조금 특별한 일상행 열차

스페인에서 지하철 타기

by 정담아

여행을 가면 선호하는 교통수단은 도보와 대중교통이다. 장롱면허를 소지한 탓도 있지만 기동력 때문이기도 하다. 훨씬 속도가 빠른 차에 비해 도보나 대중교통이 기동력이 빠른 게 말이 되느냐고? 된다. 도보로 다니면 차로는 접근하기 어려운 곳까지 다가갈 수도 있고, 차의 속도로는 절대 볼 수 없는 장면들을 마주할 수 있으니까. 대중교통도 마찬가지다. 좁은 차 안에서 만날 수 없던 다양한 사람들을, 그들의 일상을 엿볼 수 있다. 자가용으로는 절대 도달할 수 없는 이런 매력들 때문에 어느 도시에 가든 버스나 지하철을 타보려고 한다. 다만, 그러기엔 어떤 교통수단으로도 뛰어넘을 수 없는 장벽이 하나 있다. 낯가림. 처음 보는 누군가에게 질문하는 게 너무도 어렵다. 전혀 다른 시스템에 대해서 숙지하지 못한 주제에도 말이다.


낯선 이에게 도움을 구하지 않고 혼자 힘으로 해보겠다는 일념으로 앞서 여행한 사람들이 남긴 후기들을 열심히 찾아보았다. 그들의 움직임을 따라 지하철 티켓을 구매하고 드디어 지하철로 향했다. 옅은 긴장감이 심장을 두드렸다. 두근두근. 지하철 개폐구에 티켓을 넣으니 투명한 문이 양옆으로 벌어졌다. 친구가 먼저 그 사이를 빠르게 통과했다. 그가 사라진 공간에 지하철 티켓이 튀어 올라왔다. 개폐구를 통과한 뒤에 티켓을 받아 드는 우리나라와 달리, 그곳은 통과하기 전에 튀어나오는 티켓을 챙겨야 했다. 우리는 다회용 티켓을 공유하기로 했기에, 앞서 입구를 통과한 친구가 남긴 티켓을 받아 들고 기계에 다시 한번 넣었다. 경쾌하게 튀어 오르는 작은 조각을 가볍게 낚아챘다. 가뿐한 걸음으로 지하철을 향해 내려갔다.


새로운 세계로 발을 들여놓은 우리는 주변을 살폈다. 낯선 곳에서 유일하게 익숙한 존재인 서로를 향해 시선을 떼지 않은 채로. 잠시 후 드디어 지하철이 도착했다. 조금 더 내밀한 곳에 내딛는 걸음엔 차분한 설렘이 찍혔다. 무심히 앉은 사람들이 보였다. 그 순간 몽글몽글 피어오르던 막연한 설렘에 살며시 금이 갔고, 그 틈 사이로 현실이 보였다. 우리의 일상 너머인 그곳은 그들의 일상이었다. 그 보통의 풍경이, 날것의 표정이 좋았다. 물론 그마저도 내 일과에서 마주하는 생것의 느낌은 아니었다. 이미 내 안에 잔뜩 피어오른 설렘의 필터가, 지치고 지루한 색감을 옅고 여린 감성톤으로 바꾸어 놓았으니까. 단조롭고 밋밋한 장면마저 단정하고 깔끔한 이야기로 만들어 버리는 이국의 지하철에서 우린 다른 그림 찾기를 시작했다.


스페인 지하철과 우리나라 지하철의 가장 큰 차이점 중 하나는 바로 문이었다. 자동으로 문이 열리고 닫히는 우리와 달리 스페인은 문을 수동으로 열어야 했다. 습관이란 게 참 무서운지라 분명히 알고 있음에도 막상 지하철 문 앞에 아무 생각 없이 서 있는 우리를 발견했다. 한국인 중에서도 급한 축에 속하는 성미 탓에 일찌감치 문 앞에 자리를 잡고 있던 나는, 문을 열지 않아 다른 사람들을 기다리게 했다. 민폐를 범한 스스로를 발견하고 화들짝 놀란 우리는 그제야 재빨리 문을 열곤 했다.


선명하게 남은 부끄러움 때문에 한동안 지하철 문과 멀리 떨어져 있었고, 웬만하면 누군가의 뒤에 섰다. 그러기를 몇 번 반복한 뒤에야 겨우 문 제일 앞에 슬며시 섰다. 언제쯤 누를까 고민하며 상상 속에서 수차례 버튼 위로 손을 가져가 보기를 반복하다 드디어 내 손으로 문을 열었을 때, 속으로 기쁨의 환호성을 내질렀다. 야호! 그렇게 나는 사소한 성취 하나로 다른 사회에 녹아들었다는 묘한 성취감과 뿌듯함을 얻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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