유정과 준영
> 쌤, 괜찮아? 학교는 알아보고 있어?
서영이었다. 직장생활에서 한 줄기의 빛과 같았던 서영. 앞자리에 앉은 서영은 고개를 삐쭉 들어 올리면 금세 눈이 마주쳤다. 가끔 간식을 서로 주고받기도 했고 퇴근 후 서울의 맛집이나 전시장 같은 곳을 찾아가기도 했다. 그러니까 서영은 직장 동료이자 서울에 사는 친구이기도 했다. 그곳을 나온 이후로 먼저 연락을 하지는 않았지만 간간이 메시지를 주고받았다. 항상 먼저 메시지를 전해오는 쪽은 서영이었고, 나는 마지못한 답을 아주 느지막이 보냈다. 떠나온 그곳이 어떻게 돌아가는지 궁금하기도 했고, 알고 싶지 않았다. 그 소식을 전해주는 서영이 마냥 달가운 존재는 아니었다. 서영과의 시간이 소중했고 그의 염려도 알았지만, 아니 알았기에 마음은 더 복잡했다. 괜찮다는 건 나의 안녕을 묻는 걸까. 안녕하길 바라는 마음일까. 잠시 고민하다 답을 적었다.
> 응. 새 학교 나가고 있어.
학교에 '나가고 있다'기 보다는 '열고 있다'는 표현에 가까울지도 몰랐다. 지난 주부터 준영이 매주 두 번, 두 시간씩 우리 집으로 오고 있으니까.
“혹시… 개인 과외 좀 부탁드려도 될까요?”
프로그램이 끝나고 나서도 한참을 서성이더니 사람들이 흩어지고 난 후에야 다가온 유정이 꺼낸 말이었다. 아무래도 중학교에 있었으면 애들 다루는 법이나 학습 방법을 잘 알고 있지 않느냐며, 국어 수업을 부탁했다. 책도 같이 읽고 좀 쉬운 신문 기사도 보고 글도 쓰면서 문해력과 자기표현 능력을 키우면 좋겠다고도 덧붙였다. 글쎄. 초등학생에 대해서 아는 건 없었지만 적어도 준영이 필요한 건 그런 개인 과외가 아니라 친구라는 것쯤은 알 수 있었다. 준영은 좀처럼 입을 여는 법이 없었고 움직임이 활발한 것도 아니었다. 그저 엄마 유정 옆에 조용히 앉아 책상 위를 응시하다 아주 가끔씩만 고개를 들었다. 그런 준영에게 필요한 건 사회성이었다.
“저희 애는 제가 제일 잘 알아요. 우리 준영이가 어떤 앤 줄 아세요?”
갑자기 유정의 목소리가 높아졌다. 그가 제시한 수업료와 앞으로 학교로 돌아가지 못했을 때 수익창출 방안을 고려하면 준영을 맡는 것도 나쁘지 않은 선택이었다. 초등학생을 대상으로 하는 문해력이나 논술 수업은 꽤 수요가 높은 데다 서울이 아닌 이런 지역이라면 공급이 별로 없을 테니까. 그럼에도 준영을 위해서 욕망을 보류한 내 진심 앞에 뾰족하게 반응한 유정이 조금 괘씸했다.
마음이 조금 풀어진 건 혜린이 전한 말을 듣고 나서였다. 준영은 언어 영재였다고 했다. 첫돌이 되기도 전에 알파벳을 다 읽고 영단어도 읽어냈다. 살아오면서 단 한 번도 평범함을 넘어서지 못했던 유정과 남편은 그런 준영이 신통하고 신기했다. 어떻게 해야 할지 몰라 이것저것 다 시켰다. 피아노, 태권도, 축구, 영어, 창의수학, 문해력 독서 논술 등등. 그런데 어느 날 준영이 정신을 잃고 쓰러졌다.
구겨진 종이 위에 적혔던 삐뚤빼뚤한 글씨가 떠올랐다. 투이의 사진을 보고 문장을 적었던 날이었다. 준영은 읽지도, 쓰지도 않았다. 사람들 앞에서는. 하지만 준영은 갈라진 자신의 마음을 휘갈기고 버렸다. 바닥에 뒹구는 구겨진 종이를 펼쳤다. 깨지다, 상처, 갈라지다... 같은 단어들이 엑스 표시 아래 눌려 쓰여있었고, 헝클어진 실타래처럼 사정없이 그려진 동그라미에 깔린 글자는 괜찮냐고 묻는 것만 같았다. 괜찮아? 괜찮니? 괜찮냐? 괜찮을까? 괜찮아.... 어줍지 않은 아는 척보다 모른 척이 낫다고 생각했는데 이제 어쩔 수 없었다. 아직 마르지 않은 보송한 솜털 속에 나처럼 메마른 겨울바람이 부는 것만 같았다. 준영을 맡기로 했다. 이미 문해력도, 표현력도 충분한 준영에게 필요한 건 꺼내는 연습이었다. 그러기 위해서는 자유로워져야 했다. 준영도, 유정도.
유정이 곁에 없는 준영은 처음이었다. 엄마가 떠난 뒤 혜린 외에 집에 누굴 들인 것도 처음이었다. 투이에게 배웠던 계란크림을 만들어 핫초코 위에 부었다. 쓰으읍흡- 후, 후우- 준영의 소리가 고요를 밀고 들어왔다. 그 울림에 놀란 듯 준영이 힐끗 나를 쳐다봤다.
“괜찮아. 편하게 먹어. 엄마는 2시간 후에 오실 거고. 오늘 우리 수업은 안 할 거야.”
준영의 눈이 동그랗게 커졌다.
“대신, 나랑 좀 놀아줘야 돼. 대화하면서. 그게 싫으면… 수업하고.”
식탁 한 편에 잔뜩 쌓아둔 책더미를 가리키자 준영은 입을 뻐끔댔다.
“잘 안 들리는데? 뭐라고?”
“한다고요, 얘기. 대신…”
“엄마한테는 비밀. 어때?”
내가 내민 새끼손가락에 준영도 작은 새끼손가락을 걸었다. 한쪽 입꼬리를 씰룩거리며.
“나도 너만 할 때 서울에서 내려왔어. 엄마랑 둘이 너처럼.”
라포 형성을 위해 꺼낸 말이었지만 거짓말은 아니었다. 엄마 손에 끌려온 이곳이 좋지 않았다는 사실, 모든 게 내 통제력 밖이라 심술이 났지만 마음대로 할 수 있는 게 없어서 또 속상했던 울퉁불퉁했던 마음, 그래서 고등학교 졸업하자마자 서울로 다시 갔던 과거를 줄줄이 늘어놓았다.
“선생님도 아파요?”
“준영이는 어디가 아프니?”
“아뇨. 전 모르겠는데 엄마가 그래요. 저 아프다고. 그래서 시골로 온 거래요.”
“다 나으면 준영이도 서울에 가고 싶어?”
준영은 대답 대신 남은 핫초코를 삼키고는 잠시 후 고개를 천천히 저었다. 여기가 더 좋은 것 같다고. 여기서 가게 주인이 되고 싶다고 했다. 무엇을 팔든 그저 그 가게에 그냥 가만히 앉아 있는 게 꿈이란다.
교사, 의사, 운동선수, 약사, 경찰, 회사원…… 아이들이 적어냈던 직업을 떠올렸다. 약간의 거짓이 섞였을지 모를 희망들. 그 안에 숨겨진 마음을 제대로 들여다본 적은 없었다. 어차피 들어갈 수 없다고 생각했다. 괜찮아요, 몰라요, 죄송해요.로 점철되는 대화는 답답하게 이어질 뿐이었으니까. 그러면서도 교육 제도에 대한 뉴스는 놓치지 않았다. 변하는 입시제도나 교육과정 같은 것들. 교사로서 직무 유기를 하고 싶지 않았다. 결국 대학 입시 제도가 우리나라 교육 전반을 움직이는 거라 말하며 수능 킬러 문항이나 일타 강사의 문제, 수능 과목 변화 같은 것들을 열심히 보고 동료들과 의견을 보탰다. 정말 한심하다고. 그런 얘기를 할 때면 모두가 한 마음이 되었다. 뭔지 명확히 알 수 없지만 거대한 흐름에 도태되지 않았다는 안정감에 안도했다. 정작 눈앞에 있는 아이들의 마음은 알지도 못하면서.
차갑게 식은 컵에 코코아색 입술 자국이 찍혀 있었다. 준영의 흔적이었다. 식탁 위에 노트북을 펼쳤다. 준영의 차분한 목소리가 여전히 공기에 떠다니는 것만 같았다. 처음엔 별 말 없던 준영과 한 일은 다락방에서 뒹굴며 책을 읽는 거였다. 가끔 내가 끄적인 낙서와 밑줄을 보며 준영이 말을 걸었는데 대부분은 낯부끄러운 중얼거림이었다. 내게 이런 마음 있었나 할 정도로 희미한 것들. 그중 한 가지 선명한 감정이 있었다.
죽어버렸으면 좋겠어. 내가 죽으면 슬퍼할까?
사월도로 이사 온 뒤 맞이하는 첫 생일이었을 것이다. 여전히 소식 없는 아빠를 떠올리며 분노했다. 분하기보다 서러웠고 슬펐다. 아빠는 나를 잊어버린 걸까, 엄마는 왜 아무런 말을 하지 않는 걸까. 버려진 기분이었다.
“저도… 이런 생각을 했어요.”
준영의 말에 과거에서 현재로 돌아왔다. 준영의 슬픔은 유정과 연결되어 있었다. 준영의 이야기 속 유정은 열정적인 엄마였다. 준영을 위해 무엇이든 해주고 싶고, 해주려는 엄마. 하지만 그럴수록 준영은 답답했고 불안했다. 엄마의 기대에서 자꾸 어긋나는 것 같아 숨이 막혔다. 하지만 유정은 멈추지 않았다. 준영에게 꼭 맞는 선생님만 찾으면 준영이 날개를 달고 훨훨 날아오를 거라 믿는 듯했다. 유정의 열심은 공부에만 국한된 건 아니었다. 평균에 겨우 닿는 남편과 그마저도 미치지 못한 자신의 키를 닮을까 봐 전전긍긍했다. 공부 못지않게 외모도 중요한 시대니까. 가뜩이나 또래에 비해 왜소한 준영을 끌고 간 곳은 바로 병원이었다. 미래를 위한 그 주삿바늘을 보는 순간, 준영은 정신을 잃었다. 평소에도 모서리 공포증이 있던 준영이었다. 미세하게 떨리는 준영의 몸을 바라봤다. 아이를 향해 뻗은 손을 머뭇거리다 등을 쓸어내렸다. 아직 단단하게 여물지 않은 말캉한 몸집에서 온기가 만져졌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