타바스와 새로운 인연
“스페인은 천국이야.”
스페인행 비행기 표를 예약했을 때 친구가 제일 먼저 꺼낸 말이었다. 그곳 식당에선 음료 하나를 주문하면 타파스(Tapas)라 불리는 음식이 무료로 나오는데 그맛이 또 기가 막히다는 것이었다. 그 한 마디가 스페인으로 향하는 우리의 마음을 달뜨게 했건만 바르셀로나에서는 사실 그 천국을 만나지 못했다. 그런데 그라나다에 도착하는 순간, 친구가 말했던 천국이 펼쳐졌다.
생각해보면 우리나라도 타파스와 유사한 문화가 있다. 술을 주문하면 기본 안주가 나오니까. 하지만 타파스에는 우리의 기본 안주와 다른 구석이 있다. 기본 안주야 가보지 않아도 빤한 경우가 태반이다. 종류가 조금 다르더라도 과자류에서 크게 벗어나지 않을테니까. 반면, 타파스는 양이 적을 뿐 그 자체가 하나의 요리다. 그리고 각 가게마다 그 메뉴가 다르고 새로운 음료를 추가로 주문할 때마다 내어주는 타파스의 종류가 또 다르다. 그러니까 타파스에는 그 식당만의 고유함이 담뿍 들어있다고나 할까. 그게 바로 매력 포인트였다. 집집마다 다른 색을 맛보는 타파스 기행만으로도 하루가 가득 찼다.
어슬렁어슬렁 거리를 가득 메우고 있는 식당과 상점을 둘러보았다. 유명 브랜드의 체인점도 눈에 띄었지만 식당은 대부분 거대 기업이 아닌 가족 중심으로 운영하는 느낌이었다. 그래서일까. 많은 식당의 이름에 ‘casa(집)’라는 단어가 붙었다. 집이라니. 얼마나 정겨운가. 게다가 식당 밖에 의자도 없는 무심한 오크통을 테이블 삼아 식사를 즐기는 사람들은 또 어찌나 멋져 보이던지. 우린 결국 그 쿨한 식당, bar casa Julio의 문을 열었다.
그런데 이건 또 웬일. 안에도 의자가 없는 테이블이 꽤 있었다. 게다가 만석이었다. 당황스러운 발걸음을 떼지 못하는 우리에게 바(Bar)에 앉은 누군가가 다정하게 손짓했다. 물론 처음 보는 이들이었다. 하지만 너무도 친밀한 그 눈빛에 이끌려 다가갔다. 나갈 거니 그 자리에 앉으라고 했다. 연신 땡큐를 외치며 자리를 비우는 그들의 움직임을 따라 시선을 부지런히 옮겼다. 외투와 가방을 찾아 챙기는 그들의 움직임을 따라가니 테이블 아래 겉옷이나 가방을 걸 수 있는 고리가 있었다. 그들이 떠난 자리에 우리도 겹겹이 둘렀던 옷을 벗어 고리에 걸었다.
"여기도 진짜 음료를 시키면 타파스가 나올까?"
주변을 두리번대던 우리는 웨이터의 눈짓에 일단 와인 2잔을 주문했다. '타파스가 나올 것인가'와 '나온다면 어떤 타파스가 나올까'에만 온통 관심이 쏠려 있던 우리에게 직원이 말을 건넸다.
"어디서 왔어?"
"한국."
뻔하고 익숙한 대화 패턴에 한번, 그의 서툰 발음에 또 한번 안심을 하며 대답을 했다. 의외로 그는 한국을 알고 있다며 반가워했다. 한국 음식을 엄청 좋아한다며, 어제도 먹었다는 라면 사진을 보여주었다. 사진 속 그 음식은 일본 라멘이었지만 너무 해맑게 이야기하는 그에게 차마 진실을 말하지 못했다.
그곳은 생선 요리가 주였는지 타파스로 생선살 튀김이 나왔다. 연신 '맛있어!' 를 외치며 금세 한 접시를 비워낸 우리는 또 와인을 주문했다. 그러면서 라멘을 좋아하는 J와 여러 개의 접시와 잔과 함께 시답지 않은 이야기도 주고받았다. 양측 모두 서툰 영어였지만 금세 가까워진 기분이었다. 느지막이 방문했던 탓에 마감 시간까지 꽉 채워 먹고 마셨다. 일할 때는 오랫동안 서 있는 게 그렇게 힘에 부치더니 먹고 마시고 떠들기 위해서는 용케도 자세를 바꿔가며 잘도 버텼다. 아쉽다며 J는 본인이 근무하는 시간을 이야기해주었다. 우린 그가 근무하는 날, 저녁 오픈 시간에 꼭 다시 들르겠다는 약속을 하고 돌아섰다. 담백한 굿바이였다. 곧 다시 만날테니까.