마드리드 즐기기, 쿠킹클래스

내 사랑 올리브

by 정담아

올리브를 처음 만난 건 초등학교 때 아빠가 사 온 피자에서였다. 이름도 알지 못했다. 정확한 명칭을 인지한 게 언젠지 기억이 나지 않지만 그 후로 오랫동안 내게 올리브는 그저 피자 위의 검은 무(無) 맛이자 타이어를 닮은 작은 피자 부속물이었다. 잘리지도, 익히지도 않은 온전한 모습을 알게 된 건 첫 만남 이후 꽤 여러 해가 지났을 때였다. 그 진짜 맛을 알게 된 건 그 후로도 아주 오랜 시간이 지나서였다. 그리고 서서히 사랑에 빠지고 말았다.


어떤 대상에 대한 관심은 상대에 대한 객관적인 정보의 양과 주관적인 정보의 내용을 변화시킨다. 대체 예전에 피자 위의 검은 링이 왜 맛이 없다고 느꼈는지 이해가 되지 않았다. 풍부함을 가진 맛있는 맛인데! 물론 내가 좋아하는 올리브는 생기를 잃고 다른 음식에 널브러져 있는 모습이 아니었다. 어떤 것에도 의존하지 않고 있는 그대로의 모습 일 때의 당당한 맛을 사랑했다. 그가 온몸을 바쳐 쥐어 짜낸, 떫음이 섞인 쌉싸름함도 좋아했다. 오일이 목을 지날 때 느껴지는 따끔한 기운이 좋았고, 은은하게 퍼지는 풀잎, 과일향을 찾아내는 것도 재미있었다. 뒤늦게 사랑에 빠진 올리브를 더 풍부하게 즐길 수 있는 곳이 바로 스페인이었고, 마드리드의 쿠킹클래스에서 올리브와 더욱 깊은 시간을 가질 수 있었다.


쿠킹 클래스의 첫 시작은 장보기였다. 수강생 5명이 강사를 쪼르르 쫓아다니며 이것저것 설명을 듣고 구경했다. 이미 이 도시 저 도시를 옮겨가며 여러 시장을 들렀던 터라 신선함은 사그라들었지만 이미 익숙한 장면에 설명이 얹어지니 금세 새로운 풍경이 되었다. 작물이 자라고 스쳐온 공간, 그들이 사고 팔리는 시장이 건너온 시간, 거래된 자연의 선물이 인간의 음식으로 만들어지는 동안 지나온 순간까지.


가장 흥미로웠던 건 역시 올리브였다. 내겐 이국적이고 특별한 존재였던 올리브가 밑반찬 가게에 종류별로 진열되어 있는 모습 자체가 놀라웠다. 그동안 알고 있던 검정, 짙은 연둣빛 이외의 다양한 모습으로 그릇에 그득그득 담겨 있는 모습이 생경했다. 몸을 담고 있는 액체의 색도, 열매의 빛깔도 다양했다. 연한 녹빛에서 짙음을 지나 검은색까지. 붉은빛도 있었다. 어떤 경우는 제 몸에 치즈 따위를 감싸고 있기도 했고, 다른 야채들과 함께 뒹굴고 있기도 했다. 강사는 몇 가지 종류의 올리브를 주문했고, 주인은 능숙하게 포장해서 건네주었다.


비닐에 들어있던 올리브는 잠시 후 우리 앞에 놓였다. 샹그리아와 함께 세팅된 올리브는 요리를 하는 동안 수시로 다시 채워졌고, 열렬한 올리브 애호가인 나는 성실하게 날름날름 주워 먹었다. 절임 정도에 따라 탄력이 느껴지기도 했고, 부드럽게 부서지기도 했다. 양념에 따라 짭조름하고, 매콤하고, 시큼한 맛들이 제각각 강약을 변주하며 드러냈다. 먹어 보지 못했던 붉은 올리브가 첫 마음을 사로잡았지만 역시 마지막 종착지는 가장 기본적인 연한 빛이었다. 다른 것에 자신의 색을 지우지 않은, 그래서 제 땅에서 자란 식물이 갖는 당당한 맛을 뿜어낼 줄 아는 존재는 역시 매력 있으니까.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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