괜히 자신 없어 도망친 주제에 번지르르한 변명만 늘어놓은 건 아닐까. 그런데 얼마 전, 모르는 번호로 문자가 왔다. 아니, 문자라고 하기엔 긴 편지 한 통이 왔다.
내 수업을 들었지만 우리 반 학생은 아니었고, 친분이 있지도 않던 아이었다. 레포트를 쓰다 문득 내 생각이 났다고 했다. 처음엔 이상을 좇는 내 모습이 인상적이었고, 수업을 진행하고 아이들을 지도할 때도 그 기준이 적용되어 조금은 무서웠다고 했다. 하지만 제 손에 쥐어진 예상치 못한 결과물을 보며 뿌듯했다고 했다. 그러면서 조금은 독특한 색을 가진 내가 왜 교사를 선택했는지 의문이라고 했다. 다른 일을 한다면 사회를 바꾸는 사람이 되지 않았을까, 그런 생각을 했다고. 하지만 내가 교사라서 자기를 비롯한 많은 아이들이 참 좋았다고, 했다.
왈칵 눈물이 났다. 나 잘 살았구나, 싶어서. 그 아이가 가진 나에 대한 깊은 오해를 그대로 간직하고 싶었다. 그 아이의 말처럼 나는 세상을 바꾸는 사람이 되고 싶었다. 하지만 세상은커녕 고작 내 세계 하나 바꾸지 못하는 형편없는 어른이 되었다. 그래서 자꾸만 내 나이가 부끄러워졌다. 이 나이 먹도록 나는 무엇을 했나, 아이들에게 이딴 세상을 물려줄 때까지 난 무얼 했던 걸까, 싶어서. 그런데 서툰 문장 속에 담긴 그 아이의 진심이 내 마음에 살짝 내려앉았다. 그 위로가 조금씩 녹아내려 마음에 얕고 긴 파장을 일으켰다. 지난 시간 속에 내가 잘 해왔고, 앞으로도 잘해나갈지도 모른다는 생각이 그 사이를 일렁였다.
친절한 사람이 되고 싶다. 공정하지 않은 이 세상은 쓰레기라고 외면하고 분노하기보다는 그런 세상에 한 줌의 따스함을 던질 수 있는 사람이고 싶다. 뾰족하게 날 선 누군가의 가시를 단단하게 안아줄 수 있는 존재이고 싶다. 그 아이 기억 속 나는, 어쩌면 그런 사람이 될 수도 있지 않을까, 라는 생각이 들었다. 그 기분 좋은 착각을, 오랫동안 꼭 쥐고 싶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