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그 탑에서 왜 내려 오셨어요?"
누군가 내게 물었다. 왜 그 탑에서 내려왔느냐고. <꽃들에게 희망을>이라는 책에서 나오는 그 탑 말이다.
"저는 내려온 게 아니라 떨어진 건데요."
조심스러운 질문에 장난스레 입을 열었다. 최대한 가벼워 보이고 싶었지만, 이제 그런 노력 없이도 가볍게 던질 수 있는 말이라고 생각했다. 그런데 아니었던 것 같다. 여전히 나는 가벼워 보이고 싶었고, 가벼워지고 싶은 것일지도 모른다는 생각이 들었다. 두서없이 헝클어진 대답 내뱉은 뒤에도 그 질문이 머릿속을 맴돌았다.
나는 왜 그곳을 떠나온 걸까.
떠나온 게 아니라고 생각했다. 내 의지로 내가 걷던 길을 벗어난 게 아니라 그 탑에서 떨어진 낙오자에 가까웠으니까. 물론 아주 어렸을 때, 대입을 앞둔 고3 수험생 시절엔 두 가지 길 앞에서 고민했다. 성공하는 삶과 훌륭한 삶 중에 어떤 쪽을 선택할 것인가. 두 개가 같이 갈 수 없다는 걸 알아챌 만큼 영리했지만, 그걸 선택할 수 있다고 착각할 만큼 어리석기도 했던 시절이었다. 그리고 그 어려운 선택은 '대입'이라는 커다란 목표로 손쉽게 가릴 수 있는 편리한 시기이기도 했다.
개천의 용 특유의 오만함이 있었다. 스스로, 이렇게까지 했다. 하면 되지, 왜 안 돼? 열심히 안 해서 그런 거지. 금수저가 부럽긴 했지만 은근히 어깨가 펴지는 면도 있었다. 안락한 온실을 우습게 볼 수 있을 만큼의 강단이, 내게 있다고 착각했다. 그 착각이 와르르 무너지는 순간이 찾아왔다. 어디서부터 잘못된 건지 알 수 없었다. 결국엔 내가 선택했지만 처음부터 내가 꿈꾸지 않았던 선택지에서 미끄러지는 것도 자존심이 상했다. 잔뜩 쪼그라들었던 자아는 여기저기서 연거푸 허우적거리게 만들었다. 그리고 주저앉아버렸다. 아무런 힘도 낼 수 없었다.
아빠는 수험생활을 하는 내게 '시험 합격하는 게 어렵냐'라고 물었다. 그러게, 나도 그게 어려운 일인지 몰랐다. 어영부영 시험을 봤더니 나쁘지 않았고, 그 점수를 유지하기 위해서 공부를 했다. 노력을 안 했다고 할 수는 없지만 그래도 노력에 비해 결과가 좋은 편이었다. 그나마 특기라고 내세울 만한 게 시험 잘 보는 거였는데, 시험조차 못 보는 사람이 되었다. 탄탄히 쌓아 올린 성공 경험을 다 까먹고 실패 경험이 더 높아질 때쯤 깨달았다. 해도 안 되는, 어찌할 수 없는 순간이 있다는 걸.
그럼에도 살아야 했기에, 어딘가에 엉덩이를 들이밀었다. 겨우 자리 잡은 곳은 최선의 자리는 아니었다. 비정규직이란 꼬리표가 달린 자리. 그 위태로운 자리를 지켜내느라 고군분투했다. 신기한 건 그러는 동안 잃었던 자신감이 조금씩 차올랐다는 사실. 사회에 내 '자리'가 있다는 게 어떤 힘을 준다는 걸 온몸으로 느꼈다. 내가 능력을 펼쳐 보일 수 있는 '자리'의 소중함도. 나는 번듯한 '자리'를 원했다. 떨어졌던 탑에 다시 몸을 들이밀었다. 또다시 밟고 밟히면서 떨어지지 않기 위해 고군분투했다. 그런데 이상했다. 아슬아슬하게 견뎌내는 내가 자랑스럽지 않았다. 밟히는 것도, 밟는 것도 잘 되지 않았다. 신물이 났다. 그리고 자꾸 묻게 됐다.
이게 맞는 걸까.
질문에 답을 찾지 못한 채 또다시 굴러 떨어졌다, 고 생각했다. 그 질문을 마주하기 전까지. 내 앞에 떨어진 질문이 잊고 있던 물음을 건져 올렸다. 이렇게 사는 게 맞는 걸까. 여전히 모르겠다. 나는 도망친 걸까. 아직도 헷갈린다. 다른 길을 선택할 수도 있었을까. 그럴지도 모른다. 계속 시험공부를 했든, 번듯한 '자리'를 두드렸든 그런 선택을 할 수도 있었을지 모른다. 어쨌든 나는 깨진 자신감을 다시 엮고 있던 중이었고, 여기저기 기워낸 그 마음으로 뭐든 다시 시작할 수 있었을지 모른다. 어쩌면 나는, 떨어진 게 아니라 뛰어내린 것일지도 모른다는 생각이, 처음으로 들었다.
지금까지 줄곧 떨어졌다고 생각했다. 그런데 어쩌면 나는 '선택'한 것일지도 모른다. 이후에 조금 경쟁률이 떨어졌다는 공기업 시험에 응시할 수도 있었고, 노무사 같은 시험을 준비했을 수도 있다. 그럼에도 뒷걸음질 친 거라고, 어차피 발 붙일 수 없는 일이었다고 생각했다. 잔뜩 겁에 질려 이것도 저것도 못하다 굴러 떨어져 버렸다고, 그 탑에서 낙오했다고 여겼다. 완전히 틀린 건 아니었다. 나는 더 이상 시험을 보며 미래를 위해 현재를 갉아먹고 싶지 않았다. 그러니 어쩌면 도피가 아니라 다른 선택이지 않았을까. 나는 미래를 위한 투자보다 현재에 충실한 삶을 선택했다.
그리고 교직을 벗어났다.(물론 여전히 돈을 벌기 위해서 사교육을 서성이기도 하지만) 가르치는 게 좋았지만 조금 무서웠다. 내가 떨어져 버린 그 탑으로 아이들을 몰아붙이는 내가. 세상이 그런 거고, 그런 세상에 나갈 아이들에게 미리 대비를 시키는 게 학교의 몫이라고 되뇌어도 마음이 까끌거렸다. 아무리 그렇다 해도 학교는 그러면 안 되는 곳 아닌가. 세상이 쓰레기투성이어도 쓰레기 더미를 아름다운 동산으로 만들기 위해서, 그런 미래를 위해서 교육은 달라야 하지 않을까. 현실에 종종거리기보다 저 먼 내일을 그려야 하는 게 아닐까. 그런데 내겐 아무런 힘이 없었다. 그래서 또 떨어져 버렸다. 뚝. 아니, 다이빙을 했다. 풍덩.
1등이 아니면 성에 차지 않았다. 1등은 당연한 것이라 생각했다. 1등이 크게 어려운 것도 아니라고 생각했다. 2이라는 숫자는 멍청해 보였다. 그래서 1을 향해 밟히고 밟았다. 주변이 아닌 중심에서 버티기 위해 고군분투했다. 여전히 나는 1이 좋다. 2도 3도 아닌 1. 다만, 넘버 원이 아니라 온리 원을 원한다. 누군가를 밟고 위로 올라가기보다 누군가와 손을 잡고 나란히 나란히, 둥글게 둥글게 걷고 싶다.
그렇게 살 수도 있다는 사실을, 너무 늦게 알았다는 게, 조금 늦은 대답이 될 수 있을까.